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 126-1 영국이 전 세계를 호령하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된 기틀을 마련한 인물인 튜더 왕조의 마지막 군주이자 처녀여왕이라 불렸던 엘리자베스 1세이다.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왕이라고 불린 엘리자베스 1세에게는 강력한 라이벌이 있었다. 출생부터 왕위 계승에 데한 정통성 , 권력, 미모까지 한평생 모든것을 비교당하며 엘리자베스 1세의 자존심에 스크래치를 낸 인물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이다.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 메리는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자 한때는 프랑스의 왕비로 지내며 유럽 권력의 최정점에 올랐던 여왕이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까지 소유했던 인물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때문에 남성들을 홀리며 세번이나 결혼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메리는 우리나라 엄친딸처럼 어릴때 부터 시, 음악, 스포.. 더보기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갈등 역사/ 유니언 잭 탄생 126 -2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즉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잉글랜드에는 왕위 논란이 퍼진다. 잉글랜드 존재했던 가톨릭 세력은 엘리자베스 1세가 시녀의 딸이자 사생아라 왕위 계승권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스코틀랜드의 메리를 여왕으로 해야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메리는 헨리 8세의 누나인 마거릿 튜더와 스코틀랜드의 왕 제임스 4세의 후손으로 튜더왕조와 스튜어트 왕조의 혈통을 모두 이어받았기 때문에 가장 정통성있는 왕위 계승자라는 것이었다. 개신교가 장악한 잉글랜드에서 가톨릭 세력 확장에는 메리가 유리하다고 판단이 숨어있었다. 이렇게 5촌 지간인 메리와 엘리자베스 1세의 라이벌전이 시작되었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라이벌전프랑스 왕 앙리 2세는 메리에게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메리의 공식 왕실 .. 더보기 팔레스타인 하마스와 이스라엘 분쟁 역사 팔레스타인은 어디? 팔레스타인은 서안지구와 가자기구가 있는데 서안지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이고 가자지구는 하마스가 장악하고 있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의 이슬람 원리주의 정당으로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무장투쟁을 주도하는 단체이다. 전쟁에 진다고 해도 분쟁화로 정치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려 하고 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역사 구약성경에 따르면 기원전 2100년 지금으로부터 4000년전 지금의 이라크땅이 메소포타미아에서 가나안으로 이사를 온 아브라함 가족이 있었다. 둘 사이에 아들이 없자 아브라함은 첩 하갈을 들이고 이 둘 사이에 이스마엘이 태어난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100세 때 아들 이삭을 첫 번째 부인에게서 본다. 그래서 장자인 이스마엘과 적장자인 이삭 사이에 상속문제가 발생하고 고민하던 아브라함은 이스마.. 더보기 북한과 하마스 전술의 유사성 무엇이 비슷한가? 2023년 이스라엘의 음악축제에 팔레스타인 하마스 대원들이 춤추는 인파 위로 패러글라딩을 타고 침투해 총기로 위협 빠르게 인질들을 납치해간 사건이 발생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감시를 피해 공격할수 있었던 이유는 드론으로 국경 주변의 첨단 군사시설을 파괴 후 허물어진 국경을 통해 인질들을 강제로 이동시켰다. 북한의 하이브리드 전술 그런데 북한도 비슷한 훈련을 한적이 있었다. 2010년에 철책을 모두 첨단 장비 과학화 경계 시스템으로 도입하자 북한은 청와대 모형을 만들어서 2016년 북 특수부대원들이 청와대 모의 침투 훈련을 위해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신속하게 낙하 후 청와대를 파괴하는 모습이 공개되었다. 그리고 북한은 무인기 개발 성공을 주장하며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다. 현재 하마스는 북한의 이 전술을 .. 더보기 강화도 지리적 특징 : 수도천도 배경 강화도의 지리적 특징강화도는 서울의 서쪽에 위치하고 한국에서 제주도, 거제도, 진도 다음으로 4번째로 큰 섬이다. 또한 강화도는 곡창지역으로 강화, 교동지역의 쌀이 유명하다. 예부터 강화도를 금성탕지라 불렸다. 쇠금 처럼 단단한 성 : 금성, 탕지=끓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연못이 주변에 해자가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끓는 못에 들러싸인 무쇠성 ' 처럼 견고한 곳이라는 뜻으로 방어하기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4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다. 경작이 가능한 비옥한 땅이 있다. 겨울에는 얼음이 얼어(유빙) 접근이 어렵다. 갯벌 또한 자연 방어선이 되어준다. 5바다에 있어 강한 조류까지.. 최적의 요새로 임진왜란 때도 왜군을 막아냈고 정묘호란때도 인조의 피신처가 되었던 곳이다. 그러나 병자호란때 강화.. 더보기 정묘호란 : 조선인이 후금에 요청했다. !! 홍타이지는 1626년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후금의 왕 칸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러나 왕이 되었지만 형제들의 힘은 여전히 막강했다. 결국 형제들과 공동으로 나라를 통치해야만 했다. 당시 홍타이지는 이런 상황이 못마땅했고 업적을 쌓은 후 형제들의 힘을 빼앗을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아버지의 숙원인 명나라 정벌을 하고 싶었지만 만리정성의 산해관에 가로막혀 녹록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때 홍타이지의 눈에 들어온 것이 조선이었다. 명나라의 장수 모문룡이 조선 가도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수군이 없는 후금에게는 불안한 존재였다. 만약 명과의 전투 상황에 후방에서 공격하면 포위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황에서 가도에 있는 명나라 장수 모문룡 군대를 토벌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더보기 병자호란 홍타이지 청이 조선 침략 이유 : 인조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이유 (이전글) 정묘호란 : 조선인이 후금에 요청했다. !! 홍타이지가 조선을 침략한 이유 조선에서 가장 치욕적이고 가슴 아팠던 사건 병자호란(1636년 12월) 이다. 청이 조선을 침략한 이유는 명을 공격해 중원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청나라의 문제는 인가 적다는 것이다. 조선이 뒤를 공격하게 되면 위험해지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전에 조선을 포섭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때 조선은 명나라에 사대하는 나라였다.이유는 1592년 임진왜란때 명나라가 도와줬기 때문이고 조선시대는 위계질서를 중시했기 때문에 명나라를 공격하면 국가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이고 인조는 광해군을 쫓아내고 왕이 된 임금인데 이때 광해군을 쫓아낸 명분이 광해군의 폐모를 명분으로 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을 공격하면 반정의 명분과도 .. 더보기 인조는 어떤 인물 ? 드라마 연인 속 인조는 두 차례의 전쟁으로 무기력했던 왕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14년전 인조는 반정을 일으킨 상남로 창덕궁의 돈화문을 부수고 궁으로 들어가 인조반정(1623)을 일으킨 인물이다. 인조와 광해군의 관계는 삼촌과 조카 관계였다. 선조에게는 아들이 많았다. 그 중에 한 사람이 광해였고 인빈김씨 3째 아들 정원군의 첫째 아들이 훗날 인조이다. 광해가 세자일때 인목왕후에게 적통 영창대군이 태어나게 되고 이때문에 불안하게 된 광해였다. 광해는 적장자 콤플렉스도 있었다. 또한 아버지와 동생을 광해에게 잃어버린 인조는 서인세력과 함께 반정을 일으켜 왕이 된다. 그러나 왕이 된 이후 인조는 3번의 몽진을 하게 된다. 이괄의 난 (1624) , 정묘호란(1627), 병자호란(1636)이다. 자세히 보기 인.. 더보기 병자호란 이후 정축화약 내용 정축화약(丁丑和約):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굴욕적인 조약정축화약은 1637년(인조 15년), 병자호란에서 조선이 청나라에 항복하면서 맺은 굴욕적인 조약이다. 이 조약은 조선이 청나라의 속국이 되었음을 명시하고, 이후 조선의 대외 관계와 국내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 정축화약의 배경병자호란은 1627년의 정묘호란 이후 청나라(당시 후금)가 국호를 바꾸고 다시 조선을 침략한 전쟁이다. 친명(親明) 정책을 고수하던 인조가 청의 요구를 거절하면서 전쟁이 발발했다. 청나라는 빠른 속도로 한양을 점령했고,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여 47일간 항전했지만, 식량 부족과 강화도 함락 등의 악재가 겹쳐 결국 항복하게 되었다. 이 항복 과정에서 청 태종 홍타이지는 인조에게 일방적이고 굴욕적인 항복 조건을 제시했.. 더보기 드라마 연인 속 주화파 VS 척화파 논쟁 , 광교산 전투 , 그리고 ... 주화파 대표적 인물 최명길이 있다. 척화파의 대표 인물 김상헌이 있다. 인조 옆에 주화파의 특징은 실무가 중요한 현실주의자들이었고 청과의 전쟁을 막아 현실적 피해를 줄이는데 주력하고자 했던 세력이었다. 반편 척화파의 특징은 명분이 중요한 원리주의자 세력으로 조선의 입장에서 어떤 게 정의고 합리적인 건지 고려했던 세력이었다. 당시는 국제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수 없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라의 존망과 직결된 문제를 두 세력모두 쉽게 결정할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는 사이 왕을 지키기 위해 남한산성으로 오던 근왕군들은 패배를 이어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혹한기까지 이어져 줄줄이 병사들은 병들고 얼어 죽어갔다. 광교산 전투 그러나 모든 전투에서 패한것은 아니다. 병자호란 속에 손에 꼽는 대승 광교산 전투.. 더보기 이전 1 ··· 49 50 51 52 53 54 55 ··· 7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