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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Here

청일전쟁 후 시모노세키 조약 협상 장소 여기? 시모노세키 조약, 복어 요릿집에서 체결된 굴욕의 역사1895년, 일본이 승리한 **청일전쟁(淸日戰爭, First Sino-Japanese War)**이 끝난 후, 청나라는 패전국으로서 강화협상을 해야 했다. 그런데 일본은 협상 장소를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가 아닌 한적한 항구 도시, 시모노세키(下關, Shimonoseki)로 정했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복어 요릿집에서 맺어진 조약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일본과 **시모노세키 조약(馬關條約, Treaty of Shimonoseki)**을 맺어야 했다. 일본 측 협상 대표였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일부러 이 협상을 자신의 고향인 시모노세키에서 진행하도록 했다. 더 흥미로운 점은 협상 장소였다. 일본 정부는 호텔이나 공식적인 정부 청사.. 더보기
설마리 전투 추모 공원 Gloster Hill Memorial Park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은 1951년 4월 22일~25일 임진강 전투(설마리 전투)에서 싸운 영국군 글로스터셔 연대의 희생과 용기를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235고지를 중심으로 3일 동안 압도적인 병력의 중공군을 저지하며 유엔군이 방어선을 재정비할 시간을 벌었다. 전투 당시 영국군 글로스터셔 연대 제1대대는 설마리 지역에서 포위된 채 끝까지 저항하다가 대부분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었다. 이들의 용맹과 희생을 기리기 위해 2014년 4월 23일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이 조성되었다. ✔️설마리-전투-임진강-전투 체크👇 설마리 전투 = 임진강 전투영국군 글로스텨셔 부대는 140여 번의 전투 중에서 설마리 전투(임진강 전투, 1951년 4월 22일~25일)는 단순한 고지 쟁탈전이 아니라, .. 더보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고조선 시대부터 지금까지 살아 있는 나무가 있다?"울릉도에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로 알려진 울릉도 도동항 향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약 2,300년 전, 기원전 3세기경부터 자라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한반도가 아직 고조선(古朝鮮) 시대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생존했다는 의미이다. 이 나무가 싹을 틔울 당시, 세계적으로는 중국의 진나라(秦)가 통일을 이루었고, 로마 공화정이 지중해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시기였다. 한반도에서는 고조선이 점차 세력을 잃어가고 부여와 삼한 등이 등장하기 시작한 때였다. 그런 격변의 시대 속에서 울릉도의 한 작은 나무가 싹을 틔우고,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켜왔다. 🌲울릉도 도동항 향나무 역사울릉도 도동항 향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55호로 지정된 보호수로, 울릉군.. 더보기
인천공항 가이드 : 세계 최고 국제공항으로 인정받는 이유 2001 인천국제공항(Incheon International Airport)은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중구에 위치한 국내 최대 규모의 공항으로, 서울에서 서쪽으로 약 48km 떨어져 있다. 2001년 개항한 이후 세계적인 허브 공항으로 성장했으며, 영종도, 용유도, 삼목도, 신불도 등 인천 앞바다의 섬들을 간척하여 건설되었다. 인천공항의 규모인천공항은 총 면적 약 5,610헥타르(56.1㎢)로, 이는 여의도의 약 19배에 해당하는 크기이다. 👉인천국제공항 제1·제2터미널 항공사 배정 기준은 무엇?  ✈ 인천국제공항의 탄생기존의 김포국제공항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로 이용객이 급증하면서 국제선 수용에 한계를 보였다. 또한 김포공항은 도심과 가까워 확장이 어려웠기 때문에 새로운 국제공항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 더보기
우리나라 최초 극장 협률사 애관극장 어디 있나? 1895년 인천에서 탄생한 협률사(協律舍)는 한국 최초의 민간 극장으로, 근대 공연예술의 시작을 알린 상징적인 공간이다. 현재는 애관극장으로 불리며 13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최근 경영난으로 인해 보존과 활용 방안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애관극장의 탄생부터 변화 과정, 문화적 역할,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1. 협률사의 탄생과 역사적 의미협률사는 1895년 인천 경동(현 애관극장 자리)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민간 극장이다. 당시 인천은 개항 이후 외국 문물이 활발히 유입되던 도시였으며, 협률사는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근대적 문화 공간이었다. ‘협률(協律)’이라는 이름은 ‘음악을 조화롭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연희 공간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문화를 발전시키겠다.. 더보기
[인천 사진 명소 ] 인천항 곡물저장소 : 세계 최대 야외벽화 (사일로 벽화) 혹시 인천항에 가본 적이 있는가? 인천항에는 원래 곡물을 보관하던 커다란 저장소가 있다. 그런데 이곳이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벽화가 있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벽화의 크기는 무려 축구장 4개를 합친 것만큼 거대하고, 높이도 22층 아파트와 비슷한 48m나 된다.    인천항 곡물저장소는 어떤 곳일까?곡물저장소는 말 그대로 곡물을 저장하는 곳이다. 수입한 밀가루, 옥수수, 콩 같은 곡물을 보관하는 시설로  16개의 커다란 원통형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인천항 곡물저장소는 1978년에 만들어졌다. 한국은 예전부터 해외에서 곡물을 수입해서 먹었는데, 인천항이 가장 중요한 수입항 중 하나였다. 그래서 이곳에 큰 저장소를 만들어 배에서 내린 곡물을 보관하고 전국으로 배달했다.   왜 벽화를 그리게 되었을까?이 .. 더보기
덕수궁 준명당 이야기 : 고종의 옹주 사랑 조선 왕실에서 사랑받은 옹주들이 많지만, 고종만큼 딸을 극진히 아꼈던 왕도 드물다.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은 나라를 지키려 애쓰는 한편, 개인적으로는 가족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중에서도 그의 늦둥이 딸 덕혜옹주를 향한 사랑은 각별했다. 덕혜옹주가 태어나기 전부터 고종은 그녀를 위한 공간을 궁궐 안에 마련하려 했고, 그 결과 1906년(광무 10년) 덕수궁 내에 "준명당(浚明堂)"을 건립했다.  고종의 옹주 사랑보통 아기가 태어나면 왕은 일주일 뒤에 찾아가는 것이 관례였으나 고종은 바로 다음날 찾아갔다. 생후 2개월 된 덕혜옹주를 왕의 침전 옆인 함녕전에 옮겨 오도록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덕혜옹주를 보러 함녕전에 들렸다고 한다. 고종은 덕혜옹주를 위해 덕수궁 준명당에 옹주만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 더보기
숭인근린공원 속 정순왕후 이야기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는 조선 단종의 비(妃)로, 15세에 왕비가 되었으나 1455년 수양대군(세조)의 계유정난으로 단종이 폐위된 후 궁에서 추방되었다. 이후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자, 그녀는 동망산 기슭에 초가집(정업원)을 짓고 살며 동망봉에 올라 동쪽 영월 방향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다. 이곳은 후일 '동쪽을 바라본다'는 뜻의 '동망봉(東望峰)'으로 불리며 공원의 상징적 장소가 되었다.  정순왕후는 누구인가? 먼저알아보기  정순왕후 송씨 단종의 왕비 : 72년간 폐서인으로 살아간 비운의 왕비조선 왕조에서 ‘폐서인(廢庶人)’이란 왕비나 왕족이 신분을 박탈당해 평민으로 강등되는 것을 의미한다. 왕비가 폐서인이 된 사례는 극히 드물지만,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144jangane.tistory... 더보기
조선 경종의 묘, 의릉과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의릉(懿陵)**은 조선 제20대 왕 **경종(景宗, 1688~1724)**과 그의 왕비 **선의왕후(宣懿王后)**의 무덤이다. 경종은 숙종의 맏아들이었지만, 그의 생애는 권력 투쟁과 정치적 음모로 점철되어 있었다. 특히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독살설로 이어졌으며, 이로 인해 의릉은 단순한 왕릉이 아니라 조선 후기의 미스터리를 간직한 공간으로 남게 되었다.  1. 의릉의 조성과 숨겨진 이야기경종이 승하한 후 왕릉의 위치를 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논란이 있었다. 원래 서대문구 안산(鞍山) 근처가 후보지였지만, 풍수적으로 흉하다는 이유로 성북구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의릉이 조성된 후에도 관리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리거나 사망하는 일이 자주 발생해 불길한 기운이 서린 곳이라.. 더보기
잠깐, 이게 계단이 아니라고? 청운교 백운교 천년의 비밀 불국사를 방문하면 누구나 한번 쯤은 인증샷을 찍은 장소. 청운교와 백운교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751년(경덕왕 10년)에 건립된 구조물로 단순한 계단이 아니다. 1,270여 년의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신라의 놀라운 건축 기술과 불교적 상징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 문화유산이다. 겉보기엔 그저 오래된 돌계단처럼 보이지만, 사실 청운교와 백운교는 계단의 모습을 한 다리로 만들어졌다. 어라? 근데 왜 다리라 부르는 것일까"저게 왜 다리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언뜻 보면 그냥 오래된 돌계단 같지만, 사실 이 두 구조물은 다리로 불리며 특별한 역사와 의미를 담고 있다. 왜 계단을 다리라고 부를까? 그 이유는 바로 과거 이 계단 아래로 물이 흐르던 흔..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