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Korean History

국군정보사령부 특임대 HID 는 어떤 곳? 북한에 김정일군정대학이라고 있다. 김정일 군정대학은 정치 일꾼을 양성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주로 대남 공작원을 양성하는 학교이다.    북한에서 대남 공작기관으로 가장 큰 곳은 북한군 정찰총국이다. 김정일군정대학교를 졸업 후 북한군 정찰총국 장교로 선임되고 작전부 등 주요 대남 전투원으로 투입된다. 김정일때만 하더라도 이 학교를 노출한 적이 없었으나 김정은은 노골적으로 언론에 드러내고 있다.  국군첩보부대 HID 란?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철저하게 비밀에 감춰진 부대 국군첩보부대 HID 가 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진에 침투하며 기록되지 않을 기밀임무를 맡는 HID 이다. 첩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극한까지 훈련받는 부대이다.   국군첩보부대 정보사 산하에서 특수작전만 수행하는 특임대대가 HI.. 더보기
버마 (미얀마)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 1983년 아웅산 묘소 테러 1983년 10월 8일 전두환 대통령은 동남아 순방 일정을 위해 미얀마를 찾았다. 다음날인 10월 9일 미얀마의 독립 영웅 '아웅 산' 참배를 위해 국립 묘지를 방문했는데 굉음과 함께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다. 테러가 발생한 것이다. 테러의 타깃은 대한민국 대통령 전두환이었다.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사상 초유의 폭탄 테러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미얀마인 포함 사망자 총 21명, 부상자 총 46명이 발생했고 대한민국 행정부 내각 절반 이상이 사망했다.   이 사건 이전에 1983년 9월 1일 대한항공 007 기가 소련 영공에서 격추되는 사건이 있었다. 이때 탑승자 전원 사망하며 소련에 대한 반감이 극에 달하던 시기에 한달 뒤 다시 대통령 테러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버마) 미얀마.. 더보기
감은사지 이야기 - 사리함에 무엇이? 경주에 가면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릉이 바다 속에 있다. 문무왕이 죽으면서 왜구의 침략을 지키는 동해의 용이 되겠으니 대왕암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문무왕 때 불교의 영향을 받아 윤회사상을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동해의 용왕이된 문무왕의 기운을 아직까지도 받기 위해 문무대왕릉 앞에 가면 무속인들의 꽹과리 소리, 굿하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윤회사상 : 이생에서 어떤 업을 쌓느냐에 따라서 다음 생이 또 열린다는 불교의 중요한 사상  신문왕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수중릉을 마련하였고 인근데 감은사를 세워 아버지의 뜻을 기렸다. 감은사지 위치, 금당터 의미 경주의 대부분의 절은 경주의 안쪽에 위치해 있으나 이곳 감은사지 터는 문무왕 근처 경주 외곽 동해바다가 바로 내려다보이는 곳.. 더보기
배달의 민족 의미 / 단군신화 해석하기 배달민족의 어원 우리민족은 어떤 민족인가라고 물으면 배달의 민족이라고 대답한다.  '배달'의 어원은 단군 신화에서 나온다.  단군에 대한 기록은 두 군대인데 고려시대 일연이 쓴 삼국유사와 비슷한 시기 이승휴라는 유학자가 쓴 제왕운기이다. 제왕운기의 기록은 환웅이 손녀에게 사람되는 약을 먹여 사람이 된 환웅의 손녀는 박달나무신과 결혼해 단군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기록에는 '고조선조 ' 우리나라 첫번째 국가 고조선을 세운 단군신화는 환인의 아들 환웅이 세상으로 내려와 고조선을 건국하는 이야기이다. 신화의 내용 중 곰과 호랑이가 환웅을 찾아와 인간이 되게 해달라는 부분이 있다. 이때 환웅이 쑥과 마늘을 주며 '이것을 먹으며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아라 ' 하니 곰만이 인간 (웅녀)이 되.. 더보기
전남 보성 벌교 여행 : 소설 태백산맥 배경 장소들 어디? 태백산맥 문학관 예전에 벌교에가서 주먹자랑으로 하지 말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유는 과거 벌교는 조그만 갯마을이었는데 일제때 전남 송정리와 삼낭진을 연결하는 경전선 철도가 연결이 되면서 벌교는 교통의 요지이자 상업의 중심지가 되면서 많은 돈이 몰렸기 때문이다. 벌교는 아주 중요한 항구도시로 한국의 좌우 갈등과 남북 대결의 현장이자 조정래 작가의 소설 태백산맥의 주요 배경지이다. 그래서 벌교 여행할때 소설 속 공간들을 따라 여행할 수 있는 코스가 잘 발달되었다.    소설 태백산맥이란?  태백산맥이란 용어는 일본 학자에 따른 것으로 현재는 선조들의 개념 따라 '백두대간' 을 사용한다.  소설 태백산맥은 문학 평론가 48인이 뽑은 80년대 최고의 문제작 1위, 현역작가와 평론가 50인이 뽑은 한국의 최고 소설이다.  80년대 .. 더보기
벌교 보성여관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지) 벌교 보성여관은 2008년에 복원해 숙소, 카페, 전시장으로 활용하고 있고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제 제 132호로 지정되어 있다. 관람료 1000원이다.  소설 태백산맥 속 빨치산 토벌대가 머물던 곳 남도여관으로 나오는 곳이 바로 '보성여관' 이다.   보성여관은 1935년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의 수출입을 담당했던 사람들이 묵고 가는 여관으로 문을 열었다.    벌교읍 한구석에 위치한 일식가옥으로 보성여관은 소설 의 배경지였고 1935년 개관해 실제 여관으로 사용된 곳이다. 시민, 기업의 후원으로 복원사업을 거쳐 현재 숙박 및 다목적 문화체험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일제강점시 교통의 중심지였던 벌교는 일본인들의 왕래가 많았고 보성여관은 지금의 5성급 호텔의 위상이었다고 한다. 이후에 윤보선, 김대중.. 더보기
여순사건 원인, 배경, 토벌작전: 부역자 색출방법 여순 사건이란? 광복 이후 정부 수립관련해 통일 정부 수립과 단독 정부 수립에 대한 의견이 충돌한다. 그러던 중 1948년 제주도에서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남로당 세력에 의해 무장봉기가 일어나고 이 사건이 제주 4.3 사건이다. 이에 정부는 제주도의 소요를 진압하라는 명령을 여수에 주둔하던 14연대에게 하달한다. 그러나 당시 14연대의 군인들 중 일부 세력은 동족상잔의 제주도 출동을 반대했고 1948년 10월 19일 , 전라남도 여수-순천에서 국방경비대 제 14연대 소속 일부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정부의 입장에서는 명령 불복종이자 내란이었다.   무장한 14연대의 군인들은 여수와 순천을 순식간에 장악했고 이에 호응한  좌익계열 시민들의 봉기가 이어졌는데 정부는 이 소식에 계엄령을 발효하고 대규.. 더보기
운요호 사건- 강화도 조약 : 일본의 치밀함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나? 운요호 사건신미양요 4년 후 1875년 일본은 운요호 사건을 일으킨다. 일본 군함 운요호가 조선 해안 측정을 핑계로 침범한 것이다. 일본군 군함에 딸린 작은 배를 타고 강화도 초지진으로 접근했고 예고없는 침투에 조선군은 포격을 가해 경고했다. 이에 일본은 일본 국기를 달았는데 공격했다고 자신의 국기에 대한 모독이라며 이에 대한 보복을 위해 강화도 옆 영종진을 침략해 조선군과 주민을 학살한다.    일본은 이 사건의 책임을 조선에 물으며 수교통상 할 것을 요구한다. 이때 운요호 함장이었던 이노우에 요시카는 자신의 국가에 보고할때는 처음에 국기 게양을 하지 않았다고 보고한 기록이 있다. 신미양요때 미국이 했던 방식과 똑같이 군함을 가지고 와서 강화도 앞바다에서 조선군을 도발하며 포격을 유도한 것이다. 이를 .. 더보기
우씨 왕후 이야기 : 언제까지 권력을 잡았을까?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인.. 드라마 우씨 왕후는 고구려 제 9대 왕 고국천왕과 고구려 10대 왕 산상왕은 형제관계로 두 형제모두 우씨왕후를 아내로 두었다. 우씨왕후는 형제와 결혼을 해서 두 번이나 왕위에 오른 인물이다.    우씨왕후 시대적 배경고구려 초기 비류나부, 연나부, 계루부, 환나부, 관나부 5부족으로 이루어진 5부족 연맹체제였다. 5부의 장(대가, 소가) 들이 모여 고구려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제가 회의를 통해 이루어졌고 고구려 초기 5개 부족을 다스리는 군장의 힘은 왕에 맞먹을 만한 힘이었다. 5개의 부족 국가중 압록강 일대를 중심으로 성장한 계루부는 강력한 군사력과 높은 문화수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5개 부족 연맹의 우두머리 격이었다.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 또한 계루부 출신이다. 주몽 이후로도 고구려 왕 대부분은 계.. 더보기
한일 병합, 한일 합방, 경술국치의 뜻 맞는 용어는 무엇? 일본은 1910년 8월 29일을 '한일병합의 날'로 부른다. 한국이 일제의 일부가 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국이 지구상에서 폐멸됨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일본은 단어 하나에도 고심했다. '합병`'은 회사끼리 동등하게 합치는 것이라 합병이나 합방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본은 열등한 한국과 등등하게 합친다는 의미가 있는 '합병과 합방'은 배제한 것이다.    '병탄'이 맞는 용어였으나 '병탄'이란 의미에는 일본의 침략적 야욕이 너무 드러나는 단어라 배제했다. 대내외적인 시선을 고려해 만든 용어로 고심 끝에 도출해낸 단어가 '병합'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병합'이란 말을 써서는 안된다.    이완용이 경술국치 기념해 축배를 들던 장소 통감관저터통감관저 터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나라가 망한 날을 기념..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