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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Here

덕수궁 함녕전 : 망국의 황제 고종이 남긴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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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이 승하한 함녕전

고종이 승하한 침전 함녕전

 

1897년 창건된 함녕전은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하던 해에 지어진 고종의 침전이다.  1904년에 온돌 수리 공사 중 일어난 대화재로 함녕전을 포함 덕수궁 내 전각들이 소실됐다가 같은 해 12월에 복원됐다. 이 화재로 인해 덕수궁의 거의 모든 건물이 다 불타없어졌다. 이후 고종황제는 수옥헌이라는 지금의 중명전이라는 곳으로 옮겨서 업무를 보게 되었다.


함녕전에 불이 났을 때 고종이 가장 먼저 챙긴 것은 명성황후의 사진과 옥새였다. 명성황후 시해 후 덕수궁에 전화가 설치되고 아무리 멀리 있어도 음성을 들을 수 있단 사실에 놀았던 고종은 명성황후가 잠든 홍릉에 전화를 설치한 후 전화를 통해 명성황후의 안부를 물어보았고 거기 교환수가 무덤 쪽에 수화기를 대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통화해도 대답 없는 명성황후를 향한 사무친 그리움에 매일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1919년 1월 고종황제는 이곳 함녕전에서 갑자기 승하했다. 독살로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것은 3.1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고종황제 죽음에 대한 독살설 증거들..

 

고종은 독살 되었다! ? (고종 황제 죽음에 대한 독살 의심 증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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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대한민국 현대 국가 이름의 뿌리를 만들다. 

고종이 승하하자 3일 동안 백성의 음주 가무를 금하고 40여 일 만에 덕수궁에서 발인했다. 고종은 이후 나라를 지켜내지 못한 '망국의 왕'이라는 불명예로 사람들 사이에서  오늘날까지 회자되었다. 그러나 역사의 아이러니하게도 망국의 왕이었던 그의 죽음은 오히려 민족의 독립의지를 깨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19년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일제에 대한 민족적 분노와 저항심을 촉발시켰고, 이는 곧 3·1 운동의 직접적인 기폭제가 되어 본격적인 독립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다.

 

 

3·1 운동 당시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고종이 세운 '대한'을 외쳤다. 그들은 '대한 독립 만세'를 목 놓아 외치며 민족의 독립을 열망했다. 이 뜨거운 외침과 독립에 대한 열망은 곧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라는 역사적인 결실로 이어졌다. 고종이 만든 '대한'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독립을 향한 민족적 희망이자 자긍심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났다.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 배경과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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