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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삿상에 복숭아를 올리면 안되는 이유 ..(동양 신화 이야기) 서양의 영웅하면 헤라클레스가 생각나는데 동양의 영웅으로 '예'가 있다. 서양 신화 속 헤라클레스는 힘센 장사 이미지이고 동양 신화 속 영영웅 '예'는 활을 잘 쏘는 인물이다. '예'는 활을 잘 쏘는 영웅으로 동양 최고 미의 여신 항아라는 아내와 살고 있었다. 동양의 고대 신화에 태양이 10개가 있었는데 하루에 하나씩 교대로 떠오르던 태양이 어느날 한꺼번에 떠올라 세상이 극심한 가뭄과 모든 것을 마르게 하자 사람들은 예를 찾아가 태양을 활로 쏘아 주기를 간청했다.    이에 9개의 태양을 활로 쏴서 떨어뜨리고 1개의 태양만 남겨 임무를 완수하면서 영웅이 된다. '예'는 생명의 여신 서왕모에게서 얻어온 불사약 복숭아가 2개 있었는데 어느날 아내 항아가 이 불사의 약 복숭아를 가지고 도망을 가버리고 혼자 살게.. 더보기
이자겸의 난 진실 고려시대 사회 변화 이자겸은 인주 이씨로 혼인관계를 통해 고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진 외척으로 등극했다. 이자겸은 인주 이씨로 지금의 경기도 인천이 본관을 고려 왕실과의 혼인을 통해 세력을 키운 외척 세력이다.   고려 16대 왕 예종의 장인이자 17대 왕 인종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으로 그 힘을 업고 왕을 몰아내려고 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1126년 고려의 17대 왕 인종이 내시를 불러 이자겸과 척준경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자신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인 이자겸을 숙청하라고 명을 내린 것이다.  인종잉 먼저 이자겸을 제거하려던 것으로 외손자 인종에게 공격받고 이자겸이 방어한 것인데 교과서에는 이자겸의 난으로 기록되어 있다.  인종이 왕위에 오를때가 14세였다. 그래서 인종을 대신해서 1.. 더보기
붉은 악마 , 귀면와에 그려진 모습은 무엇? 염제 신농과 황제의 싸움 우리의 붉은 악마의 모습과 신라 시대 기와 속 귀신의 모습을 한 것을 많이 새겨 넣었는데 이는 동양의 신화에 등장하는 모습이다. 동양의 남신 중에 염제 신농이라는 농업의 신이자 불의 신, 의약의 신이 있는데 인간에게 약초를 알려주기 위해 직접 모든 풀을 먹어보고 사람에게 가르쳐주는 신이다. 고구려 벽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염제 신농이다.   또 다른 강력한 신, 황제라는 신이 있었다. 임금 황제와는 한자가 다르다. 황제는 용의 반인반수 물의 신으로 염제 신농을 몰아내고 최고의 신 자리에 등극한다. 황제가 최고의 신으로 등극한 것은 백택이라는 동물 덕분이었다.  이 백택은 이 세상의 모든 귀신과 요괴들을 통달하고 있었고 황제의 부하로써 황제를 최고의 신으로 등극하도록 돕는다.   불.. 더보기
일본식 카레 역사 146-7 일본의 3대 양식으로 손꼽히는 음식 중 하나는 카레이다. 카레는 1920년대 초에 대중화되기 시작해 1930년대 절정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1936년 오사카의 한 백화점에서는 카레 판매량이 하루에 13000그릇에 달했다.     인도의 커리가 일본식 카레로 인기를 끌게 된 계기는 군대와 관련이 있다. 1870년대 일본 군대에 퍼진 극심한 근육 소모가 되는 병인 각기병이 유행했는데 극심한 근육 소모로 팔다리가 약해지면서 제대로 걸을수가 없을 뿐 아니라 신부전과 말초신경 장애까지 일으켰던 무서운 병이었다. 그러나 이 병은 서양사람들에게는 없는데 유독 일본인들에게만 자주 발생했다. 특히 육군보다는 해군에서 다수의 각기병이 발생했다.  그래서 군 당국은 본격적으로 각기병의 원인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확인.. 더보기
일본식 서양음식 : 고로케, 단팥빵, 캐러멜 ,건빵 146-6 [이전글 일본 돈가스 역사]  우리가 말하는 경양식은 가벼운 양식으로 돈가스와 밥, 수프까지 함께 즐기는 외식 메뉴인데 양식이 아닌 일본식이다. 경양식은 정통 양식처럼 풀코스로 나오는 것이 아닌 일본인의 기호에 맞게 몇 가지 음식이 변형된 서양요리이다. 그래서 1900년 전후로 도쿄 경양식 식당이 1500곳 이상 빠르게 증가했다.   고로케 탄생돈가스 말고 돼지고기를 활용한 양식 중 하나가 고로케이다. 작고 바삭바삭한 소리가 나는 것이라는 뜻의 프랑스 크로켓트에서 유래된 음식이다. 자투리 돼지고기를 활용해 만든 음식이라 가정식으로 자리잡았다.    전쟁으로 인해 돼지고기 소기가 값이 폭등하면서 돼지고기가 주목받은 것처럼 일본군의 식량문제로 인해 새롭게 떠오른 것이 있다. 18세기까지 일본군의 전투식량은 .. 더보기
추사 김정희 별장: 백석동천 폐허가 된 별서의 정취... 백석동천은 추사 김정희의 별서로 언제 지어졌는지 알지못하지만 1930년대까지 별장으로 운영되던 곳이다. 그 후 한국 전쟁 이후 잊혀지기 시작했고 이후에 다시 청와대 경호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이곳은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혀졌다. 그러다가 2006년 일반에게 개방되었다.  백석동천은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탄핵 심판 기간동안  청와대 안에만 머물러 있던 중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청와대 경호 구역을 산책하다가 이곳을 발견했다. 이때 문화재청장을 불러 이곳을 조사하게 했고 알고보니 추사 김정희의 별서로 밝혀진 것이다. 더보기
흥선대원군 별서 석파정 흥선대원군(1820-1898) 의 호는 석파로 돌석, 언덕 파 돌 언덕이라 는 뜻의 석파정은 인왕산 북동쪽 바위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별장 (=별서)으로 수려한 자연 경관 속에서 그림을 가까이 했던 곳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흥선대원군 난초 그림의 스승으로 흥선대원군이 되기 전에 그림을 좋아하던 이하응이 추사에게 난초를 배웠다.  소수운련암 물로 둥지를 틀고 구름으로 발을 삼은 암자라는 뜻으로 석파정을 짓기전 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는 바위로 바위에 새긴 글귀는 옛날부터 이곳이 아름다웠다는 것을 말해주는 시적표현이다.  원래 석파정의 주인은 철종때 세도가 안동김씨 김흥근이었다. 그런데 흥선대원군이 이 집 빼어난 풍광에 마음에 쏙 든 것이다. 수차례 김흥근의 별서를 매매 제안을 했으나 이를.. 더보기
창덕궁 후원 이야기 (부용지, 연경당, 신선원전 일대) 부용지 일대처음 이곳은 그냥 언덕이었다. 그러나 15세기에 세조가 4개의 샘물을 찾아 연못을 만들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숙종이 을 만들었다. 창덕궁 후원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룬 정자가 무려 17개가 있고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정조가 부용정을 지은 이후 규장각을 설립 몇 대에 걸쳐 완성된 부용지이다.   부용정 부용정은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부용은 연꽃을 의미하는데 연꽃처럼 연못에서 피어오른 듯한 정자라는 의미가 있다. 부용정은 연못에서 솟은 교각에 앞으로 정자가 튀어나온 모양인데 이 난간에 걸터앉으면 마치 배를 탄 듯한 느낌이다.   영화당 영화당은 왕과 신하의 연회장이며 과거 시험 응시자들이 마지막으로 왕 앞에서 시험을 치르던 장소이다.  부용정에서 내려가면 4개의 정자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