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

조사의의 난 : 조선 태종 시기 마지막 고려 부흥 운동 조선이 건국된 후에도 고려 왕조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조선의 3대 왕 **태종 이방원(太宗 李芳遠, 재위 1400~1418)**이 왕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402년(태종 2년), 고려 왕조를 부활시키려는 세력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조사의의 난"**이다. 이 반란은 조선 건국 이후 고려 왕조의 잔존 세력들이 마지막으로 저항했던 사건 중 하나로, 태종의 왕권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조사의는 누구이며, 이 반란은 어떻게 일어났고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1. 조사의는 누구였을까?**조사의(趙思義)**는 고려 말의 무신(武臣, 무관)으로, 고려 왕조를 끝까지 지지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진 후에도 새로운 왕조를 받.. 더보기
초밥 기원 역사와 오마카세 뜻 초밥은 700년대 일본의 발효 음식에서 시작되어, 현재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고급 요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초밥은 단순한 생선 보존 방법에서 미식의 예술로 진화해왔습니다. 특히 2003년 한국에 도입된 오마카세 문화는 셰프의 전문성과 초밥의 정교함을 극대화한 형태로, 초밥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오늘은 초밥의 기원, 변화, 지역적 특징, 그리고 오마카세의 의미와 가치까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이자카야(일식주점) 메뉴 이름 뜻, 재료 : 오코노미야키, 덴뿌라 아게 차이점 , 규동, 차슈동, 돈 megakorea365.wissue.net  1. 초밥 기원: 700년대 일본의 발효 음식초밥의 시작은 일본 나라 시대(7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초밥은 생선의 장기 보존.. 더보기
호주에는 스타벅스가 없다? 스타벅스 실패 사례 스타벅스는 1971년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해 글로벌 커피 시장을 장악한 브랜드이다. 그러나 호주라는 거대한 커피 시장에서 큰 실패를 경험했으며, 이는 단순한 사업 실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스타벅스의 실패는 호주의 커피 문화와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의 충돌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아래에서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파헤쳐 보겠다. 1. 스타벅스의 진출과 초기 전략스타벅스는 2000년 시드니에 첫 매장을 열었다. 미국, 유럽, 아시아에서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호주에서도 빠른 확장을 계획했다. 이들은 단 8년 만에 87개의 매장을 개설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려 66개의 매장을 폐쇄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스타벅스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호주에서의 사업은 거의 중단 상태로 들어갔.. 더보기
제주 흑돼지 똥돼지 이야기 (오겹살과 삼겹살의 차이는?) 흔희 제주도 특산 흑돼지를 똥돼지라고도 부른다. 제주 흑돼지는 제주도의 자연과 음식문화 풍습과 깊은 관련이 있다. 흑돼지는 오래전부터 제주도에서 길러온 토종돼지로 2015년 3월 천연 기념물 550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1986년 우도에서 토종, 흑대지와 유사한 수컷 1마리와 암컷 4마리를 찾아서 수컷에 김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김문의 후손 260여 마리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것이다. 100% 순종은 아니지만 토종 흑돼지와 가장 유사한 종이다.    ▣ 제주 흑돼지와 똥돼지 역사과거 제주도는 바다로 둘러싸인 고립된 섬이었기 때문에 육지에서 흔히 먹던 소나 돼지 고기를 자주 공급받기 어려웠다. 돼지는 사람이 먹는 음식을 먹기 때문에 곡물이 넉넉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돼지를 키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제주.. 더보기
토정비결 운세 보기 : 희망을 주고자 만든 역술서 우리나라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는 매년 새해가 되면 한 해의 운세를 미리 보는 것이다. 그럴 때 주로 보는 책이 바로 토정비결이다. 이 책을 만든 사람은 조선 시대의 학자 토정 이지함인데, 그는 왜 이 책을 만들었을까? 그리고 어떻게 만들었을까? 어려운 이야기는 모두 빼고 아주 쉽게 설명해 보겠다.   ▼토정비결 보기 사이트 이동 click ▼  토정 이지함 누구인가?  이지함은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정치가, 경제 전문가였다. 그의 본명은 이지함(李之菡)이고, 호는 **토정(土亭)**이었다. "토정"이라는 호는 그가 젊은 시절 흙으로 만든 초가집에서 학문에 몰두한 데서 유래했다. 그는 **중종(재위: 1506-1544)**과 **명종(재위: 1545-1567)**의 시기 동안 살았다. 당시 조선은 사회적.. 더보기
군산 박대 생선이 유명한 이유 군산은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지리적 요충지로, 풍부한 수산물이 오랜 세월 지역 경제를 떠받쳐 왔습니다. 특히 군산 앞바다는 얕고 비옥한 해저 지형 덕분에 다양한 어종이 서식하기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잡히는 박대는 담백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으로 군산을 대표하는 특산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각종 개발과 공사로 인해 바다의 지형이 변화하면서 어획량이 줄어드는 현실도 마주하고 있습니다. 군산 바다와 박대 역사적 관계 박대는 한자로 "방어류에 속하는 물고기" 또는 **"작고 넓적한 물고기"**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는 박대의 외형과 서식지를 나타내며, 얕은 바다에서 납작한 몸으로 헤엄치는 특징과도 잘 맞아떨어집니다. 군산은 금강 하구와 서해가 만나는 해역에 위치해 있어, 유난히 영양분이 풍부한 어장을.. 더보기
군산에 중국집이 많은 이유: 만보산 사건과 화교의 역사 "왜 군산에는 중국집이 유독 많을까?"라는 질문은 군산을 방문한 이들에게 자주 떠오르는 의문 중 하나입니다. 그 답은 단순히 음식 문화가 발달해서가 아니라, 깊은 역사적 배경을 품고 있습니다. 바로 1931년 발생한 만보산 사건과 그 여파로 인해 군산이 화교들의 거점으로 자리 잡았던 사실에서 기인합니다. 지금부터 이 역사적 배경과 군산에 중국집이 많은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만보산 사건이란 무엇인가?  1931년, 중국 만보산(완바오산) 지역에서 발생한 한인 농민과 중국 농민 간의 갈등이 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당시, 일제강점기 하에 만주 지역으로 이주한 한인 농민들은 중국 땅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있었는데, 농업 용수 사용 문제로 현지 중국 농민과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 .. 더보기
소갈비 비싼 이유있다. !! 가든 식당은 신흥 부자의 트랜드.. 소갈비는 한국인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고급 음식이다. 맛과 부드러움으로 많은 이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여전히 특별한 날에만 먹는 음식으로 여겨진다. 오늘은 소갈비의 역사와 왜 여전히 비싼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그리고 강남 개발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자.   조선시대 소갈비 기원 : 맛있는 이유  갈비는 조선시대에 '가리'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시의전서]라는 조리서에 처음 등장했다. 당시 소는 농업과 운송을 위한 귀중한 노동력으로 활용되었기 때문에, 고기로 사용되는 일이 드물었다. 대부분의 소고기 부위는 일하면서 발달된 근육으로 인해 질겼지만, 갈비는 움직임이 적은 부위여서 지방이 적당히 분포되어 부드러운 맛을 자랑했다. 이런 특성 덕분에 조선시대에도 갈비는 귀한.. 더보기
분서갱유 : 법가 VS 유가의 대립 진시황의 선택은? 역사 속에서 "책을 태우고 사람을 죽인다"는 일은 종종 강력한 권력을 가진 통치자들이 사상과 생각을 통제하려고 할 때 일어난다. 분서갱유는 그 대표적인 예로,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뒤 시행한 강력한 억압 정책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단순히 책 몇 권을 태운 일이 아니라 진시황이 왜 유학(유교) 사상을 그렇게 적대시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 진시황 출생 비밀 먼저 알아보기   여불위,자초와 제태후, 노애 그리고 진시황 출생 비밀 이야기기원전 3세기는 중국 대륙은 하루도 평온한 날이 없었다. 주나라의 봉건제도가 무너지면서 갈기갈기 찢어진 세력들이 7개의 나라로 분리되어 앞다투어 패권경쟁에 뛰어들었고 기원전 247년 진나jangane.tistory.com 법가 VS 유가 유가는 중국의.. 더보기
한국인 삼시세끼 쌀밥 언제부터 먹었나? 쌀밥은 이제 한국인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식이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흔한 음식은 아니었다. 삼국시대에는 떡과 죽이 주식이었고, 고려시대에 들어서야 밥을 짓는 문화가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1970년대 통일벼가 개발되면서 쌀밥은 대중화되어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모습이 되었다. 한국인의 식탁에 얽힌 쌀밥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자.  삼국시대, 떡과 죽이 주식이었던 시절 삼국시대에는 쌀밥을 먹는 문화가 거의 없었다. 당시에는 무쇠를 주로 무기 제작에 사용해 무쇠솥을 만들 자원이 부족했다. 대신 쌀을 찌거나 갈아 떡과 죽으로 만들어 먹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쌀은 귀한 재료로 상류층과 특별한 행사에서만 사용되었다.   고려 중기, 무쇠솥과 쌀밥 문화의 시작 고려 중기부터 무쇠솥이 등장하며 밥을 짓..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