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orean History

1910~ 40년 의병 활동 간략 정리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을 체결하고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창덕궁에서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고 순종이 이를 받아 들여 이완용이 위임장을 받아들고 남산 통감관저에서 강제 병합에 도장을 찍는다. 

 

 

 

▶1905년 을사조약 이후부터 의병이 전국적으로 발발하였고 1907년 정미 7조약 = 한일신협약이 체결되면서 대한 제국의 군대가 해산된다. 이를 받아들일수 없었던 이들이 의병이 되어 정미의병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를 일본은 잔혹하게 진압을 한다.

 

1909년 국내 의병 세력 완전 진압을 위해 남한대토벌작전을 실시한다. 그로 인해 국내 근거지를 상실하게 된 의병세력은 간도, 연해주로 이동한다. 이후 국외에서도 본격적인 독립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 암살한 하얼빈 의거의 안중근 의사가 있었다. 

 

▶1920년대부터는 항일무장투쟁이 절정을 이루어진다. 

 

1932년 1월 8일 도쿄 경시청 앞을 지나는 일왕 행렬에 폭탄을 투척하는 이봉창 의거가 있었다. 일왕 암살에는 실패하지만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준 이봉창 의거였다.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서 시라카와 육군 대장 등 7명 주요 인물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 윤봉길 의거는 조선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과 의지를 국제적으로 알린 계기가 되었다.

 

▶1940년 꺽이지 않는 독립 투쟁으로 한국광복군을 창설, 이때 미국 oss 와 연합해 일본과 맞서 직접 싸우기 위한 국내진공작전을 준비 중 제 2차 세계대전 종결을 위해 일본 본토에 원자폭탄이 떨어지면서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