Korean History 썸네일형 리스트형 가야 시조 탄생 설화 및 나라를 넘긴 마지막 왕 이야기 가야국 시조 탄생 설화 가야 왕국의 시조 수로왕의 탄생 설화에 등장하는 구지가는 일연의 에 기록된 가야 시조 탄생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김해땅, 구지봉 산 아래 살던 아홉 족장들은 하늘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따라 구지가를 부르니 하늘에서 황금 상자가 내려오고 그 속에 알 여섯개가 들어있다. 이후 알에서 깨어난 사내아이 6명이 후에 여섯 가야의 우두머리가 됐다. 그 중에서도 가야 연맹국의 중심 금관가야의 시조가 된 김해 김씨 시조 김수로왕이다. 가야의 마지막 왕은 누구? 그러나 주변 열강의 침입으로 약 500년의 역사를 끝으로 신라에 금관가야는 멸망하게 된다. 서기 532년 신라와 금관 가야의 전쟁에서 크게 패한 금관가야 구형왕이 나라를 통째로 신라에 넘긴다. 가락국은 고대 국가 .. 더보기 합천 함벽루 : 대야성 전투 김춘추 복수극의 시작.. 합천 함벽루 경상남도 합천 황강벽에는 함벽루가 있다. 합천하면 해인사를 많이 떠올리지만 합천에는 다른 볼거리도 많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함벽루인데 이 작은 정자에 많은 문인이 찾아와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그 중에 대표적인 인물이 우암 송시열, 남명 조식 (1501~1572) , 퇴계 이황이 이곳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고 또한 구한말 의병장 이범직 또한 자신의 글을 이곳에 남겼다. 조선 중기 성리학 발전에 기여한 인물들로 이 세사람을 빼고는 성리학, 정치, 유학을 논할수 없는 당대의 최고의 학자들이다. 을사늑약 당시 황제 고종을 윽발질러 나라를 팔아먹는데 도장을 찍게 만든 을사오적 중의 한 사람 이은용(이지용)의 이름도 커다랐게 새겨져 있다. 대야성 위치, 흔적들7세기 초 신라와.. 더보기 고려청자 : 일본인만 알아본 강진 도자기.. 강진 고려청자 2007년 5월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고려시대 유물이 무더기로 발굴된다. 58살 어부 김용철이 바다에 던진 주꾸미 통발에 주꾸미 한 마리가 걸려 올려졌다. 그런데 그 주꾸미의 빨판에 파란색 대접하나가 딸려온 것이다. 무려 12세기의 2만 점이 넘는 고려청자를 싣고 가던 보물선이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역사상 가장 많은 고려청자가 한꺼번에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고려청자만큼이나 관심의 대상이였던 것은 목간이었다. 이 목간에는 탐진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탐진은 강진의 옛 이름이다. 이 배는 탐진에서 출발해 고려 수도 개경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이 목간 덕분에 강진산 고려청자의 명성이 다시 한번 입증되었다. 강진은 청자 생산에 알맞은 조건인 품질 좋은 흙과 풍부한 뗄감 그리고 강진만을.. 더보기 다산초당, 사의재 : 정약용의 강진 유배생활 어땠을까? 조선시대 사형 다음가는 형벌은 유배형이었다. 죄의 경중에 따라 2000리, 2500리 등으로 유배지 거리가 정해진다. 유배가 무서운 이유는 언제 유배가 끝날지, 언제 사약이 내릴지 알수 없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은 의학에도 능통했고 간축과 토목, 각종 정치, 철학, 경제 모든 방면에서 능했다. 정약용은 누구? 조선 22대왕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정약용은 유배생활중 강진 산골짜기 다산초당에서 500권이 넘는 책을 썻다. 조선 왕조 500년 사상 최고의 지식인이었다.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보였는데 홍역 치료에 관한 의서 마과회통, 정조의 능행차를 위한 한강에 배다리를 고안, 수원화성 축성을 위해 거중기를 설계하여 노동력과 건설비용을 절감시켰다. 이 거중기 덕분에 10년을 예상했던 수원화성 축조를 .. 더보기 하멜의 유배지 강진 전라병영성 , 여수 진남관 350년전 1668년 유럽에서 당시 조선에서 화란이라고 불리던 유럽 최강국 네덜란드 사람 하멜이 하멜표류기를 출판한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유럽 북서쪽에 위치한 나라로 상업과 해운업이 발달한 유럽의 경제 대국이었다. 하멜 표류기 1653년 8월 22일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스페르베르호는 거친 파도로 침몰하게 되고 36명의 선원이 낯선 제주도 땅에 상륙하게 된다. 이중에 헨드릭 하멜도 있었다. 하멜 일행은 제주목 관아로 이송되 조사를 받게 되지만 언어가 통하지 않았다. 하멜 일행은 그렇게 두 달 일주일동안 조사를 받게 되고 마침내 한양에서 조사관 겸 통역관 박연이 내려온다. 그는 같은 국적인 네덜란드 사람으로 본명은 벨테브레였다. 하멜 일행보다 26년 먼저 제주에 표착한 사람이었다. 그는 조선에 들어온 .. 더보기 장진호 전투 6.25 전쟁을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중국군 참전이다. 6.25 전쟁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바로 중국군 개입때이다. 낙동강 방어선까지 파죽지세로 밀고 오던 북한군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고 압록강까지 국군 제1군단의 진격이 계속되었다. 원산도 점령하고 전쟁이 끝난 것처럼 보였으나 갑자기 인민지원군이라는 중국군 26만명이 전쟁에 개입한다. 중국군의 개입으로 밀려내려오게 되면서 1950년 11월 27일 미국과 중국의 전면전 장진호 전투가 벌어진다. 미국이 중국군과 처음 싸운 전투로 미 해병 1사단은 1만 2천여 명정도였고 중국군은 12만명이었다. 10배 많은 중국군을 상대로 굉장히 힘들었던 상황이었다. 무려 14일간 사투를 벌였던 전투이다. 미국 전쟁사에서 .. 더보기 조선왕릉과 풍수 이야기 조선왕릉의 터를 선택할 때 기준? 명릉도는 숙종과 인현왕후 , 인원왕후의 능을 나타낸 그림인데 산맥과 물줄기가 좌오로 감싸고 있는 지형에 왕릉을 조성한다. 풍수지리학자가 볼때 최고의 능은 세종의 영릉, 세조의 광릉, 인조의 장릉 등이 있다. 세종대왕 묘 영릉은 회룡고조 형으로 앞쪽에 조산을 바라보고 능선이 무덤을 감싼 ,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한 느낌을 주는 형국이다. 세종대왕 묘 영릉을 이장한 이유 1450년 2월 17일 세종이 승하했다. 맏아들 문종은 유언에 따라 태종 세종의 부모님이 있는 헌릉 인근 수릉지에 왕릉을 조성한다. 그런데 그 터를 두고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장남을 잃고 손이 끊 myvoice.wissue.net 왕릉 주변의 조형물들 의미? 무이석, 문인석은 무신과 문신을 의미하고 동물상으.. 더보기 학도병 이야기 : 포항여중 전투 의의 한국 전쟁 발발 후 서울이 함락 되고 더욱 거세진 북한의 공세로 낙동강 방어선까지 후퇴하게 된다. 이때 마지막 방어선을 지킨 이들이 있었다. 군번도 없던 학도병이었다. 학도병의 공식 명칭은 학도 의용군이다. 한국 전쟁 발발 3일 후 6월 28일 수원에서 구국 비상학도대를 조직했고 29일 바로 한강 방어선 전투에 투입된 기록이 있다. 학도의용군이란? 학도의용군이라는 말 자체가 전쟁 중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조직되는 무력집단이라는 뜻으로 전시에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고 자원한 학생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원래 징집 대상 연령은 18세 이상으로 학생은 징집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전시가 되니 학생들이 나라의 위험을 돕기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 개별적으로 입대한 것으로 학생들은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군번도 지급되지 .. 더보기 장사리 전투: 인천상륙작전의 기만작전 기민작전이란? 장사리 전투는 아군의 정보를 적에게 오판하도록 유도해 적을 유인하는 계획적인 작전활동으로 인천상륙작전의 기만작전이었다. 원래 상륙작전 시 기만작전을 병행한다. 제 2차 세계 대전 중 노르망디 상륙 작전 때도 파 드 칼레 혹은 스칸디나비아반도등 다른 지역으로 기만작전을 시행했다. 인천상륙작전의 기만작전은 여러개가 있다. 9월 12~14일까지 미군과 영국군의 양동상륙작전이 있었으나 큰 소득이 없이 끝난 전투였고 9월 14일 삼척에서 해안에 함포 사격등이 있다. 인천상륙작전 직전의 기만작전 중의 하나가 장사리 전투였다. 장사리 전투에 투입된 학도병 장사리의 위치는 포항 일대로 포항 기준 북쪽으로 약 25km 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200고지를 탈환하고 보급로를 뺏기 위한 상륙작전이었다. 이때 투입.. 더보기 세검정 유래 : 인조반정 세검정에서 무슨 일이?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조선시대 정자 세검정이 있다. 이곳은 1623년 광해 15년 한무리는 세검정에 모여 허리에 찬 칼을 흐르는 물에 씻어내며 함께 죽기를 칼로 맹세한 후 1623년 3월 12일 반정세력 능양군, 이귀등이 이끈 병사들이 창덕궁을 기습한다. 목표는 인정전에 있는 광해군이었다. 신하가 임금을 몰아낸 두 번째 사건 인조반정이었다. 세검정 앞으로는 홍제천이 흐르는데 홍제천에서는 조선왕조 실록이 완성된 후 실록의 초고들을 물에 씻어 글씨를 지우는 일을 했던 곳, 세초를 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인조 반정때 궁궐로 쳐들어가기 가장 좋은 지름길이 북쪽의 창의문을 통과해서 가는 것인데 창의문 바로 아래 시내가 흐르고 정자가 있는 그곳이 세검정이다. 능양군은 누구? 중종반정과는 달리.. 더보기 이전 1 ··· 26 27 28 29 30 31 32 ··· 5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