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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명동성당 역사 명동성당은 단순한 종교적 건축물을 넘어, 한국 천주교의 발전사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격동적인 근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그 중심에 서 있던 상징적인 장소이다. 1898년에 완공되어 현재까지 12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1.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명동성당이 자리한 현 명동 일대는 조선시대 행정구역상 **'명례방(明禮坊)'**이라 불리던 곳이다. 이 명례방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평신도 주도의 천주교 도입: 한국 천주교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게 선교사가 아닌 조선 지식인 평신도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진 종교이다. 이들은 서학(西學) 연구를 통해 천주교를 접했고, 명례방은 바로 이러한 천주교 신앙 공동체가 처음 형성된 핵심적인 장소였다.최초의 세례와 순교: 조선 .. 더보기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 광혜원 - 세브란스 병원 역사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은 **제중원(濟衆院)**이다. 이는 단순한 병원을 넘어 한국 근대 의학의 시작점이자 서양 문화가 조선 사회에 깊이 스며드는 중요한 통로였다. 1. 설립 배경: 갑신정변과 알렌 선교사의 활약제중원 설립의 결정적인 계기는 1884년 12월 4일에 발생한 갑신정변이었다. ‼️갑신정변 자세히 보기 click 민영익의 중상: 당시 급진 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 중에 개화파의 칼에 명성황후의 조카이자 고종의 신임을 받던 **민영익(閔泳翊)**이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 14명의 한의사가 동원되었지만, 출혈이 멈추지 않아 민영익은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다.알렌 선교사의 등장: 이때 미국에서 온 선교사이자 의사였던 **호러스 뉴턴 알렌(Horace Newton Allen)**이 나섰다. 그는 .. 더보기
총·능·원·묘·분… 왕릉 ~ 일반 무덤 정확한 구분법과 의미 한국 역사 속 무덤(grave)에는 왕의 능(陵), 왕세자의 원(園), 귀족의 묘(墓), 고대 왕의 분(墳), 주인 미상의 총(塚) 등 다양한 명칭이 있습니다.그저 ‘무덤’으로 뭉뚱그리기에는 이들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존재하죠.왜 이렇게 나뉘었을까요? 역사와 신분 체계에 숨겨진 의미를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 능(陵, Royal Tomb) — 확정된 왕과 왕비의 무덤'능(陵)'은 국왕(King)과 왕비(Queen)의 무덤입니다.조선왕릉(Joseon Royal Tombs)처럼 국가가 직접 조성한 왕릉은 격식이 엄격하며,석물(Stone Objects), 곡장(曲牆, Curved Wall), 홍살문(Red Gate), 신도비(神道碑, Monument)까지 완비되어 있어 왕권(Royal Authority).. 더보기
한국 지폐 속 위인 4 세종대왕 한국 화폐 속 세종대왕 이야기여러분,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불리는 세종대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는 오늘날 10,000원권 지폐의 주인공이자, 한국의 문화와 과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화폐 속 세종대왕: 한국의 대표 모델세종대왕은 1960년 8월 15일 발행된 개천절 기념 지폐에 처음 등장한 이후, 오늘날 10,000원권에 이르기까지 60여 년간 다양한 권종에 사용된 한국 화폐의 대표 모델이다. 이는 그가 얼마나 많은 국민에게 존경받는 인물인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세종대왕의 업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한글, 즉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이다. 백성들이 쉽게 글을 배우고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든 이 문자는 오늘날까지 한국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 더보기
광화문 광장 투어 ( 이순신 장군 ) 1 이순신 장군 동상과 광화문 광장이순신 장군 동상은 50년 넘게 광화문 광장을 지키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명이다. 1968년 4월에 건립된 높이 17m의 청동 동상은 광화문 사거리에 당당하게 서 있다. 당시 풍수지리학자들은 세종로와 태평로가 뻥 뚫려 있어 남쪽으로부터 일본의 기운이 너무 강하게 들어온다고 보았다. 이를 막기 위해 일본이 가장 무서워할 인물인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상 아래에는 거북선 모형과 북, 전진하는 전함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거북선 (귀선)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은 1592년 사천해전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정식 명칭은 귀선이다. 이는 조선 수군의 주력선인 판옥선에 칼과 송곳을 꽂아 일본 수군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개량한 것이었다.. 더보기
한일병합조약 = 경술국치 내용은 무엇? 한일병합조약( The Japan-Korea Annexation Treaty )은 1910년 8월 22일에 대한제국과 일본 제국 사이에 체결된 조약이다. 이 조약은 대한제국의 통치권을 일본에 넘기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 조약으로 인해 대한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고, 이듬해 10월 1일부터 신설된 조선총독부의 통치를 받게 된 것이다. 이완용이 경술국치 기념해 축배를 들던 장소 통감관저터통감관저 터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나라가 망한 날을 기념하여 매국노 이완용이 축배를 들었던 장소가 있다. 위치: 일본 공사관 있는 곳 (서울 중구 예장동) 경술국치 1주일 전 창덕궁의 대조전jangane.tistory.com 주요 내용대한제국의 통치권 양여: 대한제국의 황제가 대한제국의 모든 통치권을 일.. 더보기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불 어디에? (전깃불 역사 ) “밤이 낮처럼 밝아졌다”1887년, 경복궁 깊숙한 **건천궁(Geoncheonggung)**에서 조선 최초로 전기불이 켜졌다.이 불빛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 조선을 근대화로 이끈 상징적인 첫걸음이었다 🌊 연못에서 전기를 만들다경복궁 건천궁에는 연못이 있었다.고종은 이 연못에 물을 끌어올려 수력(水力, Hydropower)으로 전기를 생산했다.서양인 기술자가 설치한 발전기로 켜진 불빛에 조선 사람들은 말 그대로 놀랐다.당시 상궁의 기록이다.“기계가 움직여 물이 끓는 소리와 함께 궁궐이 대낮같이 환해졌다.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별명으로 증명된 인기조선 사람들은 처음 보는 전기불에 별명까지 붙였다.물불(水火, Water Light) : 물에서 불이 나오니까건달불(建達火, Wandering L.. 더보기
중전이 되기 전 세자빈 간택 과정은? 맨 처음 전국에 금혼령을 내린다.양반 가문 12~13세 처자들의 혼인을 금한다. 그 후 3차례 시험을 본다. 면접 전 관상 심사가 있다. 관상을 통과하면 밥 먹기 면접 심사가 있다. 밥 먹기 시험의 모범 답안은 백성들의 피 땀 눈물이 담겨있는 밥과 반찬들이나 그 정성을 생각해 싹싹 다 먹는 것이 정답이다. 이렇게 과정이 까다롭고 여러 시험을 거쳐 간택되는 세자빈이지만 중전까지 다이렉트로 갈 수 있는 방법도 있다. What is the course of Sejabin before the heavy war? 더보기
삼순이 계단의 비밀 : 인왕산 국사당 (조선 무속신앙 이야기) 1️⃣ 한국 무속신앙의 기원 한국 무속신앙은 고조선의 단군신화에서 비롯되었다.고대에는 정치와 종교가 하나였고, 왕이 제사장이기도 하였다.‘단군’은 제사장을, ‘왕검’은 군장을 의미하였다.이것은 권력과 종교가 일치한 제정일치 사회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신라시대 2대 왕의 이름은 차차웅인데 차차웅의 뜻은 무당이라는 의미로 무당이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모셨기때문에 두렵고 높은 존재로 인식되었던 시기이다. 왕실에서는 무속신앙을 국가적인 행사로 동원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국사당이다. 2️⃣ 조선과 무속신앙 조선은 성리학 국가였으나, 무속을 완전히 배척하지 않았다.중요한 국가 행사에는 무속의식을 적극 활용하였다.대표적인 예로기우제 : 비가 오길 기도하는 제사기청제: 날씨가 맑아지길 바라는 제사재앙 방지제.. 더보기
효종 딸바보였다. 숙명공주와의 애틋한 편지.. “조선시대에도 딸바보 아버지가 있었다?”왕이라는 무게보다 딸을 먼저 생각했던 조선 제17대 왕 효종(孝宗, Hyojong).그의 셋째 딸 **숙명공주(淑明公主, Princess Sukmyeong)**와 나눈 애틋한 편지 한 장에는, 권력을 뛰어넘는 가족애가 담겨 있었다.💖 효종과 숙명공주 — 왕이자 아버지의 사랑조선 제17대 왕 **효종(孝宗, Hyojong)**은 인선왕후와의 사이에서 여러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셋째 딸인 **숙명공주(淑明公主, Princess Sukmyeong)**에게 유난히 깊은 애정을 쏟았다.딸을 특별히 아꼈던 효종은 숙명공주가 혼인할 때, 평범한 왕족의 혼인으로는 이례적으로 궁궐 못지않은 크기의 대궐 같은 신혼집을 따로 마련해 주었다. 이는 단순한 혼사 준비를 넘어, 아버지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