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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Here

우리나라 최초 극장 협률사 애관극장 어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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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인천에서 탄생한 협률사(協律舍)는 한국 최초의 민간 극장으로, 근대 공연예술의 시작을 알린 상징적인 공간이다. 현재는 애관극장으로 불리며 13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최근 경영난으로 인해 보존과 활용 방안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애관극장의 탄생부터 변화 과정, 문화적 역할,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살펴본다.

 

 

1. 협률사의 탄생과 역사적 의미

협률사는 1895년 인천 경동(현 애관극장 자리)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민간 극장이다. 당시 인천은 개항 이후 외국 문물이 활발히 유입되던 도시였으며, 협률사는 이러한 변화를 반영한 근대적 문화 공간이었다. ‘협률(協律)’이라는 이름은 ‘음악을 조화롭게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연희 공간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문화를 발전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서울보다 먼저 설립된 이 극장은 당시 인천의 경제적, 문화적 위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였다.

 

 

2. 협률사에서 애관극장까지의 변화

협률사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러 차례 명칭과 기능이 바뀌었다.

  • 1895년: 협률사(協律舍) 설립
  • 1911년: 축항사(築港舍)로 개명 → 인천이 항만도시로 성장하면서 명칭 변경
  • 1921년: 애관(愛館)으로 개명 → ‘사랑하는 극장’이라는 의미
  • 1960년대 이후: 애관극장으로 운영 → 본격적인 영화관 기능 강화

이처럼 협률사는 시대에 맞춰 변화를 거듭하며 전통극에서 신극, 영화관으로 발전해왔다. 

 

 

3. 협률사의 문화적 역할

초기 협률사는 전통 공연과 신극(新劇)을 아우르는 종합 문화 공간으로 기능했다.

  • 전통극 공연: 남사당패 놀이, 창극, 판소리 공연이 열렸으며, ‘박첨지 놀이’ 같은 인형극도 인기가 많았다.
  • 신파극과 연극: 1910년대 이후 일본에서 유입된 신파극이 유행하면서 협률사는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 영화관으로 변화: 1920년대 이후 무성영화가 상영되었으며,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영화관으로 자리 잡았다.

애관극장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한국 근대 공연예술의 흐름을 반영한 중요한 문화적 공간이었다.

 

 

 

4. 애관극장의 현재와 보존 문제

129년의 역사를 간직한 애관극장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으로 평가받지만, 현재 심각한 경영난으로 인해 매각 위기에 놓여 있다.

  • 경영난: 관객 감소와 유지 비용 문제로 운영이 어려운 상황
  • 문화계의 보존 요구: 많은 시민과 예술인들이 극장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하며 보존을 촉구
  • 인천시의 대응: 공공 매입 및 문화재적 활용 방안을 검토 중

애관극장은 단순한 극장이 아니라, 한국 근대 극장 문화의 중요한 유산이기 때문에 보존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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