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실비집과 다찌집의 차이는 무엇? 실비집과 다찌집은 한국의 전통적이면서도 독특한 술 문화 공간으로, 특히 최근에는 SNS와 젊은 세대 사이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다. 비슷해 보이지만 운영 방식과 분위기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어 이 둘을 구분해서 이해하면 더욱 재미있다. 두 용어 모두 주로 한국의 전통적인 술집(포차) 문화에서 파생된 것이며, 각각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실비집의 유래와 역사어원: "실비(實費)"는 '실제 비용'을 의미하며, 음식을 원가 수준으로 제공하는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역사적 배경: 금주령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술집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 이후 술집은 생겼지만 음식을 따로 판다는 관념은 없었고 술은 팔 되 음식은 함께 나오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런 흔적이 마산, 통영, 전주등에 옛날의 흔적이 남아 있었던 .. 더보기 전라도 음식 맛있는 이유, 경상도 음식 맛 없는 이유 한국 내부에서도 전라도 음식과 경상도 음식에 대한 은근한 경쟁심이 있다. 전라도 음식은 정말 혀가 춤출 정도로 맛있다고들 하고, 경상도 음식은 그에 비해 맛이 단순하다고도 하는데, 왜 그런것 인가? 전라도 음식 조선 후기(약 1700~1800년대)에 전라도 지역은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농산물로 유명했다. 특히 전주를 비롯한 전라도 지역은 쌀 생산지로 번영했고, 신선한 채소, 해산물, 각종 재료들을 언제든 구할 수 있었다. 이런 풍부한 재료 덕분에 전라도 음식은 복잡하고 다채로운 맛을 가꾸었고, 비빔밥처럼 화려한 요리도 탄생했다. 반찬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한 상 차리면 끝이 없다. 경상도 음식 반면 경상도 지역은 지형이 산악 지대가 많고 농사가 비교적 힘들었기 때문에 잡곡류를 많이 썻고 음식.. 더보기 한우가 맛있는 이유 , 설농탕, 설렁탕 이름 유래 1924년 당시 설렁탕 가격은 7전~12전으로 서울에만 대략 100개 이상으로 서울에만 유독많았다. 설렁탕은 서울음식이라고 볼수 있다. 당시 30원으로 250 그릇을 살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들어와 소를 많이 키웠는데 일본은 군화, 허리띠, 비행사 조종복 등 소의 가죽이 많이 필요했던 상황이었다. 군수물자로 소가죽을 사용하기 위해 소를 대량 사육했고 소의 고기를 이용한 음식들이 늘어나게 되던 시기이다. 1930년대 이때는 소고기 가격이 돼지고기보다 저렴했던 적도 있다. 설렁탕 이름 유래 설렁탕은 선농탕, 설농탕 등 다양하게 불렸다. 선농당이라고 해서 임금이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던 곳을 선농단이라고 불렀는데 이때 소를 잡아 함께 끓여 먹었다. 그래서 설렁탕은 선농단->설농탕->설렁탕 으로.. 더보기 제주도에 생선국이 발달한 이유 : 전갱이 국 = 각제기 국 , 멜국 전갱이국=각제기국제주도에는 각재기국이라는 전갱이 국이 있다. 전갱이는 등푸른 생선으로 비린내가 심하나 기름지지 않고 담백한 맛을 낸다. 원래 등푸른 생선으로 국을 잘 끓이지 않지만 제주도는 유난히 이런게 많다. 제주의 자연환경때문에 생선국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전갱이로 국을 끓여 먹는 제주도는 쌀을 재배할 논이 적은데 화산섬이라 물빠짐이 좋아 논을 만들기 힘든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는 쌀 대신 잡곡을 주식으로 섭취했다. 거친 잡곡밥을 쉽게 먹기 위해 국이 필요했다. 그래서 전갱이국도 맑은 국물에 후루룩 들이킬 수 있도록 담백하게 끓인 것이 특징이다. 멜국제주도의 또다른 생선국 멜국이 있다. 멜은 멸치 중에서도 크고 두꺼운 어종으로 추사 김정희가 제주에서 멜국을 즐겨먹었다고 한다. 더보기 이순신 밥상: 이순신은 무엇을 먹었나? 과하주, 청어 이순신 밥상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전쟁 중 먹었던 소박한 식사에서 영감을 받은 음식 문화를 뜻한다. 이순신 장군의 삶과 정신을 기리며, 전쟁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병사들과 나눠 먹었던 검소하고 영양을 고려한 음식의 의미를 담고 있다. 난중일기에 술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많이 나온다. 술을 먹었던 이유는 병사들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이를 통해 병사들의 단합을 도모하는 전투력을 향상시키는 도구였다. 또한 이순신은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을때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한다. 당시 조.명 연합군이 형성되었는데 선조는 명의 도움을 받아 일본을 몰아내려했다. 그러나 명나라 군사들은 조선에 들어와 백성들을 괴롭혔고 이에 임금에 고하였더니 선조는 명과 합심하여 일본을 물리치라는 소리만 했기에 이순신은 속상한 마음을 .. 더보기 1987년 kal 기 대한항공 폭파 사건 범인 김현희 근황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은 1987년 11월 29일, 북한 공작원에 의해 대한항공 여객기가 공중 폭파된 테러 사건이다. 이로 인해 탑승자 115명 전원이 사망하였다. 비행기가 미얀마 인근 바다 위에서 폭파되어 폭파 잔해 수색이 불가능했다. ◇ 사건의 배경1980년대 후반,한국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 대한민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준비 중이었으며, 이를 방해하려는 북한의 의도가 있었다. 북한은 남한의 국제적 위상을 저해하고자 다양한 테러 활동을 계획하였으며, 그 일환으로 대한항공 858편에 대한 폭파를 지시하였다. ◇ 사건의 전개비행 경로: 대한항공 858편은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출발하여 아부다비와 방콕을 경유한 후 서울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사건 당일, 항공기는 바그다드에서.. 더보기 칭기스칸의 무덤: 유라시아 고고학 최대의 미스터리 칭기스칸(Genghis Khan)의 무덤은 유라시아 고고학에서 가장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로, 전 세계 고고학자들이 발굴하고 싶어하는 1순위 유적이다. 현재까지 그의 무덤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정확한 위치조차 알 수 없다. 이는 칭기스칸의 명령에 따라 의도적으로 무덤이 숨겨졌기 때문이다.왜 칭기스칸의 무덤은 숨겨졌을까?기록에 따른 유언칭기스칸은 1227년 사망하면서 "조용히 묻어달라. 누구도 찾지 못하게 하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당시 장례 행렬이 지나간 자리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심지어 그 과정을 목격한 사람들도 처형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2. 유목 민족의 전통유목민족인 몽골인들에게 중심지는 조상의 무덤이었다. 이는 이동 생활을 하는 유목민들에게 고정된 성이나 도시보다 조상과 연결된 장소가 더 큰 .. 더보기 실크로드의 숨겨진 시작, 초원길=초원로드 이야기 초원 길이 실크로드보다 먼저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역사의 흥미로운 부분이다. 흔히 실크로드를 떠올리면 사막을 가로지르는 험난한 무역로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더 편리한 초원 길이 먼저 동서양을 이어주었다. 그런데 왜 더 쉽고 빠른 초원을 두고 사막을 개척했을까? 그 답은 당시의 국제 정세와 중국이 처했던 정치적 상황에서 비롯된다. 초원 길과 흉노 제국실크로드보다 먼저 존재했던 초원 로드는 유라시아 초원을 가로질러 동서양을 연결하는 자연스러운 경로였다. 이 길은 평탄하고 이동이 용이하며, 초원에는 유목민들의 마을과 가축이 많아 식량과 물을 구하기도 쉬웠다. 그런데 문제는 흉노 제국이었다. 기원전 3세기부터 흉노는 초원 지역을 중심으로 강력한 유목 제국을 형성했고, 이들은 중국 한나라와 끊임없이 충돌했다. 흉.. 더보기 게국지 유래 : 게국지와 꽃게탕 김치찌개 차이점 게국지란? "게국지"라는 이름은 "게"와 "국지"라는 두 단어에서 왔다. 여기서 "게"는 바다 게를 의미하고, "국지"는 김치찌개를 뜻하는 충청도 방언이다. 게국지는 충청남도 서해안 지역에서 발달한 음식으로 옛날 서산 지역에서 겨울을 나고 봄철 김치가 떨어질 봄동과 무, 무청 등에 겨울을 나고 남은 게장 국물이나 젓갈 국물을 넣어 만든 일종의 김치를 만든다. 이렇게 만든 김치는 시원한 맛이 나지만 그대로 먹기에는 약간 에매한 맛이 나서 그 김치를 이용해 찌개를 끓여먹는 것이 게국지이다. 게국지의 유래게국지는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바닷가 지역에서 생활하던 충청남도 사람들의 지혜로운 식문화에서 유래되었다. 과거에는 김장철에 배추를 절이면서 나온 김치 국물이나 양념을 활용해 음식으.. 더보기 국밥 토렴이 사라진 이유: 밥과 국이 따로 나온 계기 옛날에 국밥집에 가면 밥과 국이 같이 한그릇에 나왔다. 그래야 밥에 국물 맛이 충분히 배어들어간다고 여겼기때문이다. 그래서 오래되고 맛있다는 국밥집은 대부분 토렴을 해서 준다. 옛날는 모두 밥에 국을 말아서 한그릇에 줬는데 밥과 국이 따로 나오는 결정적 계기는 1970년 중반쯤에 스테인리스 공깃밥의 등장때문이다.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뚜껑이 있는 공기밥으로 인해 따뜻하게 보관이 가능해지면서 따로 국밥이 외식업계에 퍼진 것이다. 설렁탕집등 국밥집에서 본격적으로 밥과 국을 따로 내기 시작한 것은 정부가 진행한 절미운동과 관련이 있다. 절미운동이란 쌀이 귀하던 시절 쌀 소비를 억제하고 혼분식을 장려했던 정부 주도 운동으로 이때 식당에서 지켜야 할 밥그릇 크기를 규정하는 밥그릇 규격화 정책으로 이것을 .. 더보기 이전 1 ··· 5 6 7 8 9 10 11 ··· 6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