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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History/벌거벗은 세계사

초콜릿 역사 시작: 마야 문명의 초콜릿 음료 제조 방법 142 -1 초콜릿의 달콤함 뒤엔 암울한 역사가 숨어있다. 초콜릿에 매혹된 유럽인들은 더 많은 초콜릿을 얻기 위해 식민지배를 확대하고 원주민을 착취했다. 초콜릿 역사의 시작점 초콜릿의 시작은 멕시코의 베라크루스이다. 이곳에서 인류 최초로 카카오를 재배하고 초콜릿을 먹었던 올메카 문명이 있던 곳이다. 이곳은 카카오나무 재배에 좋은 조건을 갖춘 메소아메리카 올메카 지역으로 열대우림이 발달해 고무나무는 물론 카카오나무 재배에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다. 올메카 사람들은 약 3200년 전부터 초콜릿 음료를 먹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초콜릿의 원재료는 카카오 나무 열매로 하나에 약 30~50 개 정도의 카카오 콩이 들어있다. 올메카식 초콜릿 음료 만들기 올메카식 초콜릿 음료는 달콤한 맛보단 쓴맛이 강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 더보기
바이킹 역사 300년 : 아이슬란드, 그린란드, 아메리카 발견, 노르망디 왕조 탄생 배경 141-3 바이킹 최초 발견 바이킹은 잉글랜드에서 거센 저항에 막혔으나 그 외 지역에서는 거침없이 세력을 확장해 8세기 북유럽에서 덴마크 왕국이 등장했고 9세기 노레그 왕국 건국(오늘날의 노르웨이 왕) 되었다. 그러면서 바이킹들은 스칸디나비아에서 동쪽 서쪽 남쪽으로 자신들의 땅과 영향력을 넓혀갔다. 아이슬란드 발견 노르웨이 바이킹들은 서쪽으로 항해를 해 무려 약 1000km를 항해한 끝에 화산과 얼음의 섬인 아이슬란드를 발견하게 된다. 이후 노르웨이 바이킹들은 아이슬란드에 정착하며 빠르게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50년 만에 인구가 약 무려 1만 명으로 증가하게 된다. 그린란드의 발견 이에 다시 서쪽으로 항해를 해 세계에서 가장 큰 섬인 그린란드를 발견하게 된다. 그린란드는 세계 빙하의 10분의 1을 차지하는 엄.. 더보기
바이킹 문화와 잉글랜드 왕국의 탄생 141 -2 [이전글] 바이킹 어원 및 강인한 이유는 무엇? 바이킹의 약탈품 중 가장 큰 이득을 줬던 것은 노예 거래였다. 초기 주로 수도원을 약탈하며 수도사와 여자를 약탈했고 약탈한 보물과 노예로 큰 이득을 얻게 되면서 9세기경 유럽을 침략하는 바이킹 수는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다. 바이킹이 유럽의 약탈자에서 한 나라의 정복자가 된 결정적인 사건이다. 전설의 바이킹 라그나르 로드브로크 사건의 시발점은 전설의 바이킹 라그나르 로드브로크에서 시작된다. 그는 바이킹이자 강력한 왕으로 북유럽에서 전해진다. 라그나르 전설에 따르면 북유럽 최고 신 오딘의 직계 후손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바이킹 역사상 가장 많은 보물을 가진 왕이라는 전설이 있다. 노섬브리아 왕국 라그나르가 눈독을 들인 지역은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 가까운 섬인.. 더보기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이집트 전시관에는 무엇이?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는 박물관 외관에도 피라미드 모습을 볼수 있듯이 루브르 박물관에 가장 많은 전시물이 이집트 유물로 이집트관은 20여 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입구부터 이집트 그 자체인 대스핑크스상이 전시관을 지키고 있다. 입구를 지나오면 고대 이집트인들이 사용하던 생활용품도 볼수 있다.    * 도굴된 이집트 유물 : 루브르 박물관 속 람세스 2세 석상 및 파라오 어떻게 가져왔나?  도굴된 이집트 유물 : 루브르 박물관 속 람세스 2세 석상 및 파라오 어떻게 가져왔나?139-2 영국의 지오반니 벨조니는 이집트 유물 도굴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지오반니 벨조니는 이즙트로 건너와 기계를 만들어 팔던 인물로 1816년 룩소르 인근에서 석상 하나를 발견한다. 람세스 2jangane.tistory.com 더보기
대영 박물관 이집트 전시관 로제타석에는 무엇이 기록되어있나? 139 -4 고대 이집트 유물이 유럽의 무분별한 도굴과 외교 수단으로 이용되어 엄청난 양의 유물이 이집트로부터 빠져나갔는데 이런 것들이 대영박물관과 루브르 박물관의 이집트 전시관을 채우게 된다. 1층 전시실 대영박물관은 1층과 2층에 걸쳐 이집트 유물을 전시되어 있다. 1층 전시실에는 거대한 유물이 가득하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람세스 2세의 거대한 석상과 다양한 파라오들의 석상을 볼수 있다. 로제타석 그 중에 가장 유명한 이집트 유물을 로제타석이다. 1799년 나폴레옹의 원정군에 의해 발굴되었으나 영국의 전리품이 되어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거대한 석비에 새겨진 문서이다. 로제타석은 세 가지 서로다른 문자로 적혀있다. 이 비석에서 24명의 파라오 이름이 밝혀지게 된다. 로제타석에 의해 고대 이집트 문자의 뜻을.. 더보기
이집트 오벨리스크가 영국과 프랑스에 있는 이유 139 -3 이집트 유물이 해외에 훨씬 더 많은 이유 특히 루브르 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에는 이집트 유물이 이집트 현재 보다 더 많다. 많은 이집트 유물이 도굴되어 다른 나라로 반출되었고 이집트 유물을 통째로 가져간 사례도 많은데 그 중에 통째로 가져간 유물 중 대표적인 것이 오벨리스크이다. 프랑스 콩코드 광장에 오벨리스크를 볼수 있다. 도굴은 아니지만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신전 앞에 세워두는 일종의 표지석으로 피라미드 모양의 첨탑을 가진 단석체 조형물이다. 이집트 모하메드 알리 총도근 강대국과의 외교를 위해 영국과 프랑스에 오벨리스크를 선물했다. 문제는 오벨리스크의 이동이었다. 오벨리스크는 단석체로 한개의 큰 돌덩어리를 훼손하지 않고 옮기는 것이 관건이었다. 약 3년간 전용 선박과 운반 기계를 제작해 기계를 이용해 오.. 더보기
역사 속 제갈량과 사마의 대결 소설과 어떻게 차이? 132-2 [이전글 ] 사마의 생존비결 제갈량과 사마의 첫 번째 대결 역사 속 제갈량과 사마의 첫 번째 대결은 삼국지 후반후의 맹달이라는 장군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일이다. 맹달은 위촉오 삼국과 모두 국경이 맏닿아 있는 신성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이 지역은 원래 촉나라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맹달은 자신의 이익만 따지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과거 관우가 손권에게 죽어갈때 지원군을 요청했는데도 보내지 않았던 인물이다. 이릉대전 유비, 관우, 조조, 장비의 최후 ↓이전 이야기 적벽대전 속 삼국지 캐릭터 분석/ 삼고초려 의미/ 천하삼분지계 (삼국지 이야기 2.) 208년 적벽대전 조조를 공격한 손권. 유비 연합군은 화공으로 조조를 무너트린다. 한편 적벽의 jangane.tistory.com 이 때문에 유비가 자신을 죽일까 두려.. 더보기
캐럴 (= 케롤: Carol) 역사 131-3 캐럴의 어원은 옛 프랑스어로 둥글게 춤춘다는 의미인 Carole 그리스 헬라어로 피리 연주에 추는 춤이라는 Choraulien 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캐럴의 시작은 축제에서 춤추기 위한 음악이었다. 캐럴이 본격적으로 유럽에서 유행하게 된 계기는 1223년에 아시시의 성 프랑치스코가 예수가 태어난 것을 기리기 위해 마구간 앞에서 춤추면서 노래한 것이 민간에서 캐럴로 불리며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행사가 퍼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지금의 크리스마스 캐럴의 형태로 바뀐 시점은 불명확하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개신교에서는 가톨릭의 음악을 불신했다. 오르간을 포함해 가톨릭 음악을 악마의 음악으로 비판하기까지했었다. 그러나 마틴루터가 캐럴에 대한 음악의 인식을 바꾼다. 이후 개신교에서 캐럴로 다양한 찬송가를.. 더보기
산타 클로스는 존재할까? 131-2 산타 클로스 기원 지금의 산타 모습과는 다르지만 산타는 존재했던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3~4세기 동로마 제국에서 활동하며 성인으로 시성된 튀르키예 기독교 성직자 성 니콜라(270~343) 가 산타의 원조로 불리고 있다. 평소 선행을 베풀었던 성 니콜라오스는 아주 가난했던 세딸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너무 가난한 집안이라 딸들을 팔아야 하나를 고민할지까지 생각할 만큼 가난했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성 니콜라오스는 이 가족을 도와주기 위해 밤에 가복의 집을 방문해 창문 너머로 몰래 황금 세 덩이를 던저주고 갔다. 그런데 그가 던진 황금 세 걔가 떨어진 위치가 창문 너무 걸려 있던 양말 속으로 금덩이가 들어갔고 여기에서 크리스마스에는 양말에 선물을 넣는 전통이 생겼다고 한다. 이후 서기 343.. 더보기
세계 최초 크리스마스 씰 / 성탄절이 공휴일로 언제부터 지정되었나? 세계 최초 크리스마스 씰 크리스마스 씰은 우표의 기능은 하지 않지만 해마다 독특한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 19세기 산업혁명 시기 전염병이 난무하던 때 결핵 환자가 많았는데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우체국 직원이 우편물에 동전 한 닢짜리 씰을 붙여 보내면 환자를 도울 수 있는 기금을 마련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아이디어를 내서 덴마크 국왕에게 전달했고 1904년 12월 10일 세계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이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은 일제강점기 때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최초 크리스마스 씰 (Christmas seal) 일제강점기 속 최초 크리스마스 씰 (Christmas seal) -셔우드 홀 / 엘리자베스 키스 우리나라 최초 크리스마스 씰 우리나라의 최초의 크리마스 씰을 만든 사람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