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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제주 해녀 이야기 : 해녀가 여자만 있는 이유.

바다의 어멍 (어머니) 해녀 

해녀 문화는 우리나라와 일본, 이 두 나라에서만 있는 문화로 장비 없이 인간의 힘으로만 작업하는 문화를 말한다. 해녀들의 작업 방식을 나잠어업이라고 하는데 해녀들이 특별한 기계장치 없이 수심 10m 이상 바다밭에 잠수하여 해산물을 채취하는 어업을 말한다. 현재 오직 허가받은 해녀들만 나잠어업을 할수 있다. 바다밭은 법으로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해녀증이 있는 해녀도 본인이 속한 어촌계의 어장에서만 물질을 할수 있다. 

 

해녀 규율, 계급

바다에서 매일 목숨을 걸고 일하는 해녀들이기에  해녀도 체계가 있어서 규율에 따라 바닷가 해변으로 앉는 장소가 정해져 있다. 강력한 규율로 연대하여 서로를 보호하고 했던 것이다. 리더 대상군의 지휘아래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해녀 공동체이다.  물질기량, 연륜, 성품에 따라 계급이 나뉘고 상군 해녀가 되어 공동체를 이끌수 있다. 모든 해녀들은 동시에 입수한 후 작업이 끝나면 다 같이 뭍으로 나온다. 작업 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누가 많은 해산물을 잡아 오는가 하는 것은 개인의 역량 차이로 인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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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해녀는 여자만 있나? 

제주도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대부분은 말려서 한양의 임금에게 진상이 되었다. 더 많은 해산물을 바치기 위해 제주의 백성들은 남녀 할 것 없이 매일 가혹한 물질을 견뎌야 했다. 17 세기 초 잉금에게 진상을 전복을 캐는 것은 주로 포작인으로 불리는 남자의 일이었다. 해녀들은 대부분 얕은 바다에서 미역을 따는 일을 했으나 고 욕을 견디지 못한 코 자긴들이 죽거나 육지로 도망 가는 일이 빈번해지고 채취하는 해산물을 수가 급격히 줄어 줄자 관리들은 제주에 남은 여인들에게 포작의 의무를 씌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주도 여자들은 외지 남자와 결혼도 못하게 하고 섬에 갇혀 평생 전복만 따는 신세가 되었다. 여자가 더 잘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한 것이 아니고 포작이 없으니 해녀라도 대신하게 된 것이다. 조선 유교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로 희생당한 여인들이었다. 

 

 

그렇게 제주 해녀들의 전복과 해산물 채취는 제주 여자들의 삶으로 굳어진 것이다. 

 

제주도 해녀 박물관

제주도 해녀 박물관에는 해녀문화를 보존하고 전승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으로 해녀의 삶과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바닷속 눈이 되었던 물안경과 활동성 높은 전통 작업복도 전시되어 있다. 

 

 

* 기네스북에 바다에 들어가 숨을 가장 오래 참은 기록으로 알렉시스 세구라 (2016.02.28) 가 24분 3초가 등록되어 있다. 숨을 참고 가장 깊이 바다 속으로 들어간 기록은 124 M 로 윌리엄 트루브리지가 2016년 갱신했다.

 

[알쓸신잡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