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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Here

창덕궁 낙선재 이야기

창덕궁 낙선재 

낙선재는 헌종의 사랑채이자 경빈 김씨의 처소 석복헌(하늘에서 큰 복을 내려준다) 이 있는 곳이다. 또한 할머니 순헌왕후의 처소 수강재가 있다.

 

낙선재 권역
낙선재
불이나지 않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얼음이 깨진 모양을 만들어 넣었다.

 

 

낙선재를 만든 이유 

낙선재는 헌종의 헌신적인 사랑이 깃든 곳이다. 헌종 9년 효헌왕후 김씨가 16세의 나이에 눈을 감고 만다. 다음 해 새 중전을 뽑기 위해 삼간택을 하고 헌종은 전례없이 간택에 참여한다. 그때 헌종은 김씨 처녀가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대왕대비는 명헌왕후 홍씨를 선택하고 헌종은 어쩔수 없이 명헌왕후를 대비로 들인다. 하지만 헌종의 김씨에 대한 마을을 지울 수 없었고 3년이 흐른 뒤 헌종은 후사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경비 김씨를 후궁으로 맞이한다. 헌종은 경빈 김씨를 위한 보금자리로 즐거움이 오래가라는 의미에서 즐거울 낙, 착할 선  낙선재를 마련한다.  

 

정조가 수빈 박씨 사이에서 순조를 낳았는데 복을 모으는 집이라는 뜻의 집복헌이다. 이것을 벤치마킹해서 헌종도 경빈 박씨를 위해 낙선재를 만들어 줬던 것이다. 

 

담장이나 창틀, 문틀의 세밀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낙선재

 

경빈 김씨가 석복헌에서 아들을 낳았다면 조선의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경빈 김씨를 맞이한 2년 뒤 헌종은 세상을 떠난다. 경빈 김씨도 왕이 승하 후 궁궐에서 나가게 되고 77세까지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낙선재 누구 살았나? 

조선왕조가 망한 다음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데 이승만 정부는 왕손들의 귀국을 불허했다. 그러다 1962년 박정희 정권때 이왕가의 귀국을 허가하면서 영친왕부터 들어오게 된다. 헌종이 있었던 사랑채 낙선재에는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이 살다가 승하한 곳이고 그의 왕비 이방자 여사도 1989년까지 살았다. 

 

 

또한 석복헌에는 조선 제 27대 왕 순종의 비이자 조선의 마지막 왕비 순정효황후(1894~1966 ) 가 살다가 1966년 세상을 떠났다.  또한 순헌왕후의 거처 수강재에는 고종의 막내 딸 덕혜옹주가 1989년까지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이방자 여사는 아픈 덕혜옹주를 케어하고자 덕혜옹주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고 했는데 소망대로 덕혜옹주가 세상을 떠난 뒤 열흘 뒤에 이방자 여사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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