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orean History/@ Here

포석정 : 경애왕은 적이 쳐들어오는 때 정말 유상곡수연을 즐기고 있었나?

포석정의 그날 

포석정에 대한 이야기로 후삼국 시대  신라 경애왕은 적이 들어오는 쳐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포석정에서 흥청망청 술을 마시고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신라가 망한 결정적 장면으로 많이 회자가 되고 있다. 후삼국시대 중심은 서라벌 경주였다. 후백제 견원은 신라의 중심부를 노리고 있었는데 마침내 11월에 견원은 신라의 왕경에 침입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2
경주 포석정

 

 신라 경애왕은 견훤이 쳐들어왔을때 부인과 궁녀를 데리고 포석정에 연회를 벌이고 있었다. 포석정에서 유상곡수연을 즐기고 있었다. 

 

유상곡수연 :  수로를 굴곡지게 하여 흐르는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술잔이 자기 앞에 오면 시를 읊는 놀이

 

술잔이 물 위에 띄워서 수로를 따라 떠내려 오던 술잔이 멈추면 술을 먹는데 술잔이 올때 까지 시를 지어야 하고 만약 도달할때까지 시를 짓지 못하면 3잔을 마셔야 했다. 그렇다면 경애왕은 정말 포석정에서 연회를 즐겼을까? 

 

포석정은 무엇을 하던 곳일까? 

그러나 기록에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음력 11월에 야외에서 잔치를 벌이기에는 상당히 추운 날씨인 겨울이었다.  그래서 그날의 신라 경애왕의 기록은 과대 포장된 것일수도 있다는 얘기가 있다.  포석정이 위치한 곳은 경주 남산 서쪽 기슭에 위치해 있는데 49대 헌강왕이 포석정에서 남산의 신을 친견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중요한 사당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한다. 

 

삼국유사 권제2

 

그래서 경애왕은 신라의 안위를 빌고 있었을 수도 있다. 연회와 제사는 한끗차이일 수 있다. 신라의 왕을 부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렇게 기록했을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나라가 위급할때 기도문, 대장경등을 만드는 일이 많이 있다. 최근 연구들에서 같은 의문을 제기되었고 포석정은 의례 공간, 제사의 공간일 가능성이 크다. 

[역사저널 그날 436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