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에 경기전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유일하게 불타지 않고 살아남은 외사고 실록의 보관소가 있던 곳이다. 경기전에 딸려 있는 작은 건물 실록각이다.
조선 초기 춘추관과 충주에 보관된 2부의 실록각이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총 네 군데에 실록을 보관한다. 이 실록은 읍성 도시 한가운데 보관되었고 보안은 물론 화재의 위험도 컸다. 실제로 성주사고에서는 사람들이 산비둘기를 잡으려고 불을 피우다 사고가 홀딱 타기도 했다.
130년뒤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동래에 상륙한 일본군이 북상한 순서대로 사고들이 불타 버린다. 성주, 충주, 춘추관사고에 불이났고 정유재란때는 이곳 전주사고까지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실록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1592년 4월에 부산 앞바다에 일인들이 와서 20일 만에 한양을 차지하게 되는데 전라 감사가 실록을 내장산 용굴로 옮기게 되면서 실록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 샛길을 이용해 갔고 허드레 짐처럼 가장해서 옮겼다고 한다. 안의와 손홍록 같은 분들이 자진해서 옮겼다. 궤짝은 60궤짝에 말은 20필 정도 사용했다고 한다.
거기에서도 밤낮으로 370일간 실록을 지켰으나 1년 뒤 진주성이 함락되면서 다시 전라도에서 강화도로 옮겼다. 안의는 실록을 옮기다가 병을 얻어 사망한다. 그렇게 전주사고에 있던 실록만 온전하게 보존되었던 것이다 .
무주 적상산 사고
이후 실록은 좀더 안전한 장소 험하고 지세가 좋은 곳에 실록 사고를 다시 만들어 보관하게 된다. 그렇게 사고는 5군데가 된다. 이후 청나라의 위협에 노출될수 있는 묘향산 사고가 폐지되고 새로운 사고 부지로 무주 적상산사고가 선정된다.
적상산을 지나던 최영 장군이 커다란 바위를 내려치니 바위가 쪼개지면서 길이 열였다는 무장 최영의 전설이 전해진다. 최영은 임금에게 이곳에 산성을 쌓을 것을 건의한다. 그 이후 절벽 위로 2m 높이의 산성이 만들어진다.
적상산은 천길 낭떠러지로 되어 있고 깍아지르는 듯한 절벽에 위쪽으로 올라가면 평지가 있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할 때 적에게 노출되지 않는 분지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을 이곳으로 옮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후 300년간 실록이 보관된다.
1614년 설치된 적산상 사고의 실록은 일제 강점기 창덕궁 장서각으로 옮겨지고 지금은 복원된 사고만 남아있다.
조선왕조실록 완성 과정 알아보기 및 오대산 사고 이야기 [선녀들 11회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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