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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서갱유 : 법가 VS 유가의 대립 진시황의 선택은? 역사 속에서 "책을 태우고 사람을 죽인다"는 일은 종종 강력한 권력을 가진 통치자들이 사상과 생각을 통제하려고 할 때 일어난다. 분서갱유는 그 대표적인 예로,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뒤 시행한 강력한 억압 정책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단순히 책 몇 권을 태운 일이 아니라 진시황이 왜 유학(유교) 사상을 그렇게 적대시했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 진시황 출생 비밀 먼저 알아보기   여불위,자초와 제태후, 노애 그리고 진시황 출생 비밀 이야기기원전 3세기는 중국 대륙은 하루도 평온한 날이 없었다. 주나라의 봉건제도가 무너지면서 갈기갈기 찢어진 세력들이 7개의 나라로 분리되어 앞다투어 패권경쟁에 뛰어들었고 기원전 247년 진나jangane.tistory.com 법가 VS 유가 유가는 중국의.. 더보기
한국인 삼시세끼 쌀밥 언제부터 먹었나? 쌀밥은 이제 한국인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식이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흔한 음식은 아니었다. 삼국시대에는 떡과 죽이 주식이었고, 고려시대에 들어서야 밥을 짓는 문화가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1970년대 통일벼가 개발되면서 쌀밥은 대중화되어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모습이 되었다. 한국인의 식탁에 얽힌 쌀밥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자.  삼국시대, 떡과 죽이 주식이었던 시절 삼국시대에는 쌀밥을 먹는 문화가 거의 없었다. 당시에는 무쇠를 주로 무기 제작에 사용해 무쇠솥을 만들 자원이 부족했다. 대신 쌀을 찌거나 갈아 떡과 죽으로 만들어 먹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쌀은 귀한 재료로 상류층과 특별한 행사에서만 사용되었다.   고려 중기, 무쇠솥과 쌀밥 문화의 시작 고려 중기부터 무쇠솥이 등장하며 밥을 짓.. 더보기
녹색혁명 통일벼 사라진 진짜 이유 "식량 자급자족을 달성하겠다!" 1970년대 초, 대한민국은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당시 우리나라는 매년 200만 톤 이상의 쌀을 수입하고 있었고, 국민 한 사람당 연간 쌀 소비량은 130kg에 달했다. 식량 자급은 국가의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통일벼'였다. 1971년 첫 재배를 시작으로, 통일벼는 한국의 녹색혁명을 이끌었고 1977년 마침내 쌀 자급을 달성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하지만 모든 혁신이 그렇듯, 통일벼 역시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오늘은 이 혁신적인 벼 품종이 가져온 예상치 못한 문제점들을 살펴보려 한다. 그 전에 통일벼 재배 이유 역사를 먼저 확인하세요  ▶통일벼란 무엇인가?  혁신적이었던 통일벼, 하지만...통일벼는 1970년대 한국의 심각.. 더보기
김처선의 잔혹한 처형: 연산군 폭정의 극치 김처선의 죽음은 연산군의 잔혹성과 권력의 폭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건이다. 단순히 활에 맞아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그의 처형 과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혹했다. 연산군은 김처선의 죽음을 통해 신하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자신에게 도전하는 자들을 철저히 응징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했다. 1. 처형 과정: 상상 이상의 잔혹함김처선은 단순한 내시가 아니라, 왕의 폭정을 막고자 직언했던 충신이었다. 그러나 연산군은 이를 도전으로 받아들였고, 처형 과정은 그의 잔인성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활로 겨냥당하다:연산군은 김처선을 활로 쏘라는 명령을 내렸다. 신하들과 군사들은 김처선을 표적으로 삼아 활을 발사했고, 그의 몸은 온통 화살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었다.팔과 다리의 절단:활로 처형하는 .. 더보기
조선 서민의 상징 민화 이야기 : 책거리, 화조도 "어느 집이든 벽 한쪽에 그림 한 점쯤은 걸려 있었던 시절, 그 그림 속에는 사람들의 염원이 가득 담겨 있었다." 조선 시대의 그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왕의 권위를 상징하기도 했고, 사대부의 품격을 나타내기도 했으며, 백성들의 꿈과 소망을 담기도 했다. 특히 민화는 조선 백성들의 소박한 일상과 마음속 깊은 소망을 담아낸 그림으로,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책거리는 조선 사회의 독특한 문화와 욕망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 흥미로운 민화 속 이야기를 지금부터 풀어보자. 조선 시대 회화의 분류 기준조선 시대 그림은 크게 두 가지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대상에 따른 분류궁중 회화: 왕과 국가를 위한 그림.문인화: 사대부를 위한 그림.민화: 대중을 위한 그림으로,.. 더보기
태종 이방원과 후궁들 : 효빈 김씨, 신빈 신씨 , 선빈 안씨 최후는? 태종의 후궁 19명 중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이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조선 왕조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특히 자녀를 낳은 후궁들은 더욱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 "숫자로 보는 태종의 궁궐 로맨스"후궁 총 인원: 19명정비: 원경왕후 민제자녀: 총 31명 원경왕후의 자녀: 7명알려진 후궁들의 자녀: 6명   드라마 원경 - 19명의 후궁을 둔 왕과 한 여인의 이야기드라마 '원경2025년 1월, tvN과 TVING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원경'**은 조선 건국 초기의 격동기를 배경으로 한 본격 사극이다. 고려의 멸망과 조선 왕조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변곡점에서 태종 이products.wissue.net 1위 세종의 어머니 원경왕후 민씨태종이 즉위한 후, 민씨는 원경왕후로 책봉되어 조.. 더보기
잠깐, 이게 계단이 아니라고? 청운교 백운교 천년의 비밀 불국사를 방문하면 누구나 한번 쯤은 인증샷을 찍은 장소. 청운교와 백운교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다. 751년(경덕왕 10년)에 건립된 구조물로 단순한 계단이 아니다. 1,270여 년의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신라의 놀라운 건축 기술과 불교적 상징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우리 문화유산이다. 겉보기엔 그저 오래된 돌계단처럼 보이지만, 사실 청운교와 백운교는 계단의 모습을 한 다리로 만들어졌다. 어라? 근데 왜 다리라 부르는 것일까"저게 왜 다리인가"라는 의문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유가 있다. 언뜻 보면 그냥 오래된 돌계단 같지만, 사실 이 두 구조물은 다리로 불리며 특별한 역사와 의미를 담고 있다. 왜 계단을 다리라고 부를까? 그 이유는 바로 과거 이 계단 아래로 물이 흐르던 흔.. 더보기
화천 산천어 축제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 : 축제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겨울마다 강원도 화천군을 방문하면 꽁꽁 언 얼음 위에서 산천어를 낚으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화천 산천어 축제는 단순한 겨울 이벤트가 아닌,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엮은 독특한 축제로 자리 잡았다. 이 축제는 어떻게 시작되었고, 왜 이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일까?  1. 산천어 축제 기원과 역사적 배경  화천 산천어 축제는 2003년, 강원도 화천군의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겨울철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화천은 겨울철 차가운 기후와 깨끗한 계곡물이 흐르는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어, 얼음낚시와 같은 겨울 체험 프로그램에 최적의 장소로 꼽혔다. 축제의 핵심인 산천어는 지역 계곡에서 서식하는 토종 어종으로, 산천어 낚시는 화천의 생태적 특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