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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오방색 : 의미, 상징, 활용 한국 전통 문화에서 **오방색(五方色)**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우주와 자연의 조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이 다섯 가지 색은 방위, 오행, 덕목, 계절 등을 상징하며, 궁궐, 한복, 전통 음식, 제례의식 등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심지어 태극기, 당산나무, 부적 등에서도 오방색을 찾아볼 수 있다.이번 글에서는 오방색이 지닌 의미와 다양한 활용 사례를 깊이 있게 살펴보자. 1. 오방색의 의미오방색은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기반을 둔 색 체계로, 다섯 가지 색이 각각 방위(동서남북중앙), 오행(목화토금수), 계절, 덕목 등을 의미한다. 색상                                  방위            오행                        계절 .. 더보기
윤봉길 의사 이야기 1932년 4월 29일 양재동에 가면 시민의 숲이 있다. 그 안에 매헌 윤봉길 기념관이 있다.  상해 (상하이) 루쉰 공원에서 일왕의 생일 기념식날 일본 전범들에게 폭탄을 던져 한국의 존재감을 알린 윤봉길이다.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의거 1932년 4월 29일 이야기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공원의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17회 2부] 오늘의 탐사지: 중국 상해 주제: 윤봉길 훙커우 공원 의거 출연자: 설민석   김구는 의열 투쟁조직으로 한인애국단을 조직한다. 돈도 무기도 군대도 없기jangane.tistory.com 더보기
제삿상에 복숭아를 올리면 안되는 이유 ..(동양 신화 이야기) 서양의 영웅하면 헤라클레스가 생각나는데 동양의 영웅으로 '예'가 있다. 서양 신화 속 헤라클레스는 힘센 장사 이미지이고 동양 신화 속 영영웅 '예'는 활을 잘 쏘는 인물이다. '예'는 활을 잘 쏘는 영웅으로 동양 최고 미의 여신 항아라는 아내와 살고 있었다. 동양의 고대 신화에 태양이 10개가 있었는데 하루에 하나씩 교대로 떠오르던 태양이 어느날 한꺼번에 떠올라 세상이 극심한 가뭄과 모든 것을 마르게 하자 사람들은 예를 찾아가 태양을 활로 쏘아 주기를 간청했다.    이에 9개의 태양을 활로 쏴서 떨어뜨리고 1개의 태양만 남겨 임무를 완수하면서 영웅이 된다. '예'는 생명의 여신 서왕모에게서 얻어온 불사약 복숭아가 2개 있었는데 어느날 아내 항아가 이 불사의 약 복숭아를 가지고 도망을 가버리고 혼자 살게.. 더보기
이자겸의 난 진실 고려시대 사회 변화 이자겸은 인주 이씨로 혼인관계를 통해 고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진 외척으로 등극했다. 이자겸은 인주 이씨로 지금의 경기도 인천이 본관을 고려 왕실과의 혼인을 통해 세력을 키운 외척 세력이다.   고려 16대 왕 예종의 장인이자 17대 왕 인종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으로 그 힘을 업고 왕을 몰아내려고 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1126년 고려의 17대 왕 인종이 내시를 불러 이자겸과 척준경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자신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인 이자겸을 숙청하라고 명을 내린 것이다.  인종잉 먼저 이자겸을 제거하려던 것으로 외손자 인종에게 공격받고 이자겸이 방어한 것인데 교과서에는 이자겸의 난으로 기록되어 있다.  인종이 왕위에 오를때가 14세였다. 그래서 인종을 대신해서 1.. 더보기
붉은 악마 , 귀면와에 그려진 모습은 무엇? 염제 신농과 황제의 싸움 우리의 붉은 악마의 모습과 신라 시대 기와 속 귀신의 모습을 한 것을 많이 새겨 넣었는데 이는 동양의 신화에 등장하는 모습이다. 동양의 남신 중에 염제 신농이라는 농업의 신이자 불의 신, 의약의 신이 있는데 인간에게 약초를 알려주기 위해 직접 모든 풀을 먹어보고 사람에게 가르쳐주는 신이다. 고구려 벽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염제 신농이다.   또 다른 강력한 신, 황제라는 신이 있었다. 임금 황제와는 한자가 다르다. 황제는 용의 반인반수 물의 신으로 염제 신농을 몰아내고 최고의 신 자리에 등극한다. 황제가 최고의 신으로 등극한 것은 백택이라는 동물 덕분이었다.  이 백택은 이 세상의 모든 귀신과 요괴들을 통달하고 있었고 황제의 부하로써 황제를 최고의 신으로 등극하도록 돕는다.   불.. 더보기
추사 김정희 별장: 백석동천 폐허가 된 별서의 정취... 백석동천은 추사 김정희의 별서로 언제 지어졌는지 알지못하지만 1930년대까지 별장으로 운영되던 곳이다. 그 후 한국 전쟁 이후 잊혀지기 시작했고 이후에 다시 청와대 경호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이곳은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혀졌다. 그러다가 2006년 일반에게 개방되었다.  백석동천은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탄핵 심판 기간동안  청와대 안에만 머물러 있던 중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청와대 경호 구역을 산책하다가 이곳을 발견했다. 이때 문화재청장을 불러 이곳을 조사하게 했고 알고보니 추사 김정희의 별서로 밝혀진 것이다. 더보기
흥선대원군 별서 석파정 흥선대원군(1820-1898) 의 호는 석파로 돌석, 언덕 파 돌 언덕이라 는 뜻의 석파정은 인왕산 북동쪽 바위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별장 (=별서)으로 수려한 자연 경관 속에서 그림을 가까이 했던 곳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흥선대원군 난초 그림의 스승으로 흥선대원군이 되기 전에 그림을 좋아하던 이하응이 추사에게 난초를 배웠다.  소수운련암 물로 둥지를 틀고 구름으로 발을 삼은 암자라는 뜻으로 석파정을 짓기전 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는 바위로 바위에 새긴 글귀는 옛날부터 이곳이 아름다웠다는 것을 말해주는 시적표현이다.  원래 석파정의 주인은 철종때 세도가 안동김씨 김흥근이었다. 그런데 흥선대원군이 이 집 빼어난 풍광에 마음에 쏙 든 것이다. 수차례 김흥근의 별서를 매매 제안을 했으나 이를.. 더보기
창덕궁 후원 이야기 (부용지, 연경당, 신선원전 일대) 부용지 일대처음 이곳은 그냥 언덕이었다. 그러나 15세기에 세조가 4개의 샘물을 찾아 연못을 만들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숙종이 을 만들었다. 창덕궁 후원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룬 정자가 무려 17개가 있고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정조가 부용정을 지은 이후 규장각을 설립 몇 대에 걸쳐 완성된 부용지이다.   부용정 부용정은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부용은 연꽃을 의미하는데 연꽃처럼 연못에서 피어오른 듯한 정자라는 의미가 있다. 부용정은 연못에서 솟은 교각에 앞으로 정자가 튀어나온 모양인데 이 난간에 걸터앉으면 마치 배를 탄 듯한 느낌이다.   영화당 영화당은 왕과 신하의 연회장이며 과거 시험 응시자들이 마지막으로 왕 앞에서 시험을 치르던 장소이다.  부용정에서 내려가면 4개의 정자가 .. 더보기
세종의 어린시절 및 즉위식. 세종의 어린시절   세종의 아버지는 태종 이방원으로 세종은 태종의 셋째아이들 충녕대군이다. 첫째는 양녕대군으로 양녕대군 또한 똑똑했으나 하필 동생이 충녕대군(세종)이 다방면으로 천재성을 보인 충녕을 보고 넘을 수 없다는 걸 느꼈던 걸까?  첫째 양녕대군은 충녕에 대해 ' 충녕은 보통사람이 아니다' 라고 여동생에게 가서 충녕의 비범함과 양녕의 심정을 담은 기록도 있다. 양녕대군이 방탕해진 이유가 충녕대군(=세종)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어느날 태종이 하는 말을 들은 후 우연히 아버지 태종의 속마음을 알게 된 양녕이 일부러 방탕하게 굴었다는 야사도 있다. 양녕대군은 그후 기행을 일삼다가 결국 선을 넘어 양녕대군이 사랑한 기생 어리를 간통하고 납치한 얘기를 세종이 고자질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건국 초기 나라를 .. 더보기
묘효, 시호란? 세종대왕의 이름은 '이호' 로 그 당시 왕의 이름에 쓰인 한자는 백성들이 사용할수 없기 때문에 왕의 이름엔 어려운 한자를 사용했다고 한다.  묘호란?  죽은 이의 영혼이 위패(신주) 안에 깃든다고 생각하고 그 위패를 모셔둔 단지(=상자)를 신주단지라고 하고 신주를 놓던 그 자리가 신위, 그 신위에 붙이는 이름이 묘호로 그것이 바로 '세종' 이었다.  시호란?  시호는 그 분의 공덕을 기리기 위한 이름으로 세종의 시호는 영문, 예무 ,인성, 명효 대왕  영문:문에 뛰어나시고  예무: 무예도 뛰어나시고  인성: 성품이 인자하시고  명효: 명석한 두뇌와 효도, 효성스럽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