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정명공주 이야기 : 그녀의 후손은 누구? 👑 왕의 귀한 딸로 태어난 정명공주**정명공주(貞明公主, Princess Jeongmyeong)**는 조선 제14대 왕 **선조(宣祖)**가 51세에 두 번째 정비였던 **인목왕후(仁穆王后)**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이다.선조가 나이가 들어 얻은 귀한 딸이었고, 인목왕후가 낳은 유일한 공주였기에 특별히 사랑받았다.그녀의 출생은 조선 왕실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하지만 선조가 1608년, 정명공주가 겨우 6세일 때 세상을 떠나면서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 광해군의 집권과 몰락의 시작선조가 죽은 후, 적자이자 어린 **영창대군(永昌大君)**이 너무 어렸기에 왕위는 후궁 소생인 **광해군(光海君)**에게 넘어갔다.광해군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왕실 권력의 잠재적 위협이었던 인목왕후와 정명공주를 .. 더보기 치악산 이야기: 꿩의 보은 설화와 산의 유래 강원도 원주에 솟아있는 치악산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깊은 역사, 그리고 전설을 품고 있는 명산이다. 특히 **'꿩의 보은 설화'**는 치악산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었을 정도로 유명하며, 산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이야기다. 1. 치악산 이름의 유래: 꿩의 보은 설화치악산은 원래 **'적악산(赤岳山)'**이라 불렸다.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어 산 전체가 붉은빛을 띠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치악산(雉岳山)'이라는 이름은 **'꿩 치(雉)'**자를 사용하는데, 이는 바로 '꿩의 보은 설화'에서 유래했다.(1) 설화의 내용옛날, 서울로 과거를 보러 가던 한 젊은 선비(혹은 나그네)가 강원도 적악산 고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깊은 산속에서 갑자기 꿩의 다급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선비가 주위를 살펴보니.. 더보기 이태원의 독특한 역사 이태원은 현재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쇼핑, 음식점, 호텔 등이 밀집한 서울 최초의 관광 특구(1997년 지정)로, 이국적이고 활기찬 분위기로 유명한 곳이다. 경리단길, 남산 타워 산책로, 해방촌 등 가볼 곳도 많아 젊은층에게 인기가 많다. 하지만 이곳에는 우리가 몰랐던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1. 이태원의 이름, 세 번의 변화와 의미이태원의 지명은 발음은 같지만, 사용된 한자가 달라지면서 그 의미가 여러 번 바뀌었다.(1) 첫 번째 이태원: '오얏나무 이(李)'를 사용한 '이태원(李泰院)'조선 초기에 이태원은 **'오얏나무 이(李)'**자를 사용하여 **이태원(李泰院)**으로 불렸다.이(李): 마을에 오얏나무(자두나무)가 많았다는 설과, 조선 왕조 왕실의 성씨가 오얏나무 이(李)이기 때문에 여기에.. 더보기 무교동 이야기 (무교동 이름 기원) 무교동(武橋洞)은 서울 중구에 위치한 동네로, 오랜 역사와 함께 현대적인 활력이 공존하는 흥미로운 곳이다. 이곳은 과거와 현재의 서울을 동시에 엿볼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무교동의 역사다리 이름에서 유래: '무교동'이라는 이름은 조선 시대 이곳에 있었던 '무교(武橋)'라는 다리에서 유래했다. 이 다리는 청계천 위에 놓여 있었는데, 주로 무관(武官)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길목이었다고 해서 무교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조선 시대 한양의 중심: 무교동 일대는 조선 시대부터 한양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중요한 길목 역할을 했다. 육조거리(현재 세종대로)와 가까워 관리들과 일반 백성들이 활발하게 오가던 곳이었다.근현대사의 흔적: 일제강점기에는 상업 지구가 형성되기도 했고, 해방 이후에는 서울 도심의 중요한.. 더보기 청계천 정조대왕 능행반차도의 특별함은 무엇? (수선전도) 서울 청계천을 걷다 보면, 갑자기 수백 명의 인물이 행렬을 이루는 장대한 벽화가 눈앞에 펼쳐진다.이 벽화는 조선의 국왕 **정조대왕(正祖大王, King Jeongjo)**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참배하기 위해 한강을 건너 수원으로 향하던 길을 기록한 **정조대왕 능행반차도(陵幸班次圖, Royal Parade Painting)**다.예술성과 기록성이 뛰어난 이 작품은 현재 청계천에 세계 최대 규모의 **도자벽화(Ceramic Tile Mural)**로 재현되어 있어 한국을 찾는 외국인에게도 인기 있는 문화 명소다. 📜 정조대왕 능행반차도의 역사적 배경청계천에 있는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는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가 1795년(을묘년)에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 더보기 비무장 지대 지뢰수 , 지뢰 종류 🧭 DMZ 지뢰 매설 현황비무장지대는 1953년 정전협정(Armistice Agreement) 이후 형성된 휴전선 기준 남북 2km 폭의 완충지대로,길이는 약 250km에 이른다.🟢 1. 지뢰 수량 및 분포DMZ에는 약 100만~200만 개 지뢰가 매설돼 있다.남측에는 약 127만 개의 주로 대인지뢰(M14, M16A1) 가 500여 개 필드에 걸쳐 배치되어 있다. 일부 지역은 킬 존으로서 km²당 12,000발 이상이다. 북측은 정확한 수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한과 비슷한 규모이며 지속적으로 지뢰를 보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 지뢰의 종류 – 어떤 것들이 있을까?비무장지대에 매설된 지뢰는 크게 **대인지뢰(Anti-personnel mine)**와 **대전차지뢰(Anti-tank mi.. 더보기 낙산 성곽 도보 투어 ( 한양도성 = 서울성곽 ) 옛날에는 서울성곽이란 명칭이었으나 한양 도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성벽을 한양도성이라 부른다. 태조가 나라를 세울때 사직- 종묘 (왕이 효를 숭상하는 의미) - 궁궐 (그 자체가 임금의 존업) - 성곽 쌓기 였다. 1396년 성곽을 쌓기 시작해 끊임없이 복원된다. 성곽이란? 성곽의 의미는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 울타리의 개념으로 성벽을 통해 나라를 지키는 방어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유네스코 등재 추진이유 세계 어디를 가도 수도를 둘러싸고 있는 성곽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 세계 유일하게 수도를 둘러싸고 있는 성곽이 한양 도성인 것이다. 동대문에서 시작하는 낙산 성곽 도보투어 낙산 공간은 커플들이 사진찍으로 많이 올라오는 곳이다. 낙산의 정상은 124m로 그렇게 높지 않은 산.. 더보기 창경궁 후원 춘당지 일제강점기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들면서 창경궁의 많은 전각들이 헐렸고 궁궐 곳곳에 수많은 벚나무를 심었다. 일제는 1909년 창경궁에 동물원과 식물원을 조성했다. 순종의 마음을 달랜다는 이유였으나 1911년 명칭을 창경궁에서 창경원으로 바꾸며 궁궐을 하나의 위락시설로 격하시키켜 버렸다. 춘당지 조선시대 춘당지는 작은 연못이었다. 이곳에는 11개의 내농포라는 논이 있었다. 내농포는 임금이 직접 쟁기를 잡고 소를 몰며 농사의 모범을 보이던 곳이었다. 일제는 내농포를 없애고 본래의 춘당지와 합쳐 큰 연못으로 조성했다. 창경원 시설에 이곳은 사시사철 연인들이 보트를 즐기고 겨울에는 스케이트를 타고 공중에는 케이블카도 있었다. 특징:춘당지는 큰 연못(대춘당지)과 작은 연못(소춘당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 더보기 남산터널의 비밀 남산터널을 지날 때, 그 아래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는가?이 터널은 단순한 도심 통행로가 아니다.냉전 시대의 방공시설이자 서울 강북·강남을 잇는 상징적 공간이다. 📍 기원: 1·21 사건과 서울 요새화 계획 "Fortification of Seoul" plan 서울 도심 한가운데, 남산 바로 아래를 지나는 남산 1호 터널은 단순한 교통 통로가 아니다. 사실 이곳은 냉전 시대에 설계된 비상 방공호( a civil defense bomb shelter) 였다. 시민이 아닌 군과 정부의 생존을 위한 ‘숨겨진 요새’였던 것이다.남산1호터널은 서울의 교통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1968년 1월 21일 청와대 습격 사건(1·21사건) 이후 서울을 방어하기 위한 비상 대피 및 방.. 더보기 송파구 지명 유래 - 방이동과 오금동 송파구의 방이동과 오금동은 병자호란 당시의 아픈 기억이 지명 속에 남아 있는 곳이다. 이 두 지명의 유래를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다. 1. 방이동(芳荑洞)의 유래송파구 동쪽에 자리한 방이동은 여러 설이 있지만, 가장 널리 알려진 유래는 병자호란 당시의 이야기다.'오랑캐를 막아낸 곳'이라는 설: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했을 때, 인조가 청나라 군대를 피해 남한산성으로 피난 가는 길이 급박했다. 이때 청나라 군대가 한강을 넘어 남한산성으로 진격하는 길목이었던 지금의 방이동 일대에서 조선의 관군과 마을 주민들이 힘을 합쳐 청나라 군대를 막아냈다. 이들의 저항 덕분에 인조는 피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이처럼 오랑캐를 막아낸 곳이라는 의미에서 처음에는 **'막을 방(防)', '오랑캐 이(夷)'**자를 써서 .. 더보기 이전 1 2 3 4 5 ··· 7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