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리 전투 추모공원은 1951년 4월 22일~25일 임진강 전투(설마리 전투)에서 싸운 영국군 글로스터셔 연대의 희생과 용기를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이 전투에서 영국군은 235고지를 중심으로 3일 동안 압도적인 병력의 중공군을 저지하며 유엔군이 방어선을 재정비할 시간을 벌었다.
전투 당시 영국군 글로스터셔 연대 제1대대는 설마리 지역에서 포위된 채 끝까지 저항하다가 대부분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었다. 이들의 용맹과 희생을 기리기 위해 2014년 4월 23일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이 조성되었다.
설마리 전투 = 임진강 전투
영국군 글로스텨셔 부대는 140여 번의 전투 중에서 설마리 전투(임진강 전투, 1951년 4월 22일~25일)는 단순한 고지 쟁탈전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사건이자 한국전쟁 중 가장 치열한 공방전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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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리 지명 유래
- 설(薛): 당나라 명장 **설인귀(薛仁貴)**의 성씨에서 유래.
- 마(馬): 말(馬)을 뜻하며, 설인귀가 말을 타고 훈련했다는 전설에서 비롯됨.
- 리(里): 마을(村) 또는 지역을 의미하는 단어.
즉, **‘설인귀가 말을 타고 다니며 훈련하던 마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설마리를 '글로스터'라고 부르는 이유
설마리 전투(임진강 전투)에서 영국군 글로스터셔 연대(Gloucestershire Regiment)가 마지막까지 저항하며 싸웠기 때문에, 이 지역을 ‘글로스터(Gloster)’라고 부르게 되었다.
‘글로스터(Gloster)’는 영국 글로스터셔(Gloucestershire) 연대의 줄임말로,
- 1951년 4월 22~25일 설마리에서 영국군이 중공군에 맞서 끝까지 저항한 전투의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 전투에서 살아남은 병사들이 포로가 된 후에도 **‘우리는 글로스터셔 연대다(We are the Glosters)’**라고 외치며 부대의 명예를 지켰다.
- 이러한 용맹과 희생을 기리며, 전투가 벌어진 설마리 지역을 ‘글로스터 힐(Gloster Hill)’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 내부 조형물 설명
1) 자유, 우정, 평화를 상징하는 조형물
-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의 핵심 메시지는 **‘자유(Freedom), 우정(Friendship), 평화(Peace)’**이다.
- 이는 한국전쟁에서 함께 싸운 영국군과 한국군 간의 우정을 기리며, 평화를 염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2) 참전용사 이름이 새겨진 벽
- 임진강 전투에서 싸운 글로스터셔 연대 군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 포로가 되었다가 생환한 군인들과 전사자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어 그들의 희생을 기리는 공간이다.
3) 글로스터셔 연대 베레모
- 글로스터셔 연대는 일반적인 철모 대신 베레모를 착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부대이다.
- 베레모에는 뒤쪽에 이집트 스핑크스 모양의 연대 휘장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1801년 알렉산드리아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는 휘장이다.
- 알렉산드리아 전투에서 글로스터셔 연대는 프랑스군을 후방에서 공격하여 승리했으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후면 배지(Back Badge) 착용 전통이 생겼다.
- 이는 **"글로스터셔 연대는 절대 후퇴하지 않는다"**는 전통을 상징하며, 임진강 전투에서도 이 정신을 그대로 실천했다.
4) 영국군 동상
- 글로스터셔 연대 소속 군인의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으로, 전투 당시 용맹하게 싸운 영국군을 기린다.
- 미군 수류탄을 착용한 모습이 특징인데, 이는 당시 영국군이 미군으로부터 지급받은 무기와 장비를 사용했음을 보여준다.
5) 글로스터 다리(Gloucester Bridge)
**글로스터 다리(Gloucester Bridge)**는 1951년 한국전쟁 중 임진강 전투(설마리 전투)에서 용맹하게 싸운 영국군 글로스터셔 연대(Gloucestershire Regiment)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명명된 다리이다.
6) 칸 중령 십자가
- 임진강 전투 당시 영국군을 지휘했던 칸 중령(Lt. Col. James Power Carne)이 전투 후 포로가 되어 1953년까지 북한 포로 수용소에서 생활할 때 만든 십자가.
- 칸 중령은 포로 생활 중에도 영국군의 명예를 지키며 부하들의 사기를 북돋았고, 종교적 신념을 바탕으로 십자가를 제작했다.
**6) 파주 영국군 설마리 전투비
설마리 전투비는 추모공원이 조성되기 이전부터 있던 기념비로, 영국군의 희생을 기리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 이곳은 과거 금을 채굴하던 금광이었으며, 전투 당시 영국군이 최후의 항전을 벌이다가 희생자가 발생하자 나중에라도 시신을 회수하기 위해 임시로 시신을 안치했던 장소였다.
- 1957년 6월, 영국군과 한국군 24사단이 주변의 돌을 채석해 금광 입구를 막고, 당시 전투 상황을 기록한 비를 부착하여 전투비를 세웠다.
- 2008년, 이 전투비는 등록문화재 제407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 이곳을 1962년 찰스 왕세자 부부가 방문하여 헌화했으며, 1999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직접 찾아 참배했다.
- 2023년, 세계 잼버리 대회에 참가한 영국 대원들도 이곳을 방문하여 전몰 장병들을 기렸다.
✔️설마리 전투비에 새겨진 주요 내용
이곳은 1951년 4월, 한국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임진강 전투에서 영국군 글로스터셔 연대가 끝까지 싸운 현장이다. 파주 영국군 설마리 전투비는 추모공원이 생기기전부터 있던 곳이다. 이곳은 과거 금을 채굴하던 금광이였는데 전투당시 영국군이 최후의 항전을 벌이다가 희생자가 발생하자 나중에라도 시신을 회수하기 위해 임시로 시신을 안치해놨던 곳이다.
- 전투 당시 235고지와 칠중성 전투지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음을 기록.
1957년 6월 영국군과 한국군 24사단이 주변의 돌을 채석해 입구를 막고 당시의 전투상황이 기록된 비를 부착하여 만들었다. 2008년 등록문화재 407호로 지정되었다. 이곳을 1962년에는 영국 찰스 왕세자 부부가, 1999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헌화를 했다. 2023년 세계 잼버리 대회에 참여한 영국대원들도 이곳을 찾았다.
설마리 전투 추모행사
설마리 전투 추모행사는 1951년 임진강 전투에서 희생된 영국군을 기리기 위해 매년 4월 마지막 주 일요일, 경기도 파주 영국군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에서 개최된다. 2014년부터 정기적으로 진행되며, 참전용사와 가족, 주한영국대사, 국가보훈처 관계자, 파주시장 등이 참석해 헌화와 묵념을 올린다. 이 행사는 영국군의 희생을 기억하고, 한국과 영국 간의 깊은 우정을 기리는 중요한 역사적 행사이다.
주변 명소
-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은 감악산 출렁다리에서 약 2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 공원 아래로는 설마천이 흐르고 있으며, 조류공원이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 이 지역은 자연경관이 아름다우며,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는 동시에 평화와 자연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었다.
한국전쟁 중 영국군 참전 배경 및 규모, 주요전투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영국은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한 국가였다. 영국군은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낙동강 방어선, 인천상륙작전, 서울 수복 작전, 설마리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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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공원의 의미
설마리 전투 추모공원과 설마리 전투비는 1951년 임진강 전투에서 싸운 영국군의 희생과 용기를 기리는 역사적 장소이다. 특히 영국군 글로스터셔 연대의 마지막 저항과 칸 중령의 리더십, 병사들의 숭고한 희생이 깃든 장소로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그들의 헌신을 기억하고 있다.
이 공원과 전투비는 단순한 전쟁 기념비가 아니라, 한국과 영국 간의 우정을 상징하며,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되새기는 장소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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