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History/@ Here 썸네일형 리스트형 성북구 성북동 북정마을 : 서울 달동네 북정 마을은 서울 성북구에 있는 매력적인 동네로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이며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나와 삼성교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성북03번 마을버스를 타면 갈 수 있다. 약 10분 정도 버스를 타고 일곱 정거장을 지나 북정마을상거리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마을의 중심을 이루는 약 420m 길이의 순환 도로는 1983년에 소방 도로로 완공된 것이다. 이 도로를 따라 500여 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이 마을의 이름인 **북정(北亭)**은 큰 가마솥에 메주를 끓일 때 나는 '북적북적' 소리와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북적북적'함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조선 시대에 군인들과 그 가족들이 생계를 위해 메주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았던 데서 시작되었다. 마을의 가파르고 좁은 골목길.. 더보기 세운교 세운 상가 역사 청계천 위 다리에서 시작된 서울의 산업·문화 이야기서울 종로와 을지로 사이, 청계천을 가로지르는 **세운교(世運橋)**에 서면 특별한 풍경이 펼쳐진다.바로 옆에는 1968년 준공된 서울의 첫 현대식 주상복합 건물, **세운상가(世運商街, Sewoon Arcade)**가 우뚝 서 있다.한때 한국 전자산업의 메카로 불렸던 이곳은 지금은 레트로 감성의 핫플레이스로 재조명되고 있다. 🌉 세운교 – 청계천과 세운상가를 잇는 다리세운교는 청계천 위에 놓인 다리 중 하나로, 세운상가와 직접 연결돼 있다.위치: 종로3가와 을지로 사이 청계천 구간기능: 세운상가 단지와 남북 도로를 연결하는 주요 통로역사: 원래 이 자리에는 조선 시대 '효경교(孝經橋)'라는 다리가 있었다. 1958년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사라졌다가,.. 더보기 백인제 가옥 이야기 백인제 가옥 역사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친일파 매국노를 말할때 이완용이 단연 1등으로 언급된다. 이 집은 이완용의 조카이자 경제계의 이완용이라 불리는 한상룡이 1906년~1913년 7년이 걸려 만들어진 근대 한옥집이다 (일제강점기). 몇년에 걸쳐 인근에 12채의 가옥을 사들였고 그 후에 이 MANSION을 지었다. 이 집에서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의 환영식을 했고 일본의 보편적인 건축 재료인 흑송을 사용해서 만들었다. 안채, 사랑채가 복도로 이어진 요소, 장마루, 가옥 재료등 일본식 요소를 가미한 이유는 주요 방문객인 일본 관료나 기업인들에게 일본화된 본인을 보여주는 도구로 선택했다고 볼수 있다. 한상룡은 이곳에서 15년을 살았다. 그러나 자신이 운영하던 한성은행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 집을.. 더보기 이태원의 독특한 역사 이태원은 현재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쇼핑, 음식점, 호텔 등이 밀집한 서울 최초의 관광 특구(1997년 지정)로, 이국적이고 활기찬 분위기로 유명한 곳이다. 경리단길, 남산 타워 산책로, 해방촌 등 가볼 곳도 많아 젊은층에게 인기가 많다. 하지만 이곳에는 우리가 몰랐던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1. 이태원의 이름, 세 번의 변화와 의미이태원의 지명은 발음은 같지만, 사용된 한자가 달라지면서 그 의미가 여러 번 바뀌었다.(1) 첫 번째 이태원: '오얏나무 이(李)'를 사용한 '이태원(李泰院)'조선 초기에 이태원은 **'오얏나무 이(李)'**자를 사용하여 **이태원(李泰院)**으로 불렸다.이(李): 마을에 오얏나무(자두나무)가 많았다는 설과, 조선 왕조 왕실의 성씨가 오얏나무 이(李)이기 때문에 여기에.. 더보기 청계천 정조대왕 능행반차도의 특별함은 무엇? (수선전도) 서울 청계천을 걷다 보면, 갑자기 수백 명의 인물이 행렬을 이루는 장대한 벽화가 눈앞에 펼쳐진다.이 벽화는 조선의 국왕 **정조대왕(正祖大王, King Jeongjo)**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기 위해 한강을 건너 수원으로 향하던 길을 기록한 **정조대왕 능행반차도(陵幸班次圖, Royal Parade Painting)**다.예술성과 기록성이 뛰어난 이 작품은 현재 청계천에 세계 최대 규모의 **도자벽화(Ceramic Tile Mural)**로 재현되어 있어 한국을 찾는 외국인에게도 인기 있는 문화 명소다. 📜 정조대왕 능행반차도의 역사적 배경청계천에 있는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는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가 1795년(을묘년)에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 더보기 낙산 성곽 도보 투어 ( 한양도성 = 서울성곽 ) 옛날에는 서울성곽이란 명칭이었으나 한양 도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을 한양도성이라 부른다. 태조가 나라를 세울때 사직- 종묘 (왕이 효를 숭상하는 의미) - 궁궐 (그 자체가 임금의 존업) - 성곽 쌓기 였다. 1396년 성곽을 쌓기 시작해 끊임없이 복원된다. 성곽이란? 성곽의 의미는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 울타리의 개념으로 성벽을 통해 나라를 지키는 방어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유네스코 등재 추진이유 세계 어디를 가도 수도를 둘러싸고 있는 성곽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 세계 유일하게 수도를 둘러싸고 있는 성곽이 한양 도성인 것이다. 동대문에서 시작하는 낙산 성곽 도보투어 낙산 공간은 커플들이 사진찍으로 많이 올라오는 곳이다. 낙산의 정상은 124m로 그렇게 높지 않은 산.. 더보기 창경궁 후원 춘당지 일제강점기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들면서 창경궁의 많은 전각들이 헐렸고 궁궐 곳곳에 수많은 벚나무를 심었다. 일제는 1909년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조성했다. 순종의 마음을 달랜다는 이유였으나 1911년 명칭을 창경궁에서 창경원으로 바꾸며 궁궐을 하나의 위락시설로 격하시키켜 버렸다. 춘당지 조선시대 춘당지는 작은 연못이었다. 이곳에는 11개의 내농포라는 논이 있었다. 내농포는 임금이 직접 쟁기를 잡고 소를 몰며 농사의 모범을 보이던 곳이었다. 일제는 내농포를 없애고 본래의 춘당지와 합쳐 큰 연못으로 조성했다. 창경원 시설에 이곳은 사시사철 연인들이 보트를 즐기고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타고 공중에는 케이블카도 있었다. 특징:춘당지는 큰 연못(대춘당지)과 작은 연못(소춘당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더보기 송파구 지명 유래 - 방이동과 오금동 송파구의 방이동과 오금동은 병자호란 당시의 아픈 기억이 지명 속에 남아 있는 곳이다. 이 두 지명의 유래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다. 1. 방이동(芳荑洞)의 유래송파구 동쪽에 자리한 방이동은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유래는 병자호란 당시의 이야기다.'오랑캐를 막아낸 곳'이라는 설: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했을 때, 인조가 청나라 군대를 피해 남한산성으로 피난 가는 길이 급박했다. 이때 청나라 군대가 한강을 넘어 남한산성으로 진격하는 길목이었던 지금의 방이동 일대에서 조선의 관군과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청나라 군대를 막아냈다. 이들의 저항 덕분에 인조는 피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처럼 오랑캐를 막아낸 곳이라는 의미에서 처음에는 **'막을 방(防)', '오랑캐 이(夷)'**자를 써서 .. 더보기 송파구 도서관 인조 서흔남 동상은 무엇? 송파구는 현재 롯데월드와 같은 유명한 놀이동산이 있는 활기찬 도시 공간이지만, 사실 이곳에는 병자호란이라는 가슴 아픈 역사가 지명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병자호란(丙子胡亂)**은 1636년에 일어난 전쟁이다. 그 배경은 이렇다. 앞서 1627년에 정묘호란이 있었죠. 후금(後金, 이후 청나라로 국호를 변경)이 명나라와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조선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는데, 친명 정책을 펼치던 인조(仁祖)가 이를 거절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후금이 조선을 침략한 것이 정묘호란이다. 그리고 1636년, 국호를 청(淸)으로 바꾼 청나라는 다시 조선을 침략한다. 이것이 바로 병자호란이다. 청나라 군대는 1636년 12월 9일 압록강을 건넜고, 불과 5일 만에 수도 한양을 점령하는 놀라운 속도로 진격했다. .. 더보기 명동성당 역사 명동성당은 단순한 종교적 건축물을 넘어, 한국 천주교의 발전사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격동적인 근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그 중심에 서 있던 상징적인 장소이다. 1898년에 완공되어 현재까지 12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1.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명동성당이 자리한 현 명동 일대는 조선시대 행정구역상 **'명례방(明禮坊)'**이라 불리던 곳이다. 이 명례방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평신도 주도의 천주교 도입: 한국 천주교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게 선교사가 아닌 조선 지식인 평신도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진 종교이다. 이들은 서학(西學) 연구를 통해 천주교를 접했고, 명례방은 바로 이러한 천주교 신앙 공동체가 처음 형성된 핵심적인 장소였다.최초의 세례와 순교: 조선 .. 더보기 이전 1 2 3 4 ··· 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