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썸네일형 리스트형 한일 병합, 한일 합방, 경술국치의 뜻 맞는 용어는 무엇? 일본은 1910년 8월 29일을 '한일병합의 날'로 부른다. 한국이 일제의 일부가 됨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국이 지구상에서 폐멸됨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일본은 단어 하나에도 고심했다. '합병`'은 회사끼리 동등하게 합치는 것이라 합병이나 합방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본은 열등한 한국과 등등하게 합친다는 의미가 있는 '합병과 합방'은 배제한 것이다. '병탄'이 맞는 용어였으나 '병탄'이란 의미에는 일본의 침략적 야욕이 너무 드러나는 단어라 배제했다. 대내외적인 시선을 고려해 만든 용어로 고심 끝에 도출해낸 단어가 '병합'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병합'이란 말을 써서는 안된다. 이완용이 경술국치 기념해 축배를 들던 장소 통감관저터통감관저 터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 나라가 망한 날을 기념.. 더보기 강신무와 세습무의 차이 : 모든 무당은 작두를 탄다 ?! 중부. 이북지방은 무병(신병)을 앓고 무당이 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이런 사람을 신이 내렸다고 해서 강신무라고 한다. 충청, 전라, 경상의 삼남지방의 경우는 세습무가 많다. 부모가 무당이면 혈연 승계로 자식도 무당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강신 경험이 없다. 그래서 무당이라고 모두 신이 내린것은 아니다. 하지만 드라마적인 요소들로 미디어에선 강신무의 모습이 대다수 보여지고 있는 것이다. 태백산맥 소설의 소화라는 무당이 나오는데 '소화'의 모습은 세습무이다. 반면에 영화 속 김고은(화림 역)은 강신무 역할이었다. 모든 무당이 작두를 탄다는 건 오해이다. 무당은 몸주 즉 무당이 신병을 앓을 때 강신하여 영력의 주체가 되는 신격이 있는데 그 신이 작두장군이나 작두대신이라고 부르는 신을.. 더보기 덕수궁 이야기 덕수궁은 조선왕조 500년 중 가장 마지막 비운의 역사가 있는 곳이다. 덕수궁은 선조(14대) 가 임진왜란때 의주로 몽진한 후 1년 후 한양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모든 궁궐이 불타버려 머무를 곳이 없어지자 성종(9대 1469년 ~ 1494년)의 형 월산대군이 살던 집에서 지내게 된다. 이곳에 월산대군의 증손자가 살던 석어당을 정릉동 행궁이라 불렀다. 💡정동 역사 : 월산대군 집 -> 경운궁이 되기까지 역사보기 덕수궁 석어당이 특별한 이유덕수궁 석어당, 조선 왕실의 비운이 깃든 공간👉 오늘날 서울 한복판에 있는 덕수궁. 그 안에 비교적 소박한 건물 하나가 조용히 서 있다. 바로 **석어당(昔御堂)**이다.궁궐치곤 단청도 없고 화jangane.tistory.com 덕수궁 돌담길 커플이 같이 걸으면.. 더보기 공화국 구분 기준 : 6 공화국까지 간략역사 ▣ 제1 공화국 : 이승만 정권 대한민국 최초의 민주적 선거는 5.10 총선거로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이다. 이 선거를 통해 임기 2년의 200명의 의원이 선출되고 대한민국 헌법이 1948년 7월 17일 제정된다. 또한 간접 선거를 통한 초대 대통령으로 이승만이 선출되고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한다. 1차 개헌 제헌국회의 임기는 2년이었다. 1950년 5월 30일 2대 총선에서 국회의원 선거가 치러지고 이때 야당 성향 무소속 의원이 약 70% 당선되자 이승만 대통령은 재선이 어려울 것을 염려해 직선제로 개헌을 한다. 이승만은 1952년 한국전쟁 중에 '공비소탕' 을 구실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후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1차 개헌을 강행한다. 2차 개헌제헌 헌법에는 대통령 임.. 더보기 개심사 : 곡선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찰. 개심사는 충남 서산에 위치해 있는 작은 절로 개심의 뜻은 마음을 열다라는 뜻으로 마음을 여는 절이 개심사이다.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 중 하나이고 코끼리 모양을 닮았다는 상왕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의자왕 600년대 생긴 절로 여러 차례 불타고 부서지고 새로 짓고 한 끝에 성종 때 (1484) 그리고 그 이후 몇 차례 중수, 중창해서 현재 모습이 되었다. 당진이라는 지명은 당나라 당, 나루 진 으로 백제 때 당나라로 왕래하던 당진의 나루터가 당진포였다. 당진포를 통해 조세 물품을 실어 나르던 조운선이 당진을 지나갔다. 개심사의 가람배치는 백제스타일로 굉장히 단순하여 지대 안에 건물이 있고 필요하면 옆에다 짓고 펼쳐 나갔다. 코끼리 상자는 코끼리의 긴 코를 표현한듯 하고 산 자 획의 3개.. 더보기 성공회 강화성당 , 온수리 성당 성공회 강화성당 강화도에는 한국 최초의 성공회 성당 건물이 있다. 영국 코프 주교에 의해 1900년에 건립된 건물이다. 성공회란 1534년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분리해나간 영국 국교회로 성스럽고 공변된 교회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강화도 성공회 성당은 최고의 한옥 성당이자 최고의 동서양 문화 융합의 사례이다. 목재와 샹들리에가 조화된 고풍스러운 예배당 내부이다. 성공회는 강화도에 1900년에 건축되었고 강화 성당을 근거지로 1926년 서울 성공회 성당이 건립된다. 성공회 성당은 한국의 토착문화를 받아들이려는 흔적이 있다. 1층은 장지문, 2층은 유리창으로 만들어져 있고 마당에는 불교의 보리수 나무와 유교의 상징 회화나무도 심었는데 회화나무는 2012년 태풍 볼라벤으로 쓰러졌다. 성공회 온.. 더보기 강화도 초지진, 광성보 이야기 (손돌목, 용두돈대 등) 강화도가 천혜의 요새인 이유몽골의 잦은 침략에 시달렸던 고려, 고려시대때의 수도는 개성(개경)이었다. 육지에서는 몽골을 대적하기 힘들었다. 레그니차 전투 등 유럽조차 공포로 몰았던 기마 전투력을 가진 몽골이었다. 그러나 몽골족은 바다 경험이 없어 상대적으로 해상 전투력이 취약했기 때문에 바다로 유인하려고 1232년 최우 (무신정권의 집권자)는 강화도로 수도를 몽골 침입 시 강화도로 천도 결정하고 고려 39년 동안 고려의 수도가 되었다. 이때는 왕보다 군인의 힘이 더 영향력이 있었다. 강화도가 천혜의 요새인 또 다른 이유는 사방이 갯벌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배의 접근이 어려웠다. 배를 댈 수 있는 곳이 정해져 있었고 그곳에 집중해서 초소를 집중 배치를 한다. 그 초소를 바로 돈대라고 부른다... 더보기 강화 손돌목 , 손돌바람에 얽힌 전설. 강화와 김포 상에 강화해협에 손돌목이라고 있다. 이곳은 물살이 세고 험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절기 소설이 되면 강화도 사람들은 강화도 손돌바람, 손돌추위라고 부른다. 손돌이 되면 배를 띄우지 말라는 전설이 있다. 옛날에 손돌이라는 사공이 살고 있었는데 고려의 왕이 몽고에 쫒겨 강화도로 오게 되고 손돌이 사공이 되었는데 어느 구간을 지나가니 배가 너무 흔들리니 왕이 사공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생각해 목을 베어 죽였다. 죽기전에 손돌은 왕에게 나중에 위험할 때 바가지를 따라 가라고 말하고 죽었다. 나중에 물살이 급한 곳에 도착하게 되고 손돌의 말대로 바가지를 따라 갔더니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하게 되었다. 그 뒤로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원한으로 그 시기가 되면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한다. 실제로 강.. 더보기 이전 1 ··· 35 36 37 38 39 40 41 ··· 9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