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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창덕궁 후원 이야기 (부용지, 연경당, 신선원전 일대) 부용지 일대처음 이곳은 그냥 언덕이었다. 그러나 15세기에 세조가 4개의 샘물을 찾아 연못을 만들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숙종이 을 만들었다. 창덕궁 후원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룬 정자가 무려 17개가 있고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정조가 부용정을 지은 이후 규장각을 설립 몇 대에 걸쳐 완성된 부용지이다.   부용정 부용정은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부용은 연꽃을 의미하는데 연꽃처럼 연못에서 피어오른 듯한 정자라는 의미가 있다. 부용정은 연못에서 솟은 교각에 앞으로 정자가 튀어나온 모양인데 이 난간에 걸터앉으면 마치 배를 탄 듯한 느낌이다.   영화당 영화당은 왕과 신하의 연회장이며 과거 시험 응시자들이 마지막으로 왕 앞에서 시험을 치르던 장소이다.  부용정에서 내려가면 4개의 정자가 .. 더보기
창경궁 이야기 창덕궁과 창경궁은 동궐이라고 불렀다. 왕이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있을 곳이 필요했고 상왕과 왕대비가 머물 궁궐이 필요해서 지은 곳이 창경궁이다. 그래서 아담한 규모와 자연지형에 맞춘 편안한 구조의 궁이다. 이곳에서는 또한 왕비 후궁들이 많이 살았다. 여기서 태어난 왕자 중에 왕이 된 사람이 많다.  창경궁 정문 홍화문은 조화를 넓힌다는 뜻으로 영조가 이 문 앞에서 백성들과 대화를 나눴다. 또한 창경궁의 문정전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장소이다.   ▼창경궁 속 사도세자의 죽음 (영화 사도의 임오화변 이야기)  창경궁 속 사도세자의 죽음 (영화 사도의 임오화변 이야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35,36회] 오늘의 탐사지: 창경궁 (춘당지-경춘천-문정전) 주제: 창경궁 속 사도세자 이야기 출연자:.. 더보기
세종의 어린시절 및 즉위식. 세종의 어린시절   세종의 아버지는 태종 이방원으로 세종은 태종의 셋째아이들 충녕대군이다. 첫째는 양녕대군으로 양녕대군 또한 똑똑했으나 하필 동생이 충녕대군(세종)이 다방면으로 천재성을 보인 충녕을 보고 넘을 수 없다는 걸 느꼈던 걸까?  첫째 양녕대군은 충녕에 대해 ' 충녕은 보통사람이 아니다' 라고 여동생에게 가서 충녕의 비범함과 양녕의 심정을 담은 기록도 있다. 양녕대군이 방탕해진 이유가 충녕대군(=세종)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어느날 태종이 하는 말을 들은 후 우연히 아버지 태종의 속마음을 알게 된 양녕이 일부러 방탕하게 굴었다는 야사도 있다. 양녕대군은 그후 기행을 일삼다가 결국 선을 넘어 양녕대군이 사랑한 기생 어리를 간통하고 납치한 얘기를 세종이 고자질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건국 초기 나라를 .. 더보기
묘효, 시호란? 세종대왕의 이름은 '이호' 로 그 당시 왕의 이름에 쓰인 한자는 백성들이 사용할수 없기 때문에 왕의 이름엔 어려운 한자를 사용했다고 한다.  묘호란?  죽은 이의 영혼이 위패(신주) 안에 깃든다고 생각하고 그 위패를 모셔둔 단지(=상자)를 신주단지라고 하고 신주를 놓던 그 자리가 신위, 그 신위에 붙이는 이름이 묘호로 그것이 바로 '세종' 이었다.  시호란?  시호는 그 분의 공덕을 기리기 위한 이름으로 세종의 시호는 영문, 예무 ,인성, 명효 대왕  영문:문에 뛰어나시고  예무: 무예도 뛰어나시고  인성: 성품이 인자하시고  명효: 명석한 두뇌와 효도, 효성스럽다. 더보기
한국 최초 서울전차 역사, 무엇을 바꾸어 놓았나? 한국 최초 전차 우리나라 전차는 70년간 운행이 되었는데 사실 서울에 남아있는 전차의 흔적은 전차 363호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서 있는 381호 단 두 대뿐이다. 그런데 얼마전 이것의 흔적이 얼마전 발견되었다.   1899년 5월 4일 3시 우리나라 최초의 전차가 개통되었다. 이것은 일본 교토에 이어 아시아 두 번째로 개통된 것으로 사람들은 이 전차를 보기 위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동대문 안쪽에 차고지와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가 위치해 있었다.   전차가 도입되기 전 고종은 매번 막대한 비용을 들여 명성황후의 묘, 홍릉을 행차하곤 했는데 당시 한성전기회사를 위탁 운영하던 미국인 콜브란 (H. Collbran) 이 이를 보고 전차를 도입하면 행차비용을 줄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수익도 올릴 수 있다고 .. 더보기
거북선 구조 및 판옥선, 거북선 비교 거북선의 구조 거북선 용 머리가 있는 이유  가설 1: 화포를 넣어 발사했을 것이다.라는 가설이 있다. 가설 2: 나무로 된 배로 해전을 치루던 시기에 중요했던 무기는 상대방 배의 선수에 충돌하는 청동으로 된 무기였다. (충파 전법) 거북선 앞 용머리가 금속으로 만들어 충파 전술에 활용됐을 것이다.    거북선의 용머리에서 현자총통(대포)를 발사해야 하는데 ㄱ자 구조라면 대포 발사가 불가능하여 실제 용머리 형태는 일(ㅡ)자로 박힌 모양 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거북선 덮개는 철로 만들었다?  덮개의 재질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철이 아니다: 당시 기술로는 역부족 #철이다:철이 아니면 설명 불가능한 내구성 이 부분은 알수가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일본군에게 공포심을 심어준 것을 확실하다.  왜적선과.. 더보기
조선총독부 폭파 이유: 김영삼 대통령 역사 바로 세우기 프로젝트 김영삼 대통령(임기: 1993~1998.2월)은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으로 민주화 이후 첫 문민정부를 이끈 인물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부패 척결과 경제 개혁을 추진했고,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등 중요한 시기를 거쳤다. 역사바로세우기 프로젝트는 김영삼 대통령이 추진한 중요한 개혁 정책 중 하나로 주요 목표는 한국의 현대사에서 왜곡되거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역사적 진실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중에 조선총독부 폭파사건은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1910년 ~1945년까지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 제국의 한국 통치 본부였던 건물로 서울 경복궁 앞에 위치해 있었으며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한국이 독립한 후에도 이 건물은 미군정 사령부- 중앙청- 국.. 더보기
청와대 수궁터 역사 ( 구본관 터 ) 현재의 개방된 청와대 부지는 과거 수궁터가 있던 곳으로 한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로 조선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역사적 변천을 겪어 왔다. 청와대 수궁터는 조선 시대의 왕실 별궁에서 시작하여, 일제강점기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적 변천을 거친 장소이다. 이곳은 한국의 역사적 사건들과 문화적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장소로, 청와대의 복합적인 역사와 문화적 의미는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조선 시대의 수궁터수궁터는 조선시대 왕실의 별궁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조선 왕조(1392-1910) 초기에 왕실의 사냥터로 사용되기 시작하다가 이후 왕의 휴식처인 별궁을 지었다. 수궁(守宮)은 말 그대로 '물고기들이 사는 궁궐'이라는 뜻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 더보기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는 이유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은 사실 독일이 라인강의 기적을 표절한 것이다.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을 하고 황폐한 도시에서 강대국으로 발돋움을 한 것이다. 이에 우리나라도 독일과 같이 6.25 전쟁 이후 라인강의 기적을 따라 한강의 기적을 이뤄보자고 한 것이다.   그러나 독일은 원래 강대국이였고 한국은 식민지였기에 출발 자체가 달랐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우리나라는 최빈국이었다. 한국전쟁 직후 남한 1인당 국민총소득은 67달러 (1년간 총소득 한화 약 8만 7천원)였다. 현재는 38,000 달러이다. 70년만에 이뤄낸 엄청난 경제성장인 것이다. 피식민지에서 선진국 반열로 일어난 국가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한국전쟁 직후 북한이 더 잘살았다?  한국전쟁 직후는 북한이 더 잘살았다.  일제.. 더보기
조선시대 형벌 종류 및 무슨 죄를 지으면 ... 조선시대는 중국 명나라의 대명률을 따라 다섯가지 형으로 나뉘었다.  태형가장 가벼운 죄(경범죄, 가벼운 절도,도박,음주, 폭행) 를 지은 경우로 물푸레나무로 만든 매를 사용해 10~50대까지 다섯 등급으로 나눠 둔부를 치는 벌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길들이기 위해 흔히 사용되었으며 1920년까지 존재했다.  장형 태형보다 무거운 죄를 지은 경우(심각한 절도, 폭행구타,간통, 위조, 뇌물 수수등)로 60~100대까지 다섯등급으로 나눠 둔부를 치는 벌로 곤장 10대를 맞으면 살점이 심하게 떨어져나가고 그것이 회복되기까지는 한 달이 걸린다.  태형, 장형 모두 죄인의 엉덩이를 노출해 대수를 세어가며 매를 쳤지만 부녀자의 경우는 노출 시키지 않았고 70세 이상의 노인, 15세 이하의 어린이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