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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수궁터 역사 ( 구본관 터 ) 현재의 개방된 청와대 부지는 과거 수궁터가 있던 곳으로 한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로 조선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역사적 변천을 겪어 왔다. 청와대 수궁터는 조선 시대의 왕실 별궁에서 시작하여, 일제강점기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적 변천을 거친 장소이다. 이곳은 한국의 역사적 사건들과 문화적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장소로, 청와대의 복합적인 역사와 문화적 의미는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조선 시대의 수궁터수궁터는 조선시대 왕실의 별궁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조선 왕조(1392-1910) 초기에 왕실의 사냥터로 사용되기 시작하다가 이후 왕의 휴식처인 별궁을 지었다. 수궁(守宮)은 말 그대로 '물고기들이 사는 궁궐'이라는 뜻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 더보기
샤를 드골 업적 , 존경받는 이유 : 프랑스 해방을 위한 레지스탕스 활동 144-4 [이전글] 저항의 상징 : 프랑스 레지스탕스 탄생 배경 144-3  제 2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이 프랑스 전역을 점령하게 되자 레지스탕스 활동이 들불처럼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때 해외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활발히 전개한 인물 샤를 드골이 있다.    샤를 드골은 2차 세계대전 이전에 프랑스에서 국방부 차관까지 지낸 인물로 페팅이 나치 독일에 휴전 협정을 제안하자 영국으로 건너가 다음 날 영국 라디오 방송을 통해 프랑스인들에게 끝까지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 이를 계기로 사형 선고를 받고 프랑스로 돌아오지 못한 샤를 드골은 영국에 머물수 밖에 없었다.   샤를 드골의 업적 자유 프랑스 창설 샤를 드골이 영국에 해외 레지스탕스 본부 자유 프랑스를 만들고 자유 프랑스의 상징인 기발을 만들었다.  됭케르크 철수 .. 더보기
포클랜드 전쟁 포클랜드는 영국에서 13,000 km 떨어진 곳, 남극 근처에 위치한 나라로 19세기부터 영국이 포클랜드 제도를 지배하고 있었다.   1970년 말과 1980년대 영국은 경제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고 이에 국방비를 삭감하게 된다. 국방비의 예산 삭감으로 포클랜드 제도를 순찰하는 영국 순찰선이 철수하기 된다.  이에 아르헨티나 정부는 영국이 포클랜드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는 것이라 해석을 하고 이 사건을 아르헨티나의 어지러운 국내 상황을 타개할 방법으로 삼은 것이다.  포클랜드 제도 포클랜드 제도는 영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남극과 가까와 펭귄이 많이 사는 곳으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곳이다.   아르헨티나 상황당시 아르헨티나는 레오폴드 갈티에리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상태로 1981년 12.. 더보기
독일 프랑스에 콩피에뉴 협정, 베르사유 조약 복수하다. 144-2 [이전글] 마지노선 , 낫질작전 : 제 2차 세계대전 프랑스가 독일에게 점령당한 이유 144-1  제 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는 나치 독일에게 단 6일만에 점령당한 후 굴욕적인 협정 조약을 맺게 된다. 당시 프랑스 총리는 국가적 피해를 줄이려면 휴전 협정이 실리적이라고 판단했고 불과 6주 만에 나치 독일에 사실상 항복선언과 같은 휴전협정을 제한한다. 당시 총리는 필리프 페탱으로 1차 세계대전때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군 총사령관이었는데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으로 프랑스인들의 절대적 신뢰를 얻고 있었다.    히틀러의 휴전 협정 조건 또한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이미 겪어 봤던 대다수의 프랑스인들도 이를 지지했고 받아들였다. 총리 페탱의 제안에 히틀러는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1.. 더보기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는 이유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은 사실 독일이 라인강의 기적을 표절한 것이다.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을 하고 황폐한 도시에서 강대국으로 발돋움을 한 것이다. 이에 우리나라도 독일과 같이 6.25 전쟁 이후 라인강의 기적을 따라 한강의 기적을 이뤄보자고 한 것이다.   그러나 독일은 원래 강대국이였고 한국은 식민지였기에 출발 자체가 달랐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우리나라는 최빈국이었다. 한국전쟁 직후 남한 1인당 국민총소득은 67달러 (1년간 총소득 한화 약 8만 7천원)였다. 현재는 38,000 달러이다. 70년만에 이뤄낸 엄청난 경제성장인 것이다. 피식민지에서 선진국 반열로 일어난 국가는 전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한국전쟁 직후 북한이 더 잘살았다?  한국전쟁 직후는 북한이 더 잘살았다.  일제.. 더보기
저항의 상징 : 프랑스 레지스탕스 탄생 배경 144-3 1939년 독일의 히틀러는 1939년 9월 폴란드 침공으로 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1940년 4월 덴마크와 노르웨이 침공, 5월에는 네덜란드, 룩셈부르크까지 침공하며  희생자만 약 7000만 명을 낳는다.  이때 프랑스는 히틀러에 의해 단 6주 만에 무너지며 유럽에 충격을 안겨준다.   레지스탕스 등장 제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의 프랑스 점령은 자유, 인권, 풍요로움의 나라였던 프랑스의 자부심은 무참히 짓밟히게 된다.  나치 독일군이 프랑스를 점령한 1940년 말 자크 봉세르장이 나치 독일군과 몸싸움이 벌어졌는데 이 일로 체포되어 교도소에 수감된 그는 사형 선고를 받고 총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후로도 프랑스인을 향한 탄압은 점점 심해지게 된다.  프랑스 역사상 최악의 수모를 당하던 이때 프.. 더보기
마지노선 , 낫질작전 : 제 2차 세계대전 프랑스가 독일에게 점령당한 이유 144-1 프랑스가 방심한 이유  1. 마지노선 제 2차 대전 히틀러는 프랑스 침공당시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아르덴 숲을 지나 침공했다.  프랑스는 마지노선을 지나 올것이라고 생각해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었다. 마지노선은 철통방어를 자랑하는 요새였고 프랑스가 나치 독일과 전쟁에 대비하여 프랑스 독일 국경에 설치한 대규모 요새 지대이다.   마지노선은 당시 프랑스 전쟁부 장관인 앙드레 마지노의 이름에서 유래된 용어로 제 1차 세계 대전에서 약 130만 명의 전사자가 나온 프랑스는 다시 전쟁이 발생했을때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비했던 것이다.    당시 돈 약 160억 프랑 한화로 약 3조 5000억 원을 들여 독일과 마주보는 국경지대에 350km 에 달하는 대규모 요새지대 마지노선을 건설했다.   마지노선 내부에.. 더보기
프랑스 아르덴 어떤 곳? 아르덴은 벨기에, 룩셈부르크 3국에 걸쳐있는 산악지역이다. 울창한 숲을 자랑하며 다양한 동식물이 생태계를 이루는 곳이다. 아르덴은 험준하기로 소문이 나있던 곳이고 히틀러가 프랑스를 공격하기 위해 선택한 곳이 바로 아르덴이다.    아르덴 숲은 8, 9세기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부터 제 1차, 2차 세계대전 당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한 유럽의 격전지였다. 이곳을 지나가야하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제 2차 세계 대전 프랑스 공격의 시발점 아르덴   아르덴은 험준하기로 악명높은 산악시대로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차있어 당시 병력이 이동할 장소로 접합하지 않았던 장소였다. 그래서 프랑스는 나치 독일군이 아르덴으로 침공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아르덴에서 빠질수 없는 투어가 삼페인 하우스 투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