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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약을 먹고도 죽지 않은 이가 있다? 조선시대 형벌 사약(賜藥): 왕이 내린 죽음의 약, 그 이면사약은 조선 시대에 왕이 중죄를 지은 고위 관료나 왕족에게 내리던 독약이었다. 이는 단순한 사형 방식이 아니라, 유교적 가치관과 왕의 권위가 복합적으로 얽힌 독특한 제도였다.'명예로운' 죽음조선 시대에는 신체의 훼손을 불효로 여겼다. 따라서 목을 베는 **참형(斬刑)**이나 몸을 찢는 **능지처사(凌遲處死)**와 달리, 사약은 시신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어 '명예로운 죽음'으로 간주되었다. 죄를 지었음에도 마지막까지 인간적인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일종의 배려였던 셈이다. 죄인은 사약을 받기 전, 왕이 있는 궁궐을 향해 네 번 절하며 마지막 충성과 순종을 표하기도 했다. '사(賜)'라는 글자가 '하사하다'는 뜻이기에, 사약은 왕이 내리는 '선물'이라는 의미도 .. 더보기
의료보험 역사 : 최초의 의료보험은? 우리나라 건강보험 역사.. "우리가 당연히 누리는 건강보험, 처음 시작한 나라는 어디일까?"그리고, 한국의 의료보험은 어떤 과정을 통해 전 국민에게까지 확대되었을까?이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한 연도가 아니라, 사회 변화와 제도의 진화에 있다.오늘은 세계 최초의 의료보험제도와 함께 대한민국 의료보험의 역사를 연결해 살펴본다.과거를 알면 지금 누리는 권리가 얼마나 귀중한지 이해할 수 있다.🧭 세계 최초의 의료보험 제도, 독일 비스마르크의 선택 🇩🇪1883년, 독일의 철혈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는**'질병보험법(Gesetz betreffend die Krankenversicherung der Arbeiter)'**을 제정했다.이 법은 근로자가 병에 걸렸을 때 치료받을 수 있도록국가와 고용.. 더보기
공양왕과 미스터리한 무덤 이야기 고양시의 공양왕 무덤, 곧 공양왕릉에 대해 들어봤나요? 이곳은 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과 부인 순비 노씨의 무덤이다. 공양왕은 이성계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다가 불과 4년 만에 고려가 망하며 폐위되고 유배된 비운의 왕이다. 공양왕의 죽음, 그리고 두 개의 무덤?흥미로운 사실은 공양왕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여러 가지라는 점이다.설화 속 공양왕의 죽음: 조선 건국 직후 개경에서 원주로 추방되었다가 다시 삼척으로 쫓겨난 공양왕은 설화에 따르면 삼척을 탈출해 개경으로 잠입하기 위해 고양에서 은신하던 중 근처 연못에 투신 자살하여 생을 마감했다. 심지어 그를 따르던 충심 깊은 삽살개까지 함께 연못에 빠져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삽살개의 충심을 기르기 위해 석수를 능 앞에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실록에 기록된.. 더보기
송파구 도서관 인조 서흔남 동상은 무엇? 송파구는 현재 롯데월드와 같은 유명한 놀이동산이 있는 활기찬 도시 공간이지만, 사실 이곳에는 병자호란이라는 가슴 아픈 역사가 지명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병자호란(丙子胡亂)**은 1636년에 일어난 전쟁이다. 그 배경은 이렇다. 앞서 1627년에 정묘호란이 있었죠. 후금(後金, 이후 청나라로 국호를 변경)이 명나라와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조선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는데, 친명 정책을 펼치던 인조(仁祖)가 이를 거절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후금이 조선을 침략한 것이 정묘호란이다. 그리고 1636년, 국호를 청(淸)으로 바꾼 청나라는 다시 조선을 침략한다. 이것이 바로 병자호란이다. 청나라 군대는 1636년 12월 9일 압록강을 건넜고, 불과 5일 만에 수도 한양을 점령하는 놀라운 속도로 진격했다. .. 더보기
조선의 폐비 왕비들 몇명? 폐비 윤씨 ~ 이 이야기는 조선 시대 폐위된 왕비들의 삶을 통해 당시 왕비들이 겪었던 고달픈 삶과 정치적 희생, 그리고 인간적인 갈등을 조명하는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이다. 조선 시대 41명의 왕비 중 무려 11명이 폐위되었으며, 그 배경은 크게 투기, 왕의 폐위, 그리고 정치적 희생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투기로 폐위된 비운의 여인: 폐비 윤씨조선 시대 최고 성군 중 한 명인 성종의 왕비였던 폐비 윤씨의 이야기는 투기가 한 여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왕비가 되기까지의 과정: 윤씨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지만, 검소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정희대비와 인수대비 등 왕실 어른들의 눈에 들었다. 특히 왕비 한씨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윤씨가 성종의 아이를 임신하면서 .. 더보기
명동성당 역사 명동성당은 단순한 종교적 건축물을 넘어, 한국 천주교의 발전사와 더불어 대한민국의 격동적인 근현대사의 중요한 고비마다 그 중심에 서 있던 상징적인 장소이다. 1898년에 완공되어 현재까지 12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1. 한국 천주교의 발상지명동성당이 자리한 현 명동 일대는 조선시대 행정구역상 **'명례방(明禮坊)'**이라 불리던 곳이다. 이 명례방은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평신도 주도의 천주교 도입: 한국 천주교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게 선교사가 아닌 조선 지식인 평신도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받아들여진 종교이다. 이들은 서학(西學) 연구를 통해 천주교를 접했고, 명례방은 바로 이러한 천주교 신앙 공동체가 처음 형성된 핵심적인 장소였다.최초의 세례와 순교: 조선 .. 더보기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 광혜원 - 세브란스 병원 역사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은 **제중원(濟衆院)**이다. 이는 단순한 병원을 넘어 한국 근대 의학의 시작점이자 서양 문화가 조선 사회에 깊이 스며드는 중요한 통로였다. 1. 설립 배경: 갑신정변과 알렌 선교사의 활약제중원 설립의 결정적인 계기는 1884년 12월 4일에 발생한 갑신정변이었다. ‼️갑신정변 자세히 보기 click 민영익의 중상: 당시 급진 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 중에 개화파의 칼에 명성황후의 조카이자 고종의 신임을 받던 **민영익(閔泳翊)**이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 14명의 한의사가 동원되었지만, 출혈이 멈추지 않아 민영익은 생명이 위독한 상태였다.알렌 선교사의 등장: 이때 미국에서 온 선교사이자 의사였던 **호러스 뉴턴 알렌(Horace Newton Allen)**이 나섰다. 그는 .. 더보기
총·능·원·묘·분… 왕릉 ~ 일반 무덤 정확한 구분법과 의미 한국 역사 속 무덤(grave)에는 왕의 능(陵), 왕세자의 원(園), 귀족의 묘(墓), 고대 왕의 분(墳), 주인 미상의 총(塚) 등 다양한 명칭이 있습니다.그저 ‘무덤’으로 뭉뚱그리기에는 이들 사이에 명확한 구분이 존재하죠.왜 이렇게 나뉘었을까요? 역사와 신분 체계에 숨겨진 의미를 지금부터 살펴보겠습니다. 👑 능(陵, Royal Tomb) — 확정된 왕과 왕비의 무덤'능(陵)'은 국왕(King)과 왕비(Queen)의 무덤입니다.조선왕릉(Joseon Royal Tombs)처럼 국가가 직접 조성한 왕릉은 격식이 엄격하며,석물(Stone Objects), 곡장(曲牆, Curved Wall), 홍살문(Red Gate), 신도비(神道碑, Monument)까지 완비되어 있어 왕권(Royal Authority).. 더보기
한국 지폐 속 위인 4 세종대왕 한국 화폐 속 세종대왕 이야기여러분,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불리는 세종대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는 오늘날 10,000원권 지폐의 주인공이자, 한국의 문화와 과학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화폐 속 세종대왕: 한국의 대표 모델세종대왕은 1960년 8월 15일 발행된 개천절 기념 지폐에 처음 등장한 이후, 오늘날 10,000원권에 이르기까지 60여 년간 다양한 권종에 사용된 한국 화폐의 대표 모델이다. 이는 그가 얼마나 많은 국민에게 존경받는 인물인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세종대왕의 업적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한글, 즉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이다. 백성들이 쉽게 글을 배우고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든 이 문자는 오늘날까지 한국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 더보기
광화문 광장 투어 ( 이순신 장군 ) 1 이순신 장군 동상과 광화문 광장이순신 장군 동상은 50년 넘게 광화문 광장을 지키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명이다. 1968년 4월에 건립된 높이 17m의 청동 동상은 광화문 사거리에 당당하게 서 있다. 당시 풍수지리학자들은 세종로와 태평로가 뻥 뚫려 있어 남쪽으로부터 일본의 기운이 너무 강하게 들어온다고 보았다. 이를 막기 위해 일본이 가장 무서워할 인물인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상 아래에는 거북선 모형과 북, 전진하는 전함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거북선 (귀선)이순신 장군이 만든 거북선은 1592년 사천해전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정식 명칭은 귀선이다. 이는 조선 수군의 주력선인 판옥선에 칼과 송곳을 꽂아 일본 수군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개량한 것이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