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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경회루 이야기 경회루는 태종 이방원이 서울로 돌아올때 경복궁으로 가지 않고 창덕궁을 새로 지었는데 자신이 경복궁을 버린 것이 아닌 궁궐은 양궐 체제로 있어야 된다고 말하며 법궁으로서의 경복궁을 부각하려 경회루를 새로 짓게 한 것이다. 경회루는 천민출신 박자청에 의해 만들어진 건물이다. 성균관 문묘, 청계천의 광통교, 창덕궁의 금천교, 등을 만든 사람이다. 당시 경회루 공사에만 5천 명이 동원되었는데 1411년 8월 착공 1412년 4월 8개월 만에 완공이 되었다. 연회와 강연의 장으로 사용되었던 경회루는 옛날에는 담이 있어 왕과 일부 신하만 갈 수 있던 장소였고 안을 볼수가 없었다. 한 일화로 직급 낮은 관리가 담을 넘어 구경하다가 세종을 만났는데 세종은 노래 한 곡 해보라고 했다. 그만큼 은밀하고 풍류가 있는.. 더보기
한국 최초 서울전차 역사, 무엇을 바꾸어 놓았나? 한국 최초 전차 우리나라 전차는 70년간 운행이 되었는데 사실 서울에 남아있는 전차의 흔적은 전차 363호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서 있는 381호 단 두 대뿐이다. 그런데 얼마전 이것의 흔적이 얼마전 발견되었다. 1899년 5월 4일 3시 우리나라 최초의 전차가 개통되었다. 이것은 일본 교토에 이어 아시아 두 번째로 개통된 것으로 사람들은 이 전차를 보기 위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동대문 안쪽에 차고지와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가 위치해 있었다. 전차가 도입되기 전 고종은 매번 막대한 비용을 들여 명성황후의 묘, 홍릉을 행차하곤 했는데 당시 한성전기회사를 위탁 운영하던 미국인 콜브란 (H. Collbran) 이 이를 보고 전차를 도입하면 행차비용을 줄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수익도 올릴 수 있다고 .. 더보기
거북선 구조 및 판옥선, 거북선 비교 거북선의 구조    거북선 용 머리가 있는 이유 가설 1: 화포를 넣어 발사했을 것이다.라는 가설이 있다. 가설 2: 나무로 된 배로 해전을 치루던 시기에 중요했던 무기는 상대방 배의 선수에 충돌하는 청동으로 된 무기였다. (충파 전법) 거북선 앞 용머리가 금속으로 만들어 충파 전술에 활용됐을 것이다.    거북선의 용머리에서 현자총통(대포)를 발사해야 하는데 ㄱ자 구조라면 대포 발사가 불가능하여 실제 용머리 형태는 일(ㅡ)자로 박힌 모양 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거북선 덮개는 철로 만들었다?  덮개의 재질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철이 아니다: 당시 기술로는 역부족 #철이다:철이 아니면 설명 불가능한 내구성 이 부분은 알수가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일본군에게 공포심을 심어준 것을 확실하다.  왜적.. 더보기
조선총독부 폭파 이유: 김영삼 대통령 역사 바로 세우기 프로젝트 김영삼 대통령(임기: 1993~1998.2월)은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으로 민주화 이후 첫 문민정부를 이끈 인물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부패 척결과 경제 개혁을 추진했고,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등 중요한 시기를 거쳤다. 역사바로세우기 프로젝트는 김영삼 대통령이 추진한 중요한 개혁 정책 중 하나로 주요 목표는 한국의 현대사에서 왜곡되거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역사적 진실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중에 조선총독부 폭파사건은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1910년 ~1945년까지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 제국의 한국 통치 본부였던 건물로 서울 경복궁 앞에 위치해 있었으며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한국이 독립한 후에도 이 건물은 미군정 사령부- 중앙청- 국.. 더보기
청와대 수궁터 역사 ( 구본관 터 ) 현재의 개방된 청와대 부지는 과거 수궁터가 있던 곳으로 한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로 조선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역사적 변천을 겪어 왔다. 청와대 수궁터는 조선 시대의 왕실 별궁에서 시작하여, 일제강점기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적 변천을 거친 장소이다. 이곳은 한국의 역사적 사건들과 문화적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장소로, 청와대의 복합적인 역사와 문화적 의미는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조선 시대의 수궁터수궁터는 조선시대 왕실의 별궁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조선 왕조(1392-1910) 초기에 왕실의 사냥터로 사용되기 시작하다가 이후 왕의 휴식처인 별궁을 지었다. 수궁(守宮)은 말 그대로 '물고기들이 사는 궁궐'이라는 뜻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 더보기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는 이유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은 사실 독일이 라인강의 기적을 표절한 것이다.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을 하고 황폐한 도시에서 강대국으로 발돋움을 한 것이다. 이에 우리나라도 독일과 같이 6.25 전쟁 이후 라인강의 기적을 따라 한강의 기적을 이뤄보자고 한 것이다.   그러나 독일은 원래 강대국이였고 한국은 식민지였기에 출발 자체가 달랐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우리나라는 최빈국이었다. 한국전쟁 직후 남한 1인당 국민총소득은 67달러 (1년간 총소득 한화 약 8만 7천원)였다. 현재는 38,000 달러이다. 70년만에 이뤄낸 엄청난 경제성장인 것이다. 피식민지에서 선진국 반열로 일어난 국가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한국전쟁 직후 북한이 더 잘살았다?  한국전쟁 직후는 북한이 더 잘살았다.  일제.. 더보기
조선시대 형벌 종류 및 무슨 죄를 지으면 ... ※ 조선시대는 중국 명나라의 대명률을 따라 다섯가지 형으로 나뉘었다. "곤장으로 맞는 건 영화 속 이야기 아냐?""유배는 그냥 시골살이 정도 아냐?"하지만 조선시대 형벌은 생각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무서웠다. 왜 이런 형벌이 생겼고, 어떤 원리로 운영됐을까? 단순한 처벌이 아니라 통치 수단이자 사회 질서 유지의 장치였다. 알고 보면 흥미롭고, 오늘날 형벌 제도와 비교해도 재미있는 포인트가 많다. 📌 1. 태형 (笞刑, flogging)→ 가장 가벼운 형벌, 흔히 말하는 곤장 맞기뜻: 형틀에 묶은 죄인의 엉덩이를 곤장(막대기)으로 때리는 형벌기원: 중국에서 유래되었고, 조선에서는 경범죄자에게 적용되었다형량: 보통 10~100대이며 초범이면 감형도 가능했다목적: 공개 처벌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본보기를 보여.. 더보기
재벌의 시작 어제부터? 왜? 재벌 형성 배경 한국전쟁 직후 우리나라는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원조 또한 50년 후반에 끊어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는 1960~1970년 자본, 자원이 부족했던 시기로 정부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워 산업화를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재벌의 기초가 형성된다.  소수의 기업을 선발해서 집중 지원을 하기 시작한다. 이때 박정희 정부는 "재벌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는 인식을 계속적으로 주입시켰고 그로 인해 소수의 기업은 정부의 주도아래 빠르게 성장하게 된다. 이 시기에 성장한 대표적인 재벌이 삼성, 현대, LG (당시 락희 화학), SK(당시 선경) 등이 있다.  재벌의 시작 정부는 수출 주도형 경제 성장을 위해 대기업에 저금리의 대출을 제공하고 수출 확대를 위한 다양한 혜택을 부여했다.. 더보기
민주주의란 무엇? (기원, 민주주의 반대말 ) 민주주의 기원 민주주의의 시작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였다. 기원전 5세기 도시국가 아테네에서 민주주의가 출현했다. 이때 DEMOS(민중)+KRATIA(권력) 그래서 민주주의 의미 Democracy 는 민중 권력이라는 뜻이다. 그전에  왕, 귀족들이 통치하던 것을 평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그들의 권력을 무너뜨리고 모두가 참여(노예, 외국인, 여자는 제외: 당시 아테네 여자는 일종의 재산) 하여 민주주의를 만들었다. 당시 순수 아테네 시민 성인 남자 중 10개의 행정구역에서 50명씩 추첨 500명의 시민 대표를 구성하여 전쟁 선포, 인사임명, 범죄 재판 등을 500명이 투표로 국가의 대소사를 결정했다. 그래서 아테네 민주주의는 현재 민주주의와 다르다. 최초의 민주주의는 이념체제가 아닌 아테네의 특수 정치체제라고.. 더보기
민주주의 가장 잘못된 사례 : 소크라테스 사형 사건 민주주의는 대의제든 직접민주제든 중우정치로 흐를수 있다. 민주주의는 개인들이 충분히 토론하고 정보를 공유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믿음에 기반을 둔 제도이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다수의 지배는 언제나 다수가 잘못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을 포함한다.     중우정치란 감정에 휩쓸리거나 거짓에 선동되거나 헛된 꿈에 빠져서 언제나 어리석은 다수가 잘못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을 내포한다. 민주적 결정이 잘못된 경우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소크라테스 사형결정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신을 부정하고 젊은 이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500명의 시민 대표로 구성된 사형 재판에 서게 되었고 1차 투표에선 30표차의 근소한 차이로 사형이 판결되었고 작은 표 차이로 인해 2차 투표를 실시한 후 더 큰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