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역사왜곡은 가히 어매이징할 정도이다. 그런 북한도 한 가지는 인정한 역사적 사실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것이다. 2023년 검정을 통과한 일본의 역사 교과서 11종에 독도는 자신의 땅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주장 1
일본은 17세기 중반 독도 영유권을 확립했다는 것
일본이 거듭 독도가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옛날 독도가 주인없는 땅일때 일본의 어부들이 70년 동안 어업활동을 했고 일본인 시마네현 고시를 먼저했다는 것이다.
1868년 메이지 유신때부터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라고 인정을 했다. 17세기 말 울릉도 독도에서 어업을 하던 부산 출신 어민 안용복은 돗토리번에 가서 일본 영주에게 독도는 조선 땅임을 주장하고 당시 에도 막부 역시 독도가 조선 땅이라고 인정한 사건이 있다.
안용복과 울릉도 쟁계 in 안용복 기념관/대마도는 조선땅!
주장 2
1905년 일본 정부는 비밀리에 독도를 시마네 현 오키 섬의 부속 섬으로 편입시키며 ' 무주지 선점론'을 주장했다. 무주지란 주인이 없는 땅이며 먼저 가서 깃발을 꽂으면 그땅은 내땅이 된다라는 뜻이다. 일본이 독도를 넘보게 된이유는 1904~1905년 러.일 전쟁 때 독도해전, 동해해전을 벌였는데 러시아 발트함대가 일본해군에 격멸을 당한 것이다. 이에 러시아가 언제든지 공격할수 있다고 생각해 방어의 중요한 포인트 장소 동해 그중에 독도를 탐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부터 일본은 독도는 임자없는 땅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독도가 무주지가 아닌 증거는 고종 황제가 반포한 칙령 제 41호에 보면 1902년 대한제국 허가 하에 울릉도 인근에서 일본인이 어업을 했다는 기록과 이때 일본인이 전복 우뭇가사리를 독도까지 가서 채취를 하게 되고 이에 울도군에서 일본인의 경제 활동에 세금을 부과한 기록이 있다.
다른 이유는 독도를 중심으로 엄청난 지하자원이 묻혀있다. 일본으로써도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포인트이다.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고 역사 왜곡을 통해서라도 독도를 차지하고 싶은 것이 일본의 속마음일 것이다.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시마네현 소속으로 고시를 해버린다. 그런데 그 고시 원본이 현재 없다. 일본의 주장에는 고시 원본이 화재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고시 사본조차도 원본의 복제본인지가 증명이 안되고 있고 1905년 이후 지금까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계속 되고 있다. 일본 스스로도 약 1600~1900년까지 수많은 동양지도를 그렸다. 그런데 일본에서 자체 제작한 지도에도 독도는 없다.
1882년에 만들어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일본 전도를 보면 일본 영토는 노란색, 우리나라는 색이 없는데 독도, 울릉도는 없다. 이때 일본은 울릉도 독도가 우리땅임을 이미 인정을 했다.
주장 3.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1951년 제 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일본과 연합국이 맺은 조약인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일본 영토 규정이 포함돼 있는데 전쟁 전 영토였던 혼슈, 규슈, 시코쿠, 홋카이도 4개 섬을 일본 영토임을 인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조약이다. 이때 독도라는 이름이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일본섬이라는 주장을 한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스카핀 문서를 바탕으로 작성된 조약으로 스카핀 677호에서는 연합국은 독도를 한국 영토로 정확하게 규정하고 있다.
또 다른 어쳐구니 없는 주장은 일본의 오키섬에서 독도가 가까워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부산에서 보이는 대마도는 우리땅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오키섬에서 독도는 보이지 않는다.
일본의 많은 기록 속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었다는 내용이 남아있다. 그러나 일본은 이런거에는 관심도 없다. 일본의 주장은 일본의 고서, 태정관에 남아 있는 기록은 일본 메이지 정부의 최고 행정기관 태령관이 1877년 독도와 울릉도는 일본과 관계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때는 그랬으나 러.일 전쟁 이후 독도는 자신의 땅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서에 처음 등장하는 독도의 내용은 삼국사기부터이다. 조선시대 때도 독도를 관할하도 있다는 증거가 세종실록지리지에도 실려했다. 독도가 있는 멀리 있어서 날씨가 좋으면 보이고 날씨가 안좋으면 보이지 않는다는 기록이다.
현재 우리가 배우는 역사교과서는 이래서 중요하다.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은 맨 처음 접하게 되는 역사 교과서를 통해 본 것을 정사로 기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로 제 2차 세계대전 A 급 전범들의 위패가 있는 야스쿠니 신사 옆에 전쟁기념관이 있다. 그곳에 가면 일본은들은 자신들이 피해자인것 처럼 전시하고 있다.
**독도 분쟁 문제 국제사법 재판소 재소해야 할까? 한국의 전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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