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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추사 김정희 세한도 읽기 : 추사체란 ?/ 제주 추사관 건축 의미.

추사 김정희는 누구? 

추사 김정희는 돌, 청동기 비단 따위에 남겨진 기록들을 연구하는 금석학의 대가였다. 다른 사람이 비석인 줄 알았던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평양에 있는 고구려 비석도 많이 정체를 밝혀내기도 했다. 또한 그는 문인이자 서예를 하는 예술가이기도 했다. 

 

 

왕의 심기를 불쾌하게 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능지처참을 당한 윤상도의 옥사사건의 초안 상소를 김정희가 작성했다고 관련자들이 말을 해서 김정희가 제주도 대정현에 유배와서 위리안치 (가시덤불로 둘러싸인 집에서 나갈수 없는 최고등급유배) 된다.  그러나 제주도에 유배하던 기간에 많은 글을 쓰고 추사체를 제주에서 완성했다고 한다. 

 

 

추사체는 어떤 서체인가?  

추사 선생의 글씨가 추사체이다. 특정한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추사 선생의 글씨가 만년까지 여러 형태의 글씨들이 있는데 추사만이 구사했던 획과 형태 같은 것들이 살아있는 것을 모두 추사체라고 얘기한다. (유시민 왈) 추사체는 기름을 쫙뺀 글씨체이다. 추사 선생님의 글씨는 뒤로 갈수록 어떤 기교도 안 보이고 그냥 글짜이다 .

 

추사 김정희의 글씨체는 제주도 유배 전후로 많이 바뀐다.
1840년 제주도로 가는 유배길에 들른 해남 대둔사에서 쓴 현판이다.

 

같은 글씨 다른 느낌의 추사 김정희가 쓴 글씨이다.
1846년 유배지에서 쓴 화암사 <시경루> 현판
1842년 본가즉전 유배지에서 가족들에게 보낸 안부 편지
1844년 제주도 유배지에서 쓴 세한도 속 글귀

 

세한도 감상하기 

세한도의 뜻은 날이 추워진 다음에야 잣나무와 소나무가 푸르른 것을 알 수 있다. 라는 뜻으로 세한도는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 의 공자님 말씀에서 따 온 제목이다. 세한도는 전형적인 문인화로 문인화는 글과 그림이 같이 있는 것이다. 세한도는 그림 옆 왼쪽에 글이 쭉 쓰여있는 편지이다. 추사의 제자들 중 청나라와의 통역일을 하는 역관 이상적이라는 사람이 대역 죄인이 되어 유배간 김정희를 사람들은 꺼리기 마련인데 이를 신경쓰지 않고 출장갈적마다 스승 김정희가 좋아할 만한 책들을 구해 와서 무려 120권의 책을 선물한 사람이다. 그런 제자 이상적에게 그동안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선물한 것이 세한도이다. 

 

국보 80호로 지정된 추사 김정희가 유배시절 그린 세한도 그림
세한도 발문 중

 

이상적이라는 제자의 지조가 소나무처럼 변치 않는다는 뜻을 그림에 새긴 것이다. 이상적은 자신의 스승이 준 선물을 가지고 중국 문화예술계의 비평왕에 해당하는 몇 사람을 만나서 비평을 받았고 국내의 비평가들에게도 비평을 많은 글이 세한도 뒷편에 쭉 쌓여서 전시되고 있다. 청나라 명사 16인과 국내 명사 3인의 평론이 이어져 있다. 

 

추사 김정희의 마지막 글씨

1856년 봉은사 서고 현에 있는 추사의 마지막 글씨 '판전 ' 은 돌아가시기 3일 전에 쓴 글씨이다. 

 

제주 추사관에 이런 의미가.. !!

제주도 대정읍에 제주 추사관이 위치해 있는데  2010년 건축가 승효상 선생님의 설계로 만들어졌다. 관광객들은 이것을 귤창고로 착각하기도 한다. 추사관 옆에 소나무가 있는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 속 그림과 똑같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는 계단도 이상하게 생겼는데 추사 김정희가 먼 길을 유배왔기에 추사의 유배 길을 조금이나가 생각하고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제주 대정읍에 위치한 추사관에는 김정희의 작품을 감상할수 있고 전시관을 나오면 추사 선생의 적거지를 만날 수 있다. 

 

추사전시관 외관의 모습은 추사 김정희 세한도의 그림을 재현해 놓은 것으로 추사의 선비 정신이 그대로 녹아있는 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