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들면서 창경궁의 많은 전각들이 헐렸고 궁궐 곳곳에 수많은 벚나무를 심었다. 일제는 1909년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조성했다. 순종의 마음을 달랜다는 이유였으나 1911년 명칭을 창경궁에서 창경원으로 바꾸며 궁궐을 하나의 위락시설로 격하시키켜 버렸다.
춘당지
조선시대 춘당지는 작은 연못이었다. 이곳에는 11개의 내농포라는 논이 있었다. 내농포는 임금이 직접 쟁기를 잡고 소를 몰며 농사의 모범을 보이던 곳이었다. 일제는 내농포를 없애고 본래의 춘당지와 합쳐 큰 연못으로 조성했다.
창경원 시설에 이곳은 사시사철 연인들이 보트를 즐기고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타고 공중에는 케이블카도 있었다.
특징:
- 춘당지는 큰 연못(대춘당지)과 작은 연못(소춘당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 연못의 이름은 인근에 있던 '춘당대(春塘臺)'에서 유래했다. 춘당대는 창덕궁 영화당 앞에 있던 넓은 마당으로, 과거 왕들이 활쏘기 훈련을 하거나 과거 시험을 치르던 장소였다. 조선시대에는 창덕궁과 창경궁이 하나의 권역으로 사용되었기에 인접한 연못에 춘당대의 이름을 가져다 붙였다.
-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며, 특히 가을에는 단풍으로 물든 나무들이 연못에 비쳐 장관을 이룬다. 봄에는 벚꽃, 겨울에는 설경이 아름답다.
- 연못 가운데 작은 섬이 있고, 원앙 등의 조류가 서식하여 자연 친화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창경궁 춘당지는 단순히 아름다운 연못을 넘어, 조선시대 왕실의 농업 활동과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궁궐의 제 모습을 되찾으려는 노력까지 담고 있는 공간이다.
식물원
이 유리 온실은 1909년 일제가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식물원이다. 당시에 쉽게 보기 힘든 열대식물을 비롯한 다양한 촤초들을 전시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이 자신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건립 당시 동양에서 최대 규모였으나 한국전쟁 당시 폭격으로 본관만 남아있다.
- 현재의 모습:
- 내부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창덕궁 향나무 후계목 등 다양한 희귀 식물 70여 종이 전시되어 있어, 식물원으로서의 기능도 하고 있다.
- 고즈넉한 궁궐의 분위기와는 또 다른 근대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 많은 관람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특히 사진 촬영을 위한 장소로도 인기가 많다.
1983년 복원 사업에 따라 이름을 다시 창경궁으로 바꿨고 동물원은 서울 대공원으로 옮겨졌다.
창경궁 경춘전 환경전 /창경원이 된 이유
창덕궁과 창경궁은 숲에 둘러싸여 있다. 숲에 가려져 있어 주거 환경에 적합했다. 창경궁은 성종의 할머니 정희왕후와 어머니 인수대비를 위해 지은 궁으로 여인들이 살기 좋게 만든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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