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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이순신 명량해전 금신전선 상유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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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신전선 상유십이'란?

이순신 장군이 남긴 이 유명한 말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 尙有十二)"**는 한문 그대로 해석하면 **"지금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을 앞두고 조정에서 이순신에게 싸울 수 없으니 수군을 해체하라는 명령을 내렸을 때, 장군이 올린 장계(보고서) 속 한 문장이다.

 

🔹 배경: 조선 수군의 붕괴
1597년 7월,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이 왜군의 기습을 받아 거의壊滅(괴멸, annihilation)되었다.
함선 약 140척 중 12척만 남았고, 조선 수군은 사실상 궤멸된 상태였다. 조정에서는 더 이상 싸우는 것은 불가능하니 수군을 해체하고, 육군과 합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원균 칠천량 해전 : 조선 수군 역사상 최악의 참패

원균과 이순신 원균과 이순신은 정말 달랐다. 원균은 무인집안이고 이순신은 문신 집안으로 32세 나이에 무과 급제후 장군이 된것이다. 원균은 물불 가리지 않는 무대포 파이터 스타일이며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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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이에 반대하며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으니 싸울 수 있다!"**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결국 그는 남은 배 12척으로 명량에서 133척에 달하는 왜군 함대를 물리치는 대승을 거둔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속 이순신 명량해전,노량해전 (칠천량해전)

[선녀들 리턴즈 7회 후반] 요약 내용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과 마지막 격전지 남해 관음포 노량해전에 대해 이야기한다. 임진왜란은 1592년 시작하여 총 7년간의 전쟁. 2년 동안의 전쟁 3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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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명량해전(鳴梁海戰, Battle of Myeongnyang)의 전개

전투 장소: 명량해협 (전라남도 해남과 진도 사이)
조선 수군: 전선 12척
왜군 수군: 133척
결과: 조선군 대승 (왜군 31척 격침, 조선군 피해 최소)

 

🔹 전투의 주요 전략

  • 지형을 활용한 전술: 명량해협은 조류(해류의 흐름)가 강하고, 수로가 좁아 대규모 함대가 기동하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 거북선 없이도 승리: 거북선은 칠천량 해전에서 모두 파괴되어 없었지만, 이순신은 판옥선(조선의 주력 전투선)과 지형을 활용하여 싸웠다.
  • '학익진' 대신 '유인 전술': 학익진(학이 날개를 편 모양의 포위 진형)을 펼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신 일부 함선을 미끼로 사용하여 왜군을 유인하고, 흐트러진 적을 집중 공격하는 전략을 썼다.

3. '금신전선 상유십이'가 가지는 의미

이 말은 단순히 배의 개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강인한 의지와 희망의 상징이다.

  •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
  • 수적인 열세를 극복하는 전략적 사고
  • 나라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충성심과 용기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 당시, 원균(元均)이 지휘하던 조선 수군이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여 조선 수군의 거의 전멸했다. 이순신 장군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했을 때, 남은 배는 고작 12척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으니 싸울 수 있다"며 장병들의 사기를 북돋았다. 이후 조선 수군은 명량해전에서 12척으로 133척의 일본군 함대를 격파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 실제로 했던 말일까?

하지만 "금신전선 상유십이"라는 표현은 후대에 각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순신 장군이 남긴 '난중일기(亂中日記)' 와 당시 기록을 보면, 명량해전 전후로 이런 말을 했다는 직접적인 기록은 없다.
그러나 이순신이 수군을 포기하지 않고 열두 척으로도 싸울 수 있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던 것은 사실이다.

🎬 문화 속의 "금신전선 상유십이"

이 표현은 후대에 영화, 드라마, 문학 작품에서 각색되어 더욱 유명해졌다.
특히 **2014년 영화 <명량>**에서 최민식 배우가 이 대사를 강렬하게 외치면서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명량 울돌목

 

이순신은 명량에 소용돌이치는 물살이 거센소리를 내는 좁은 바닷길이 있는데 이를 울며 돌아간다는 뜻의 울돌목의 길목을 선택한다. 10배가 넘는 전력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선택한 곳이다. 

 

울돌목

 

왜선의 특징은 가볍고 빠르기 때문에 거센 조류에 취약하다는 점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13척의 배로 133척을 상대가 안되기 때문에 자연의 힘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배가 많아 보이게 고기잡는 어선을 끌고 나와 항구쪽에 세워놨다. 

 

 

명량해전에 조선군의 피해가 없고 적선 31척을 격파하며 승리한다. 극도로 불리했던 조선군이 왜군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것을 본 왜군은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다.  

 

🏴‍☠️ 서양과 비교하면?

서양의 해전사에서 명량해전과 비슷한 사례로 영국의 넬슨 제독(Lord Nelson)의 트라팔가 해전(1805년) 을 들 수 있다.
넬슨도 압도적인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를 상대로 뛰어난 전략을 펼쳐 승리했으며, 전투 중 부상을 입고 전사했다. 하지만 이순신의 명량해전은 병력과 전술의 차이가 더욱 극적이었고, 12척의 배로 133척을 이긴 것은 세계 해전사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이순신 해전 간략 정리 

 

이순신 해전

사천해전(1592년)은 이순신이 최초로 거북선을 투입 왜군을 전멸시킨 해전이다. 이때 배 한척을 돌려보낸다. 그 이유는 배를 전부 박살냈다면 살아남은 왜군이 도망갈 곳은 헤엄쳐 육지로 도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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