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 소를 많이 그린 이유
이중섭 화가는 오산 고등보틍학교를 들어가 임용련 미술 선생님을 만났고 이것이 그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그는 가장 조선인 다운모습으로 조선인의 모습을 그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중섭이 선택한 그림이 바로 소였다.
이중섭 화가가 생각하기에 가장 조선의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소라고 생각했다. 일제강점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소의 이미지가 긍지를 잃지 않고 투쟁의 의지를 불태운 조선인의 의지를 담아낸 것이 소 그림이다.
1940년대 이중섭 작품
1940년 대 이중섭 작품은 대부분 전쟁으로 인해 소실되고 불타버렸다.
사람들은 이중섭 화가는 자신의 감정을 가장 작품에 잘 담아서 그린 화가 중 한명이라고 말한다. 1953년에 그린 황소와 1956년 마지막으로 그린 소 그림은 너무 달랐다. 늙고 마른 소를 그렸다. 망가져있는 본인의 모습 같은 이중섭의 삶이 희망에서 절망을 빠질때 그림도 어둡고 처절했다.
이중섭의 서명
처음에 이중섭의 서명은 둥섭이었다. 이북사투리로 서명을 한 것이다. 그러다 일본 유학시절쯤 이중섭의 호인 대향으로 적기 시작한다. 유학에서 돌아와 이남에 자리 잡은 후 부터 중섭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특히 말기시절은 악독한 민족말살과 창씨개명이 강요되던 시절이므로 한글서명은 조선인의 자긍심을 투영했던 것이다.
이중섭 화가 작품읽기, 해석: 아이 그림이 많은 이유, 러브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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