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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경종의 묘, 의릉과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의릉(懿陵)**은 조선 제20대 왕 **경종(景宗, 1688~1724)**과 그의 왕비 **선의왕후(宣懿王后)**의 무덤이다. 경종은 숙종의 맏아들이었지만, 그의 생애는 권력 투쟁과 정치적 음모로 점철되어 있었다. 특히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독살설로 이어졌으며, 이로 인해 의릉은 단순한 왕릉이 아니라 조선 후기의 미스터리를 간직한 공간으로 남게 되었다.  1. 의릉의 조성과 숨겨진 이야기경종이 승하한 후 왕릉의 위치를 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논란이 있었다. 원래 서대문구 안산(鞍山) 근처가 후보지였지만, 풍수적으로 흉하다는 이유로 성북구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의릉이 조성된 후에도 관리들이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리거나 사망하는 일이 자주 발생해 불길한 기운이 서린 곳이라.. 더보기
경종 독살설 : 게장과 감 조선 역사에서 가장 미스터리한 사건 중 하나는 1724년 8월 25일, 20대 왕 경종의 갑작스러운 사망이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독살설은 당시 궁궐과 민중 사이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특히 이복동생인 영조가 독살의 배후로 지목되면서 조선 왕조의 정치적 긴장과 음모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아 있다. ☞경종 가계도와 신임사화 이야기 먼저 보기 경종의 건강 상태와 사망 전후의 상황 경종은 재위 기간 동안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724년 7월부터 그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으며, 수라상을 제대로 받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약물에 의존하게 되었고, 8월 20일에는 수라상에 오른 게장과 생감을 맛있게 먹은 후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당시 민간에서는 게와 감이 상극.. 더보기
영조 가계도 : 조선 시대 최장기간 재위, 21대 왕 영조의 가계는 정실부인에게서 자식이 없었고, 후궁들에게서 얻은 자녀들도 극심한 차별 속에서 성장하였다. 특히 사도세자의 죽음은 조선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남아 있으며, 이후 그의 아들 정조가 즉위하면서 새로운 정치 개혁이 시작되었다. 영조의 가계도는 조선 왕실의 복잡한 권력 구조와 왕실 내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가족 관계를 살펴보면, 개인적인 감정이 정치적 선택과 결정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조선 시대 최장기간 재위 왕 영조   재위 기간이 52년인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왕이고 검소한 생활 습관에 채식으로 수명도 82세였다. 우리나라 단군이래 두 번째로 오래 산 왕이 영조였다. 첫 번째 고구려 시대의 최장수 (만 98세.. 더보기
태종 이방원과 살곶이 다리, 피로 얼룩진 권력의 흔적 서울 성북구와 동대문구를 잇는 **살곶이 다리(箭串橋)**는 단순한 석교가 아니다. 이곳에는 조선 초 가장 강력한 왕으로 평가받는 태종 이방원과 관련된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살곶이 다리는 단순한 교통로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태종의 피로 얼룩진 권력 투쟁, 숙청, 그리고 왕권 강화의 역사까지 녹아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과연 태종과 살곶이 다리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살곶이 다리,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서울 성동구와 동대문구를 잇는 살곶이 다리는 조선의 자존심이다. 중랑천을 가로지르는 이 웅장한 돌다리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살곶이 다리보다jangane.tistory.com 태종의 사냥터, 살곶이태종은 어릴 때부터 무예에 능했고, 활쏘기를 .. 더보기
조사의의 난 : 조선 태종 시기 마지막 고려 부흥 운동 조선이 건국된 후에도 고려 왕조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조선의 3대 왕 **태종 이방원(太宗 李芳遠, 재위 1400~1418)**이 왕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402년(태종 2년), 고려 왕조를 부활시키려는 세력이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조사의의 난"**이다. 이 반란은 조선 건국 이후 고려 왕조의 잔존 세력들이 마지막으로 저항했던 사건 중 하나로, 태종의 왕권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조사의는 누구이며, 이 반란은 어떻게 일어났고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1. 조사의는 누구였을까?**조사의(趙思義)**는 고려 말의 무신(武臣, 무관)으로, 고려 왕조를 끝까지 지지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진 후에도 새로운 왕조를 받.. 더보기
초밥 기원 역사와 오마카세 뜻 초밥은 700년대 일본의 발효 음식에서 시작되어, 현재는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고급 요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초밥은 단순한 생선 보존 방법에서 미식의 예술로 진화해왔습니다. 특히 2003년 한국에 도입된 오마카세 문화는 셰프의 전문성과 초밥의 정교함을 극대화한 형태로, 초밥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오늘은 초밥의 기원, 변화, 지역적 특징, 그리고 오마카세의 의미와 가치까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이자카야(일식주점) 메뉴 이름 뜻, 재료 : 오코노미야키, 덴뿌라 아게 차이점 , 규동, 차슈동, 돈 megakorea365.wissue.net  1. 초밥 기원: 700년대 일본의 발효 음식초밥의 시작은 일본 나라 시대(7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초밥은 생선의 장기 보존.. 더보기
호주에는 스타벅스가 없다? 스타벅스 실패 사례 스타벅스는 1971년 미국 시애틀에서 시작해 글로벌 커피 시장을 장악한 브랜드이다. 그러나 호주라는 거대한 커피 시장에서 큰 실패를 경험했으며, 이는 단순한 사업 실패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스타벅스의 실패는 호주의 커피 문화와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의 충돌을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아래에서 이 문제를 좀 더 깊이 파헤쳐 보겠다. 1. 스타벅스의 진출과 초기 전략스타벅스는 2000년 시드니에 첫 매장을 열었다. 미국, 유럽, 아시아에서 성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호주에서도 빠른 확장을 계획했다. 이들은 단 8년 만에 87개의 매장을 개설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맞물려 66개의 매장을 폐쇄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스타벅스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호주에서의 사업은 거의 중단 상태로 들어갔.. 더보기
제주 흑돼지 똥돼지 이야기 (오겹살과 삼겹살의 차이는?) 흔희 제주도 특산 흑돼지를 똥돼지라고도 부른다. 제주 흑돼지는 제주도의 자연과 음식문화 풍습과 깊은 관련이 있다. 흑돼지는 오래전부터 제주도에서 길러온 토종돼지로 2015년 3월 천연 기념물 550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1986년 우도에서 토종, 흑대지와 유사한 수컷 1마리와 암컷 4마리를 찾아서 수컷에 김문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김문의 후손 260여 마리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것이다. 100% 순종은 아니지만 토종 흑돼지와 가장 유사한 종이다.    ▣ 제주 흑돼지와 똥돼지 역사과거 제주도는 바다로 둘러싸인 고립된 섬이었기 때문에 육지에서 흔히 먹던 소나 돼지 고기를 자주 공급받기 어려웠다. 돼지는 사람이 먹는 음식을 먹기 때문에 곡물이 넉넉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돼지를 키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제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