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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Here

무주 나제통문의 비밀

전라북도 무주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3도의 접경지로 군 전체가 소백산맥에 속한다. 골짜기는 깊고 산세는 험준하다. 무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구천동 계곡이다

 

제 1경 나제통문의 비밀 

 이 아름다운 무주 구천동은 삼국시대에 피로 물들었던 곳이다. 무주 구천동 33경의 시작점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 석모산이 있는데 1500년 전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석모산을 경계로 말투와 생활이 다른 주민들이 살고 있다. 

 

 

 

석모산 나제통문을 통해 신라와 백제 사람들이 왕래를 했다고 한다. 이 경계에 세워진 나제통문을 역사적 통로라 믿었다. 

 

 

 

이 일대는 신라와 백제가 영토 확장을 위해 맞붙었던 곳으로 660년 백제가 멸망하기 전까지 영토확장을 위한 두 나라의 치열한 전쟁이 계속되었던 곳이다. 나제통문 부근 이남마을 야산에 당시의 흔적으로 보이는 큰 무덤이 있다. 나제통문 주변에 묻혀 있던 무연고 무덤들을 개장해서 약 300여구의 유해를 모아 합장한 것이라고 한다.  

 

소천리 이남 고분

 

그 무덤이 삼국시대때 전투에서 전사한 백제와 신라 병사들의 무덤이라고 믿고 있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며 사라진 흔적과 기록이다.  

 

나제통문의 진실 

1925년 일제강점기 영동 용화광산 물자수송을 위해 인공터널이 개통되고 30번 국도가 산 아래로 관통하게 되면서 기니미굴이라는 이름으로 개통된다.  나제통문은 1960년대 초 무주 관광개발을 위해 33경이 만들어지면서 굴 이름을 나제통문이라고 바꾼 것이다.     

 

 

 

알고는 있으나 관광개발이라는 이유로 역사를 왜곡한 것이다.  1960년대 무주에 관광업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큰 길이 들어서고 오지였던 무주에 사람들이 방문하기 시작한다. 이때 33경 개발을 주도한 무주 출인 군인 김남관이 있었다. 

 

 

나제통문 아래 급류가 흐르는데 이 지역을 파리소라 부른다. 파리는 날파리의 파리를 말하는 것으로 신라, 백제군의 격전 후 병사들의 시체를 이곳에 던져버려 그 시신들 위로 파리 떼가 뒤덮여서 파리소라고 부른다. 

파리소 

 

또한 인근에 빼재라고 불리는 곳이 있는데 빼재는 경상도 사투리로 뼈재를 뜻한다. 뼈가 있는 고개라는 뜻으로 전쟁과 관련된 지명이 많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