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orean History/@ Here

창덕궁 이야기

1997년 12월 창덕궁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다. 서울 5대 궁궐 중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고 볼수 있다.  창덕궁 후원은 주변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조선의 왕들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궁이지만 현재의 창덕궁은 동궐도와 비교해 보면 옛 모습의 20% 정도이다. 

 

 

 

1395년 경복궁이 가장 먼저 세워지고 태종때 창덕궁이 만들어진다. 성종때는 왕실에 대비들이 많아서 대비들을 모시기 위해 창경궁을 만들었다. 임진왜란 이후에 선조가 갔다왔다는데 3개의 궁궐이 모두 소실되어 임시로 정릉동 행궁에 모셨는데 이것이 궁궐로 발전하면서 경운궁이 되었다. 나중에 고종 황제가 이곳에 계속 거처하면서 덕수궁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마지막으로 광해군이 새로운 궁궐을 짓고 싶어했고 그렇게 해서 지은 궁이 경덕궁인데 영조때 경희궁으로 이름이 바뀌게 된다.  

 

창덕궁을 지은 이유 

조선의 개국과 함께 조선왕조 최초의 궁궐인 경복궁이 세워진다. 그러나 왕위 계승권을 둘러싸고 이방원과 이복형제들사이에 2차례 왕자의 난이 일어나고 경복궁은 피로 물들게 된다. 이후 왕좌에 오른 이방원은 경복궁을 두고 새로운 궁을 지을 것을 명했다. 경복궁에서 이복형제를 죽였던 태종이기에 그것을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창덕궁을 만든 이유는?

 

창덕궁을 만든 이유는?

조선의 법궁은 경복궁이다. 그래서 왕이 가장 오래 머물러 있는 궁을 생각하면 경복궁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으나 실제로 경복궁이 아니라 창덕궁이다. 궁궐의 역사를 보면 경복궁은 약 225 년이

myvoice.wissue.net

 

이후 경복궁 경회루, 성균관 문묘, 청계천 공 등을 건축한 고려 말 평민 출신의 박자청에게 창덕궁 인정전을 짓게 하고 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공조판서까지 올라간다. 박자청은 태종의 묘 헌릉 공사를 끝낸후 그 이듬해에 생애를 마친다. 

 

인정문 앞 왕의 즉위식 

실제로는 인정전 앞이 아닌 인정문 앞에 이루어졌다. 조선시대 대부분의 즉위식은 선왕의 장례 기간 중에 즉위식이 치러진다. 그래서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즉위식이 그렇게 화려하지 않았고 인정문 앞에서 간단히 치뤄졌었다. 연산군이 인정문에서 즉위식을 올린 최초의 왕으로 효종, 현종, 숙종, 영조등 총 8분의 왕이 인정문 앞에서 즉위식을 했다. 

 

 

 

인정전 

 

인정전은 일제 강점기에 순종황제가 오면서 내부시설을 일본의 내정간섭으로 개조했다. 앞에 박석을 다 걷어내고 잔디밭을 만들었고 인정전 내부를 접견소로 바꿔 샹들리에를 설치했으며 창문에 유리를 달고 커튼을 설치했다. 

 

인정전

 

인정전 용마루 오얏꽃 문양

 

인정전 용마루에 오얏꽃은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것이다. 1907년 고종황제는 이준 열사를 헤이그 특사로 파견해 만국평화회의에서 일제의 강압통치를 고발하려했으나 실패로 돌아가고 일제는 이일로 고종 황제를 강제 폐위시킨다. 그리고 순종을 강제로 즉위시켰다. 순종은 창덕궁에서 즉위식 후 머물고 고종은 덕수궁에서 지낸다. 1909년 일제에 의해 창덕궁은 근대식 알현소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인정전 안 전돌이 깔려있던 것을 마루로 바꿔버렸다. 

창덕궁 건물들

선정전 청기와 

5대 궁궐 중 창덕궁 내 선정전이 유일한 청기와이다.  광해군때 창덕궁을 재건하면서 사직단 옆 배화여고 자리에 호화로운 궁궐 인경궁을 지으려했으나 실패하고 그 자재로 창덕궁 선정전에 청기와를 얹도록 명한다. 광해군은 왕의 집무실인 편전 선정전을 화려하게 꾸미고 싶었다. 

 

선정전

 

역사 속에서 두번의 반정이 일어나는데 중종반정, 인조반정 두번 모두 창덕궁에서 일어난다.  왕의 집무실 선정전에서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쫓겨나고(인조반정)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가 쫓겨난 곳(중종반정)도 창덕궁 선정전이었다. 

 

↓인조반정->이괄의 난->정묘호란

 

인조반정->이괄의 난->정묘호란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30회 후반] 오늘의 탐사지: 창의문-남한산성 주제: 인조반정, 정묘호란 출연자: 김강훈 인조반정이 일어난 이유 인조반정의 시작은 광해군의 아버지 선조에서 시작된다

jangane.tistory.com

 

↓ 무오, 갑자사화 -중종반정 이야기 

 

연산군 사랑받지 못한 군주는 얼마나 위험한가?

[선을 넘는 녀석들 마스터 1,2회] 연산군의 아버지 조선의 9대 임금 성종은 3명의 왕비, 10명의 후궁이 있었고 자녀가 총 29명이었다. 그중에 첫째 아들이 이융, 바로 연산군으로 조선의 제10대 왕이

jangane.tistory.com

 

희정당 

처음에는 임금의 서재였던 곳이 대한제국 이후 접견실로 사용되었다. 1917년 대조전과 희정당이 화재로 소실되는데 이것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 아니라 경복궁의 교태전 건물을 옮겨와서 대조전이 되고, 강녕전 건물 자재를 가져와 희정당을 만들었다.  그래서 희정당 옆에 '강' 자와 , '녕' 자가 있다.  

 

희정당 건물 
희정당 내부
희정당 내 벽화 왼쪽: 총석정 절경도, 오른쪽 금강산만물초승경 (당시 최고 화가 김규진 작품)

 

순종황제가 당시 자동차를 탔는데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가구도 현대식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는데 유럽에서 수입한 것들이다. 

 

창덕궁 대조전 

창덕궁의 대조전은 중전이 머물던 곳으로 장희빈은 궁녀에서 후궁으로 다시 왕비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로 대조전 앞에서 사약을 받은 요부이야기가 있다.  후궁이 대조전에 중궁전에 오를 수 없는데 장희빈 사태가 일어난 이후 숙종은 후궁은 왕비가 될수 없게 법으로 금지시켰다. 

 

↓ 경신환국-기사환국- 갑술환국(숙종과 장희빈)

 

경신환국-기사환국- 갑술환국(숙종과 장희빈)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33회] 오늘의 탐사지: 창덕궁 주제: 숙종과 장희빈 그리고 환국 숙종 그는 누구인가? 조선시대는 정실부인의 첫 번째 아들 적장자는 왕실의 금수저로 조선시대 적장자

jangane.tistory.com

 

대조전에는 용마루가 없고 원래는 왕비의 침전이었고 희정당이라는 왕의 침전이 있었는데 후대에 오면서 국왕과 왕비의 침전이 된다. 서쪽에는 왕비의 침실이 있고 동쪽에는 왕의 침실이다. 기본적으로 각방이다. 왕비의 침실에는 가구나 물건들이 있으나 왕의 침소에는 기물이 거의 없다. 어떤 물건이든 왕에게 살해의 도구가 될수 있기 때문이다. 

 

 

국왕의 침실을 둘러싸고 좁게 작은 공간이 있고 그곳에 나인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조선 후기 왕들이 정비 소생의 자식들이 별로 없는 이유가 이것일 수도 있다는 추측이 있다. 순종은 1926년 대조전에서 승하한다.  순종 이후 대조전은 서양식으로 바뀐다.  대조전 내에 이발소도 있었다. 

 

대조전 뒤뜰 

왕과 후궁이 데이트를 했던 장소는 후원이다. 그러나 구중궁궐 속 제한된 삶을 살아야 했던 왕비들이었다. 그래서 대조전 뒤편에는 꽃과 나무를 심어 아기자기하게 정원을 만들어 놓았다. 

 

 

 

흥복헌 

대조전 옆에 흥복헌이 있는데 기쁘고 복이 들어오는 집이라는 뜻으로 1910년 조선왕조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던 장소이다. 이곳에서 한일합방이 결정된 장소이다.  

 

창덕궁 내 화장실

창덕궁 내 21곳이 화장실이 있었는데 현재는 오직 한곳만 있다. 왕은 이동식 매화틀 화장실을 사용했고 왕의 뒤를 닦아주는 상궁이 따로 있었고 왕이 용변 후 그것은 내의원으로 옮겨져 왕의 건강상태를 체크했다.  

 

창덕궁 후원 

 

▼창덕궁 후원 규장각 속 정조 이야기

 

정조 가계도 및 창덕궁 후원 규장각 속 정조 이야기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37회] 오늘의 탐사지: 창덕궁 후원 주제: 정조 이야기 정조는 백성을 사랑한 임금이자 조선 제 21대 왕 영조의 손자이며 비극의 왕세자 사도세자의 아들로 아버지의 죽

jangane.tistory.com

 

 

낙선재 

창덕궁에 단청이 칠해지지 않는 건물 낙선재가 있다. 이곳은 너무나 많은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창덕궁 낙선재 이야기

창덕궁 낙선재 낙선재는 헌종의 사랑채이자 경빈 김씨의 처소 석복헌(하늘에서 큰 복을 내려준다) 이 있는 곳이다. 또한 할머니 순헌왕후의 처소 수강재가 있다. 낙선재를 만든 이유 낙선재는

myvoice.wissue.net

 

 

궐내 각사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