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개 이야기
진주성은 경남 진주시 남성동과 본성동 일대에 있는 고려 시대~ 조선시대 성으로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주성대첩이 벌어진 곳이다. 이곳에 조선시대 의기 (의로운 기생)을 만들수 있는 곳이 있다.
1592년 조선군 3800명과 의병은 5배가 넘는 2만여 일본군을 상대로 대승한다. 그러나 다음해 1593년 9만이 넘는 일본군이 또 쳐들어와 조선은 참패한다. 이때 조선의 민, 관, 군 6만 명이 학살당한다.
전투가 끝나고 며칠 뒤 일본군이 바로 이 촉석루에서 승리를 자축하는 잔치를 벌인다. 그리고 일본군은 살아남은 조선 여자들에게 술 시중을 들게 한다.
그때 일본군 장교를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든 여자가 있는데 그녀가 바로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논개이다.
의기사
진주성 안에 논개의 사당 의기사가 있다.
산홍은 누구인가?
진주 관기 산홍이 있었다.
의암바위 쪽에 보면 주로 구한말 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의로운 사람들과 고관대작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진주에서 벼슬을 지냈던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산홍은 논개가 살았던 시대로 300년 후 1900년 초 국권을 잃어가던 암울한 시대에 살았다. 당시 기생들은
친일파를 얘기 할때 나오는 을사늑약에 서명한 5명 을사오적 중 한사람 이지용이다.
흥선대원군의 형 이최응의 손자 이지용은 을사늑약 1년전 1904년 일본으로 부터 1만엔을 받고 한일 의정서에 조인까지 했다. 이런 이지용은 나라에 위험한 인물이었다. 이지용은 나라를 팔아먹기 전에 경남 관찰사를 했는데 그때 기생 산홍을 만났다.
산홍의 재색에 빠진 이지용이 나라를 팔아먹은 후에 다시 진주로 내려와서 산홍을 자신의 여자로 삼으려고 했다. 그랬더니 산홍이 말하길 사람들이 나라 팔아먹은 도적이랑 살수 없다고 했고 이에 이지용은 무지막지하게 산홍을 때린다. 이후 산홍은 매국노를 거절하고 자결한다.
또한 해마다 진주성에는 논개를 기리는 진주 논개제 의암별제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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