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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화대교는 단순한 교량이 아니다.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현재의 길이자, 과거와 정신을 이어주는 역사적 통로다.
🌸 ‘방화(榜花)’라는 이름의 뜻
‘방화(傍花)’가 ‘꽃 옆’이라는 뜻으로 오해되지만, 실제 의미는 다음과 같다.
“과거에 가장 어린 나이에 급제한, 신분 높은 합격자를 지칭하는 말.”
- 이는 방화대교가 젊고 화려하며, 상징적 위치를 가진 다리임을 암시한다.
- 개화산(開花山) 등 주변 자연 지형과도 어우러지며 문화와 자연이 만나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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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 of the Name 'Banghwa'
Many mistakenly think 'Banghwa (傍花)' means “beside flowers,” referencing the nearby Gaehwasan Mountain (개화산) known for blossoms.
However, 'Banghwa (榜花)' is a historical title:
“A young man of high rank who passed the national civil service examination (Gwageo) at a very early age.”
- This symbolic name reflects the bridge’s youthful, elite, and prestigious image, appropriate for a structure that connects to Korea’s most globally visible site—Incheon Airport.
- 2000년 11월 완공, 1995년 착공된 민간투자 1호 사업이다.
- 중앙 경간 540m는 K형 아치 트러스 구조로, 비행기의 이착륙을 형상화했다.
- 복잡한 지반공사: 하상은 20m 퇴적층, 기반암은 36~40m 아래에 있어 시공이 어려웠다.
- 올림픽대로와 자유로, 서울~문산 고속도로를 잇고 있으며, 향후 북한 연결 통일 도로 축으로 계획되어 있다.
🏞️ 덕양산과 행주산성의 저항 정신
방화대교 북쪽에는 **덕양산(행주산)**이 있다. 이곳은 1593년 행주대첩이 벌어진 장소다. 권율 장군이 3천 명의 군사와 백성들, 승병, 의병과 함께 수만 일본군을 물리쳤다.
- 행주대첩비가 산 정상에 세워져 있다.
- 인근엔 1910년 건립된 행주성당이 있으며, 행주치마 전설은 실제로는 행주(헝겊)에서 유래했으나 항쟁의 상징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 번성했던 행주나루와 독립운동
행주나루는 한강 조운의 핵심 포구였다. 어시장, 색주가, 무당집까지 형성된 번화한 나루였다. 도산 안창호, 단재 신채호는 이곳에서 중국 망명길에 올랐다.
- 1919년 한강선상만세운동: 배를 띄워 독립만세를 외쳤다.
- 장효근 선생은 독립선언서 2만 부를 인쇄해 배포하고, 후에 국가등록문화재 제714호로 지정된 일기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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