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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Here

이태원의 독특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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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은 현재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쇼핑, 음식점, 호텔 등이 밀집한 서울 최초의 관광 특구(1997년 지정)로, 이국적이고 활기찬 분위기로 유명한 곳이다. 경리단길, 남산 타워 산책로, 해방촌 등 가볼 곳도 많아 젊은층에게 인기가 많다. 하지만 이곳에는 우리가 몰랐던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1. 이태원의 이름, 세 번의 변화와 의미

이태원의 지명은 발음은 같지만, 사용된 한자가 달라지면서 그 의미가 여러 번 바뀌었다.

(1) 첫 번째 이태원: '오얏나무 이(李)'를 사용한 '이태원(李泰院)'

조선 초기에 이태원은 **'오얏나무 이(李)'**자를 사용하여 **이태원(李泰院)**으로 불렸다.

  • 이(李): 마을에 오얏나무(자두나무)가 많았다는 설과, 조선 왕조 왕실의 성씨가 오얏나무 이(李)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따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 태(泰): '크다', '넉넉하다'는 뜻이었다.
  • 원(院): 여관, 즉 여행객을 위한 숙박 시설을 의미했다. '장호원'처럼 '원'자로 끝나는 지명은 교통의 요지에 숙박 시설이 있었음을 나타냈다.

따라서 첫 번째 이태원은 **'오얏나무가 많은 역원(驛院)'**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이는 이태원이 조선 시대부터 외부인이 드나들던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음을 시사했다.

(2) 두 번째 이태원: '다를 이(異)'를 사용한 '이태원(異胎院)'

임진왜란 이후 이태원의 한자는 '다를 이(異)', '벨 태(胎)', '다를 원(院)'을 사용하여 **이태원(異胎院)**으로 바뀌었다. 여기에는 아주 슬픈 사연이 담겨 있었다.

  • 운중사 비구니 겁탈 사건: 1932년 7월 17일자 동아일보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가 이끄는 일본군대가 한강 근처, 지금의 이태원 지역에 주둔했다. 당시 이태원에는 비구니들이 거주하던 운중사라는 절이 있었다. 전쟁과 행군에 지친 일본군이 운중사에 머물면서 비구니들을 닥치는 대로 겁탈했다. 많은 비구니가 임신을 했고, 불교 교리상 살생을 할 수 없어 결국 일본군의 아이를 낳게 되었다.
  • 비극적인 상황: 설상가상으로 일본군은 절까지 불태우고 떠나, 비구니들은 한순간에 길바닥 신세가 되었다. 갈 곳 없는 비구니들은 윤강산(지금의 매봉산) 자락 밑에 움막을 짓고 아이를 낳아 길렀다.
  • 조선 여인들의 참혹한 고통: 비구니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조선 여인들이 일본군에게 겁탈을 당해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 여인들은 아이를 떼기 위해 스스로 비탈진 산을 구르거나, 짠 음식을 먹는 등 온갖 방법을 시도했다. 결국 아이를 지우지 못해 태어난 아기들을 바로 죽이기도 하는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
  • 지명의 유래: 이처럼 임진왜란 때 이방인의 자식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모아 놓고 길렀다고 하여 **'다를 이(異)', '태아 태(胎)', '원(院)'**을 써서 **이태원(異胎院)**이 된 것이다. 또한 임진왜란 때 일본군들이 이태원에 귀화해서 사는 경우도 있었는데, '타인이 살았던 동네'라는 뜻으로 **'이인(異人)'**이 이태원 지명의 어원이라고 보기도 한다.

(3) 세 번째 이태원: '백꽃 이(梨)'를 사용한 현재의 '이태원(梨泰院)'

조선 17대 왕인 효종 이후부터 현재까지 사용하는 이태원의 한자는 다시 바뀌었다. 효종은 기존 '이태원(異胎院)'의 슬픈 뜻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당시 이곳에 **배꽃(梨花)이 많았다고 하여 '백꽃 이(梨)'**를 사용하여 지금의 **이태원(梨泰院)**이 된 것이다.

 

2. 마무리하며: 아픈 역사를 품은 현재의 이태원

같은 발음의 '이태원'이지만, 세 번의 한자 변화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의미가 극적으로 바뀌어 왔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만행과 그로 인해 고통받았던 조선 여인들의 아픈 역사가 '이태원(異胎院)'이라는 지명에 새겨져 있다는 점은 가슴 아프다.

 

오늘날 이태원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활기찬 국제 도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을 방문할 때, 단순히 힙하고 이국적인 공간을 넘어, 그 안에 숨겨진 아픈 역사와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담겨 있음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자주 찾고 즐기는 장소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역사를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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