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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Here

송파구 도서관 인조 서흔남 동상은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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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는 현재 롯데월드와 같은 유명한 놀이동산이 있는 활기찬 도시 공간이지만, 사실 이곳에는 병자호란이라는 가슴 아픈 역사가 지명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병자호란(丙子胡亂)**은 1636년에 일어난 전쟁이다. 그 배경은 이렇다. 앞서 1627년에 정묘호란이 있었죠. 후금(後金, 이후 청나라로 국호를 변경)이 명나라와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조선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는데, 친명 정책을 펼치던 인조(仁祖)가 이를 거절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후금이 조선을 침략한 것이 정묘호란이다.

 

그리고 1636년, 국호를 청(淸)으로 바꾼 청나라는 다시 조선을 침략한다. 이것이 바로 병자호란이다. 청나라 군대는 1636년 12월 9일 압록강을 건넜고, 불과 5일 만에 수도 한양을 점령하는 놀라운 속도로 진격했다.

 

이때 왕실 가족들은 급히 강화도로 피신했지만, 청나라 군대의 진격 속도가 너무나 빨라 인조와 신하들은 강화도로 가는 길이 막혔다. 결국 인조는 어쩔 수 없이 남한산성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남한산성으로 피신하는 과정에는 서흔남이라는 인물과의 유명한 일화가 전해진다.

  • 서흔남의 빛나는 활약: 사방에 청나라 군대가 가득하고 길에는 눈이 쌓여 남한산성까지 가는 길이 막막했던 인조를 위해, **서흔남(徐欣男)**이라는 나무꾼 출신의 천민이 나섰다. 그는 인조를 업고 산길을 올랐는데, 청나라 군사들이 자신들의 뒤를 쫓아오는 방향을 헷갈리게 하려고 나막신을 거꾸로 신고 산에 올랐다고 한다. 남한산성에 도착한 인조는 서흔남의 기지에 감탄하며 그에게 원하는 것을 물었다. 그러자 서흔남은 뜻밖에도 인조가 입고 있던 **곤룡포(袞龍袍)**를 달라고 요청했다. 인조는 귀한 곤룡포를 벗어주며 소중히 보관해 달라고 말했다.

 

송파구 도서관에 있는 인조 서흔남 동상

 

  • 서흔남은 이후에도 병자호란 내내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청나라 적진을 지나갈 때는 미치광이나 거지 연기를 했고,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皇太極) 옆을 지날 때는 홍타이지가 던져준 고기를 개처럼 흉내 내며 뜯어먹고 그 자리에서 오줌을 누는 등 탁월한 연기와 기지를 발휘해 인조의 서신을 전달하기도 했다. 병자호란이 끝난 후 인조는 서흔남의 충성심을 높이 평가하여 **종이품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라는 높은 품계를 내렸다. 서흔남이 죽은 뒤에는 그의 무덤에 인조의 곤룡포가 함께 묻혔다고 전해진다. 현재 송파구 도서관에는 인조와 서흔남의 동상이 세워져 그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남한산성 서흔남의 묘비

 

원래 서흔남의 무덤은 광주군 중부면 검복리 병풍산에 위치했으나 최근에 화장 후 남한산성 인근으로 묘비만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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