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History 썸네일형 리스트형 태종 이방원과 살곶이 다리, 피로 얼룩진 권력의 흔적 서울 성북구와 동대문구를 잇는 **살곶이 다리(箭串橋)**는 단순한 석교가 아니다. 이곳에는 조선 초 가장 강력한 왕으로 평가받는 태종 이방원과 관련된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살곶이 다리는 단순한 교통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태종의 피로 얼룩진 권력 투쟁, 숙청, 그리고 왕권 강화의 역사까지 녹아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과연 태종과 살곶이 다리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살곶이 다리,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서울 성동구와 동대문구를 잇는 살곶이 다리는 조선의 자존심이다. 중랑천을 가로지르는 이 웅장한 돌다리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살곶이 다리보다jangane.tistory.com 태종의 사냥터, 살곶이태종은 어릴 때부터 무예에 능했고, 활쏘기를 .. 더보기 조사의의 난 : 조선 태종 시기 마지막 고려 부흥 운동 조선이 건국된 후에도 고려 왕조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조선의 3대 왕 **태종 이방원(太宗 李芳遠, 재위 1400~1418)**이 왕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402년(태종 2년), 고려 왕조를 부활시키려는 세력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조사의의 난"**이다. 이 반란은 조선 건국 이후 고려 왕조의 잔존 세력들이 마지막으로 저항했던 사건 중 하나로, 태종의 왕권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조사의는 누구이며, 이 반란은 어떻게 일어났고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1. 조사의는 누구였을까?**조사의(趙思義)**는 고려 말의 무신(武臣, 무관)으로, 고려 왕조를 끝까지 지지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진 후에도 새로운 왕조를 받.. 더보기 토정비결 운세 보기 : 희망을 주고자 만든 역술서 우리나라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는 매년 새해가 되면 한 해의 운세를 미리 보는 것이다. 그럴 때 주로 보는 책이 바로 토정비결이다. 이 책을 만든 사람은 조선 시대의 학자 토정 이지함인데, 그는 왜 이 책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만들었을까? 어려운 이야기는 모두 빼고 아주 쉽게 설명해 보겠다. ▼토정비결 보기 사이트 이동 click ▼ 토정 이지함 누구인가? 이지함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정치가, 경제 전문가였다. 그의 본명은 이지함(李之菡)이고, 호는 **토정(土亭)**이었다. "토정"이라는 호는 그가 젊은 시절 흙으로 만든 초가집에서 학문에 몰두한 데서 유래했다. 그는 **중종(재위: 1506-1544)**과 **명종(재위: 1545-1567)**의 시기 동안 살았다. 당시 조선은 사회적.. 더보기 김처선의 잔혹한 처형: 연산군 폭정의 극치 김처선의 죽음은 연산군의 잔혹성과 권력의 폭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건이다. 단순히 활에 맞아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그의 처형 과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혹했다. 연산군은 김처선의 죽음을 통해 신하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자신에게 도전하는 자들을 철저히 응징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했다. 1. 처형 과정: 상상 이상의 잔혹함김처선은 단순한 내시가 아니라, 왕의 폭정을 막고자 직언했던 충신이었다. 그러나 연산군은 이를 도전으로 받아들였고, 처형 과정은 그의 잔인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활로 겨냥당하다:연산군은 김처선을 활로 쏘라는 명령을 내렸다. 신하들과 군사들은 김처선을 표적으로 삼아 활을 발사했고, 그의 몸은 온통 화살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다.팔과 다리의 절단:활로 처형하는 .. 더보기 조선 서민의 상징 민화 이야기 : 책거리, 화조도 "어느 집이든 벽 한쪽에 그림 한 점쯤은 걸려 있었던 시절, 그 그림 속에는 사람들의 염원이 가득 담겨 있었다." 조선 시대의 그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왕의 권위를 상징하기도 했고, 사대부의 품격을 나타내기도 했으며, 백성들의 꿈과 소망을 담기도 했다. 특히 민화는 조선 백성들의 소박한 일상과 마음속 깊은 소망을 담아낸 그림으로,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책거리는 조선 사회의 독특한 문화와 욕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 흥미로운 민화 속 이야기를 지금부터 풀어보자. 조선 시대 회화의 분류 기준조선 시대 그림은 크게 두 가지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대상에 따른 분류궁중 회화: 왕과 국가를 위한 그림.문인화: 사대부를 위한 그림.민화: 대중을 위한 그림으로,.. 더보기 태종 이방원과 후궁들 : 효빈 김씨, 신빈 신씨 , 선빈 안씨 최후는? 태종의 후궁 19명 중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조선 왕조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특히 자녀를 낳은 후궁들은 더욱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숫자로 보는 태종의 궁궐 로맨스"후궁 총 인원: 19명정비: 원경왕후 민제자녀: 총 31명 원경왕후의 자녀: 7명알려진 후궁들의 자녀: 6명 드라마 원경 - 19명의 후궁을 둔 왕과 한 여인의 이야기드라마 '원경2025년 1월, tvN과 TVING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원경'**은 조선 건국 초기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한 본격 사극이다. 고려의 멸망과 조선 왕조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변곡점에서 태종 이products.wissue.net 1위 세종의 어머니 원경왕후 민씨태종이 즉위한 후, 민씨는 원경왕후로 책봉되어 조.. 더보기 잠깐, 이게 계단이 아니라고? 청운교 백운교 천년의 비밀 불국사를 방문하면 누구나 한번 쯤은 인증샷을 찍은 장소. 청운교와 백운교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751년(경덕왕 10년)에 건립된 구조물로 단순한 계단이 아니다. 1,270여 년의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신라의 놀라운 건축 기술과 불교적 상징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 문화유산이다. 겉보기엔 그저 오래된 돌계단처럼 보이지만, 사실 청운교와 백운교는 계단의 모습을 한 다리로 만들어졌다. 어라? 근데 왜 다리라 부르는 것일까"저게 왜 다리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언뜻 보면 그냥 오래된 돌계단 같지만, 사실 이 두 구조물은 다리로 불리며 특별한 역사와 의미를 담고 있다. 왜 계단을 다리라고 부를까? 그 이유는 바로 과거 이 계단 아래로 물이 흐르던 흔.. 더보기 화천 산천어 축제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 : 축제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겨울마다 강원도 화천군을 방문하면 꽁꽁 언 얼음 위에서 산천어를 낚으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화천 산천어 축제는 단순한 겨울 이벤트가 아닌,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엮은 독특한 축제로 자리 잡았다. 이 축제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일까? 1. 산천어 축제 기원과 역사적 배경 화천 산천어 축제는 2003년, 강원도 화천군의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겨울철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화천은 겨울철 차가운 기후와 깨끗한 계곡물이 흐르는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얼음낚시와 같은 겨울 체험 프로그램에 최적의 장소로 꼽혔다. 축제의 핵심인 산천어는 지역 계곡에서 서식하는 토종 어종으로, 산천어 낚시는 화천의 생태적 특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 더보기 전주 전동성당 무엇이 특별한가? 전동성당은 한국 가톨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유적지로,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아름다운 성당이다. 이곳은 한국 전통과 서양식 건축이 융합된 독특한 건축물로, 관광객들에게도 사랑받는 명소이다. 특히, 이 성당은 한국 가톨릭교의 순교자 역사를 기리는 상징적인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전동성당의 붉은 벽돌 외관과 둥근 돔형 첨탑은 마치 유럽의 고딕 건축 양식을 연상시키며,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만남을 상징한다.전동성당 역사적 배경 전동성당의 이름은 성당이 위치한 지역인 "전동(殿洞)"에서 유래되었다. 전동은 조선시대 전주부성의 남문 인근 지역으로, 과거에는 조선 태조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봉안했던 전주 경기전과 가까운 곳이었다. 이러한 지역적 배경 덕분에, 전동성당은 역사와 종교적 의미가 모두 깊다. 전동성.. 더보기 *한반도와 유라시아 초원 유목민과의 교류 흔적들: 황금보검, 신라금관, 천마총 기원 유라시아 교류의 중심, 한반도유라시아는 유럽과 아시아를 묶어 부르는 이름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유럽과 아시아 사이의 알려지지 않은 중앙아시아 초원지대를 포함한다. 구소련 해체 이전까지 접근이 어려웠던 이 지역의 문화를, 고분 유물을 통해 알게 되었다. 특히, 신라와 고구려의 유물과 무덤 양식은 유라시아와의 긴밀한 문화 교류를 보여주는 사례다. 유라시아는 유럽과 아시아를 하나로 묶어서 부르는 이름이지만 엄밀히 말해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있는 알려지지 않은 땅들을 일컫는다. 우리에겐 아직 낯선 중앙아시아 초원지대인 구소련 지역으로 90년대 이전까지 접근이 어려웠다. 그러나 이 유라시아 지역간의 교류를 무덤을 통해 알게되었다. 경주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고분들은 지하에 나무로 무덤방을 만들고 시신을 넣어 돌을 .. 더보기 이전 1 ··· 3 4 5 6 7 8 9 ··· 4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