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History 썸네일형 리스트형 반지하는 우리나라에만 있나요? 반지하 용도 이럴수가 !! [알쓸별잡 7회 중]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에 특히 많은 이유는 6.25 전쟁 이후에 나중에 전쟁이 혹시 또 일어나면 시가전을 위해 도시에서 전투를 벌일 때를 대비해서 참호처럼 반지하에 들어가서 창문에 총을 놓고 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법적으로 반드시 반지하를 지어야 했던 때가 있었다. 1960~70년대에도 남북간의 긴장은 이어지고 있었고 한국 정부는 이러한 상황에 전쟁에 대비해 주택마다 지하실을 만들 것을 법제화했다. 방공호로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지하실을 임대하는 것은 불법이었으나 80년대 주택 부족 사태가 극심해지면서 반지하 임대요건이 완화되었다. 그래서 전쟁을 대비해서 지은 반지하가 우리나라에 아직도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에서는 반지하를 금지하는 추세다.. 더보기 창신동 절벽마을 역사, 드라마 촬영지로 인기 있는 이유 ~ 창신동 절벽마을이란? 창신동에 가면 40m 정도의 가파른 수직 절별이 있다. 창신동은 사대문안 동대문에서 성곽길을 따라 성곽길의 서쪽은 혜화동이고 오른쪽은 창신동이다. 창신동은 원래 옛날에는 채석장이었다. 일제 강점기때 서울에 많은 석재 건물을 만들기 위해 우리나라 산들이 대부분 화강암으로 된 돌산이여서 그곳에서 돌을 떼서 가져와 건물을 만들었다. 서울 곳곳은 석재를 채취하기 위해 깍여나갔다. 해방 이후 깍여나간 산 주위로 주거지가 생기고 역사를 담은 독특한 공간이 되었다. 과거 사대문 바깥쪽에 위치해 있던 창신동은 빈땅이었다. 그래서 채석장으로 사용했었다. 서울의 50년 역사를 볼수 있는 창신동이곳 창신동은 50여년간의 서울 건축의 역사를 담고 있는 곳이다.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시대 성.. 더보기 김삿갓은 누구? 유명한 시 , 삿갓을 쓴 이유 , 무덤은 어디? 73 조선의 27대 왕 순조가 다스리던 시기에 방방곡곡을 떠돌며 살았던 김삿갓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김삿갓의 신분은 기반 세력과 살림이 아주 보잘것 없는 양반인 잔반이었다. 잔반은 중앙정치에서 밀려난 몰락한 양반을 뜻한다. 김삿갓은 누구? 김삿갓은 집안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린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당시 높은 위세를 자랑했던 장동 김씨 집안이었다. 안동 김씨의 분파로 장동 김씨 가문이었고 경복궁 북쪽 근처에 위치한 지금의 효자동 창성동 통의동을 일컫는 지역이다. 김삿갓의 본명은 김병연이었다. 아버지는 김안근으로 4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장동 김씨들은 안동 김씨에서 분파되었지만 순조의 외척이였기 때문 자신들은 특별한 존재라 생각했다. 그들은 왕실의 외척으로서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세도정치를 펼쳤던 세력.. 더보기 시인 백석 이야기 백석은 후대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시인중 한 명으로 윤동주 시인이 가장 좋아했던 시인이고 당대 최고의 모던보이였고 민족주의적이고 향토적인 모더니즘 문학의 대명사였다. 백석의 키는 190cm 정도 되었다. 백석이 광화문 거리에 나타나면 파리의 몽파르나스 거리 같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백석 유년시절 백석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우리나라 근대문학 초기엔 평안북도 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남강 이승훈 선생이 오산학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민족교육의 산실과도 같은 곳으로 3.1 운동 때는 학생과 교사가 단체로 참여할 정도였다 백석 선생의 6년 선배가 김소월 시인이다. 보통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일본으로 유학을 많이갔다. 이유는 조선에는 대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백석은 부유한 가정이 아니여서.. 더보기 서애 류성룡과 징비록 내용은 무엇? (알쓸신잡 2 유시민 버전) 서애 류성룡은 누구인가? 안동에 가면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이 서애 류성룡이다. (1542~1607) 류성룡은 25세 젊은 나이에 과거 급제하고 선조 세자시절 중앙 정부로 진출을 했고 선조가 즉위할 때부터 왕을 보좌했다. 30년을 넘게 선조 밑에서 벼슬을 한 인물이다. 영의정, 우의정, 좌의정 삼정승을 역임, 도체찰사로서 군무를 총괄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 1591년 전란의 조짐을 느낀 선조는 좋은 사람을 추천해보라고 류성룡에게 말했고 그때 류성룡이 추천한 인물이 이순신과 권율 장군이다. 이때 이순신 장군은 종 6품 현감에서 정 3품 전라좌수사로 7 단계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된다. 사실 이전에 이순신은 곧고 강직한 성품때문에 벼슬길이 늦었었다. 이런 이순신을 류성룡이 어릴때부터 눈여겨본 동네.. 더보기 전기 뜻 , 무엇인가? /석탄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신재생 에너지 문제점은? 전기의 어원 인류가 전기를 인식하고 활용한 것은 문명이 시작된 이후이다. 전기를 영어로 electricity라고 부르는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가 호박보석을 모피에 문질렀는데 가벼운 물체가 달라붙는 호박보석에서 정전기가 일어나는 현상을 보고 호박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호박의 그리스어가 electron이다. 전기는 어디서 왔나? 전기는 발전소에서 만들어진다. 화력 발전소의 전기는 석탄으로 불을 지펴서 물을 끓여서 만들어진다. 전기는 결국 땅속의 석탄에서 온 것이다. 그렇다면 석탄은 어디서 왔는가? 석탄은 3억 년 전의 나무가 죽어서 썩지 않은 채 쌓인 것으로 그때만 나무가 썩지 않았다. 석탄은 결국 3억 년 전의 나무에서 온 것이다. 그 당시는 나무가 최초로 몸체를 단단하게 만드는 고분자 리그닌을.. 더보기 신당동 힙당동 !? 가수 이효리가 신당동 빌딩을 매입했다는 얘기로 한동안 신당동은 시끄러웠다. 그래서 일까? 신당동이 힙의 성지가 되고 있다. 노포가 늘어선 중앙 시장에 전파는 가게, 생선 파는 가게, 널어놓고 쌀을 파는 가게들이 있지만 그 옆에 소위 젊음이들의 힙 플레이스가 공존한다. 구석구석 작지만 독특한 가게들이 숨어있다. 이색 컨셉으로 볼거리가 다양해지고 있다. 힙 플레이스 : 아는 사람만 가는 곳 핫 플레이스: 누구나 알고 있는 곳 요즘 힙 플레이스들은 간판이 없다. 아는 사람만 SNS 로 조사해서 간다. 신당동은 원래 신을 모시던 당이 있던 데라서 신당동이다. 그래서 신당동에는 무당집이 많다. 그 콘셉을 그대로 살린 주점이다. 떡볶이 역사 (신당동 타운 마복림 할머니 즉석 떡볶이/어묵 역사 등) 떡볶이의 역사 조.. 더보기 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 : 피의 능선 전투 속 김병학 일병 유해.. 73년 만에 국립서울현충원에서 두 형제가 드디어 만났다.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 시작된 전쟁으로 1950년 8월 형 김봉학 씨는 입대를 하게 된다. 3개월 후 50년 11월 동생도 또한 형을 따라 전쟁터로 향했다. 3남 4녀 중 조국을 지키기 위해 6.25 전쟁에 참전했던 두 형제였다. 김병학 일병 유해 발견 1950년 12월 강원 춘천 부근 전투 983 고지에서 12월 24일 동생 김성학이 먼저 전사를 한다. 하지만 끝나지 않은 비극으로 동생 김성학 일병이 전사한 9개월 뒤 형 김봉학 일병마저 전사하게 된다. 형보다 먼저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던 김성학의 유해였다. 그리고 7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6.25 전사자 유해의 신원을 확인했다. 전사자 유해의 신원은 고 김.. 더보기 하륜 이방원의 킹메이커 : 왜 정도전을 죽였을까? 72 정도전은 태조 이성계 시대의 이인자이자 조선개국 일등 공신이다. 태조 이성계의 오른팔이 정도전이였다면 태종 이방원의 오른팔은 하륜이었다. 하륜은 태종 핵심 참모이자 굳건한 이인자였다. 하륜은 누구? 하륜과 정도전은 그들이 모시던 일인자 이방원 이성계와 똑같은 운명을 걷게 된다. 1365년 고려 공민왕 시기에 개경에서 과거시험이 열리던 날이었다. 하륜의 고향은 진주였다 진주에서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로 올라왔었던 하륜의 집안은 사실 출세하는 거리가 먼 집안이었다. 이런 집안에서 자란 하륜은 나이가 들면서 집안 어른들과 다르게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다. 이에 과거 시험에 합격하겠다는 굳은 의지로 서울에 올라온 하륜은 드디어 문과에 19세에 급제하게 된다. 과거 급제 후 하륜의 좌주는 이.. 더보기 6.25 정전협정 :역사상 최장시간의 회담 why? 6.25 전쟁의 판도를 바꿔버린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진한 유엔군. 통일이 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중국군의 개입. 중국군은 전투에 자신이 있었다. 첫번째는 인해전술로 대규모 병력으로 자신이 있었고 또한 이들은 이미 자국에서 국공 내전을 통해 풍부한 전쟁경험도 있었다. 정전협정 회담 장소 막상 6.25전쟁에 들어와보니 유엔군의 막강한 화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중공군이었다. 이에 무력으로 인한 종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중공군은 정전협상 테이블에 앉게 된다. 그래서 정전회담 첫 장소를 개성의 내봉장으로 정했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때 있던 고급 요릿집이다. 그러나 개성은 대한민국이 점령했던 지역이 아닌 북한군의 적진이었다. 첫 회담을 위한 장소 선정에서부터 신경전이 있었고 결국 개성에 위치한 음식점을 선택해서.. 더보기 이전 1 ··· 27 28 29 30 31 32 33 ··· 4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