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History 썸네일형 리스트형 손탁 호텔 역사 : 조선 최초 서양식호텔 1890년대 조선 한복판, 정동에는 이국적인 분위기의 서양식 건물이 하나 세워졌다. 당시 조선에서는 보기 드문 벽돌로 지어진 이 건물은 바로 ‘손탁호텔’이었다. 조선에서 최초로 개관한 서양식 호텔이었으며, 외교 사절과 고위층 인사들이 모이는 장소로 각광받았다. 그런데 이 호텔을 만든 사람은 조선인이 아닌 한 외국 여성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앙투아네트 손탁(Antoinette Sontag). 프랑스계 독일인이었던 그녀는 조선에서 서양 문화를 전파하고, 개화기 외교의 중심에 선 인물이었다.손탁은 누구인가?손탁은 프랑스계 독일인으로, 러시아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조선어까지 5개 국어에 능통한 인물이었다. 1885년, 초대 러시아 공사와 함께 조선에 입국하면서 고종과 인연을 맺었다. 그녀는 러시아 외교.. 더보기 2차 왕자의 난 : 이방간의 난 조선 초기 왕권은 안정되지 않았고, 태조 이성계가 즉위한 후에도 그의 아들들 사이에서 왕위 계승을 둘러싼 치열한 다툼이 이어졌다. 그중 1398년(태조 7년) 발생한 1차 왕자의 난은 태조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이 형제들을 제거하고 실권을 장악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정치적 불안 요소가 남아 있었다. 이후 1400년(정종 2년)에 벌어진 2차 왕자의 난은 태종 이방원이 조선의 절대 권력자로 자리 잡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배경과 원인을 살펴보고, 당시 정국과 전개된 전투 상황을 자세히 분석해 보자. 2차 왕자의 난의 배경과 원인2차 왕자의 난이 일어난 주요 배경에는 조선 왕실 내부의 권력 투쟁과 정치적 긴장감이 깔려 있었다. 1차 왕자의 난 이후, 이방원은 정권을 사실상 장악했지만 왕위.. 더보기 이방원 왕자의 난 1차 조선이 건국된 후 왕위를 누가 이을지를 두고 큰 혼란이 일어났다. 태조 이성계는 여섯째 아들 방석을 세자로 정했지만, 많은 사람들의 반대가 있었다. 특히 다섯째 아들 이방원은 자신이 조선을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웠다고 생각했기에, 권력에서 밀려난 것에 강한 불만을 품었다. 이방원은 결국 무력을 사용해 1398년 8월 정변을 일으켰다. 이 사건이 바로 ‘1차 왕자의 난’이다. 형제와 신하들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졌고, 이 사건으로 인해 조선의 권력 구조가 크게 바뀌었다. 과연 1차 왕자의 난이 어떤 배경에서 일어났으며, 조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자세히 알아보자. 1차 왕자의 난의 배경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한 후, 정도전을 중심으로 나라의 틀을 잡아갔다. 정도전은 왕권보다 신하들의 힘을.. 더보기 [인천 사진 명소 ] 인천항 곡물저장소 : 세계 최대 야외벽화 (사일로 벽화) 혹시 인천항에 가본 적이 있는가? 인천항에는 원래 곡물을 보관하던 커다란 저장소가 있다. 그런데 이곳이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벽화가 있는 곳으로 유명해졌다. 벽화의 크기는 무려 축구장 4개를 합친 것만큼 거대하고, 높이도 22층 아파트와 비슷한 48m나 된다. 인천항 곡물저장소는 어떤 곳일까?곡물저장소는 말 그대로 곡물을 저장하는 곳이다. 수입한 밀가루, 옥수수, 콩 같은 곡물을 보관하는 시설로 16개의 커다란 원통형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인천항 곡물저장소는 1978년에 만들어졌다. 한국은 예전부터 해외에서 곡물을 수입해서 먹었는데, 인천항이 가장 중요한 수입항 중 하나였다. 그래서 이곳에 큰 저장소를 만들어 배에서 내린 곡물을 보관하고 전국으로 배달했다. 왜 벽화를 그리게 되었을까?이 .. 더보기 덕수궁 준명당 이야기 : 고종의 옹주 사랑 조선 왕실에서 사랑받은 옹주들이 많지만, 고종만큼 딸을 극진히 아꼈던 왕도 드물다. 대한제국의 황제였던 고종은 나라를 지키려 애쓰는 한편, 개인적으로는 가족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중에서도 그의 늦둥이 딸 덕혜옹주를 향한 사랑은 각별했다. 덕혜옹주가 태어나기 전부터 고종은 그녀를 위한 공간을 궁궐 안에 마련하려 했고, 그 결과 1906년(광무 10년) 덕수궁 내에 "준명당(浚明堂)"을 건립했다. 고종의 옹주 사랑보통 아기가 태어나면 왕은 일주일 뒤에 찾아가는 것이 관례였으나 고종은 바로 다음날 찾아갔다. 생후 2개월 된 덕혜옹주를 왕의 침전 옆인 함녕전에 옮겨 오도록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덕혜옹주를 보러 함녕전에 들렸다고 한다. 고종은 덕혜옹주를 위해 덕수궁 준명당에 옹주만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 더보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결말 보기 1992년 개봉한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문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작 소설과 영화는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는 동일하지만, 표현 방식과 일부 내용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특히 결말과 인물들의 감정 표현, 시대적 배경 묘사에서 중요한 차이가 나타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다를까? 줄거리 먼저 확인하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줄거리 및 영화,소설 결말 비교 (Our Twisted Hero)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Our Twisted Hero) 87년 발표된 중편 소설 11회 을 수상한 작품으로 이문열 작가의 소설이다.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권력관계를 다룬 작품으로 청소년 필독서이기도 하다. 우jangane.tistory.com 결말의 차이: 소설은 담담, 영화는 극적 연.. 더보기 기사환국 송시열의 죽음 조선 숙종 시대는 극심한 당쟁과 끊임없는 환국(換局)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1689년의 **기사환국(己巳換局)**은 조선 정치사에서 가장 격변의 순간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서인의 거두 송시열이 사사(賜死)되었고, 장옥정(장희빈)이 왕비로 책봉되는 등 커다란 정치적 변화가 발생했다. 기사환국의 배경, 진행 과정, 송시열의 죽음과 장옥정의 운명을 자세히 살펴보자. 1. 기사환국의 배경: 숙종과 당쟁의 격화숙종 초기 정권은 서인이 장악하고 있었다. 서인은 명분과 성리학적 원칙을 중시하는 정치 세력으로, 남인보다 강한 정치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서인의 대표적 지도자는 송시열이었으며, 그는 주자학적 원칙을 바탕으로 강한 신권(臣權)을 주장했다. 한편, 숙종의 후궁이었던 **장옥정(장.. 더보기 숭인근린공원 속 정순왕후 이야기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씨는 조선 단종의 비(妃)로, 15세에 왕비가 되었으나 1455년 수양대군(세조)의 계유정난으로 단종이 폐위된 후 궁에서 추방되었다. 이후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자, 그녀는 동망산 기슭에 초가집(정업원)을 짓고 살며 동망봉에 올라 동쪽 영월 방향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다. 이곳은 후일 '동쪽을 바라본다'는 뜻의 '동망봉(東望峰)'으로 불리며 공원의 상징적 장소가 되었다. 정순왕후는 누구인가? 먼저알아보기 정순왕후 송씨 단종의 왕비 : 72년간 폐서인으로 살아간 비운의 왕비조선 왕조에서 ‘폐서인(廢庶人)’이란 왕비나 왕족이 신분을 박탈당해 평민으로 강등되는 것을 의미한다. 왕비가 폐서인이 된 사례는 극히 드물지만,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144jangane.tistory... 더보기 조선 경종의 묘, 의릉과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의릉(懿陵)**은 조선 제20대 왕 **경종(景宗, 1688~1724)**과 그의 왕비 **선의왕후(宣懿王后)**의 무덤이다. 경종은 숙종의 맏아들이었지만, 그의 생애는 권력 투쟁과 정치적 음모로 점철되어 있었다. 특히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독살설로 이어졌으며, 이로 인해 의릉은 단순한 왕릉이 아니라 조선 후기의 미스터리를 간직한 공간으로 남게 되었다. 1. 의릉의 조성과 숨겨진 이야기경종이 승하한 후 왕릉의 위치를 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논란이 있었다. 원래 서대문구 안산(鞍山) 근처가 후보지였지만, 풍수적으로 흉하다는 이유로 성북구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의릉이 조성된 후에도 관리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리거나 사망하는 일이 자주 발생해 불길한 기운이 서린 곳이라.. 더보기 영조 가계도 : 조선 시대 최장기간 재위, 21대 왕 영조의 가계는 정실부인에게서 자식이 없었고, 후궁들에게서 얻은 자녀들도 극심한 차별 속에서 성장하였다. 특히 사도세자의 죽음은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이후 그의 아들 정조가 즉위하면서 새로운 정치 개혁이 시작되었다. 영조의 가계도는 조선 왕실의 복잡한 권력 구조와 왕실 내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가족 관계를 살펴보면, 개인적인 감정이 정치적 선택과 결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조선 시대 최장기간 재위 왕 영조 재위 기간이 52년인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왕이고 검소한 생활 습관에 채식으로 수명도 82세였다. 우리나라 단군이래 두 번째로 오래 산 왕이 영조였다. 첫 번째 고구려 시대의 최장수 (만 98세.. 더보기 이전 1 2 3 4 5 6 7 8 ··· 4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