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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Here

태백 이야기: 황지 연못 (낙동강 발원지), 탄광 개발 역사/자미갱 함백탄광 사고

하늘 아래 첫 동내 태백에 가면 대한민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름을 쓰는 버스정류장이 있다. 정류장을 세울 당시 아무것도 없어서 집주인 이름을 붙인 정류장이 탄생한 것이다. 

 

원래는 아버지 권상철 집앞이었다가 현재 권춘섭 집앞.  

 

태백 황지 낙동강 발원지 

태백 시내 한가운데 영하 18가 되도 얼지 않는 연못, 황지연못이 있다. 이곳은 하루 5000톤 넘는 물이 솟고 연중 수온은 영상 15도 일정한 샘이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늘 넘친다. 그 물이 흘러흘러 남쪽 바다, 남해로 흘러가 1300리 낙동강의 발원지가 황지이다. 

황지 연못

 

연못 밑에 용궁이 있는데 가끔 용이 몸을 흔들어서 바닥 청소를 하면 물거품이 솟구쳐 연못이 누렇게 된다고 한다. 태백한 아래 황지는 예로부터 유명했다. 

 

 

또 다른 전설

옛날에 이 연못가에 심보 고약한 황 부자가 살았는데 스님이 찾아와 시주를 부탁하니 매몰차게 거절하고 스님이 딱했던 며느리는 시아버지 몰래 시주를 한다. 그리고 며느리는 스님을 따라 가게 된다. 

 

 

스님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고 따라 오라고 했는데 강하게 친 뇌성에 뒤를 돌아보고만 며느리는 순간 황 부자는 이무기로 변하고 아이를 업은 며느리는 돌로 변해버렸다.  삼척 도계읍 구사리에는 돌 미륵상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황 부자 며느리라고 믿는다. 

 

 

그리고 황부자 집은 그 소리와 함께 땅 속으로 꺼져 버리고 모두가 함께 연못이 되었다는 전설이다. 세 개의 연못은 각각 황 부자의 외양간, 방앗간, 안채 터라고 믿는다. 

 

 

 

태백 구문소 

수 억년전 이곳은 바다였다. 석문 안쪽에는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가 있고 그끝에는 황지가 위치해 있다. 

 

구문소
오복동이라는 이상향을 향한 문 자시 밤 11시부터 1시 사이에 열린다고 한다.

 

오복동은 정감록의 우복동에서 따온 것으로 소도 마음 놓고 되새김질할 수 있는 안전한 땅이라는 뜻이다.  '오복동천자개문' 이라는 글씨는 김강산씨가 쓴 글이다. 

 

1988년 1월 1일 김강산 쓰다.

 

당시 하천에 시커먼 석탄 물과 하수처리장이 없었기 때문에 생활하수가 그대로 내려갔다. 언젠가는 맑아질 것이라는 소망으로 썻다고 한다.  

 

우혈목이 : 최초석탄발견지

구문소 옆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짧은 터널 우혈목이가 있다. 1925년 상장면사무소에 근무하던 장해룡이라던 젊은 청년이 먹돌배기 주변을 걷고 있었다. 

 

우혈목이

 

먹돌배기는 주변 흙이 꺼뭇꺼뭇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그 청년이 개울가에서 검은 돌을 발견하고 그 돌을 들고 면사무소로 갔는데 그곳에 와있던 일본인들이 그것이 화력이 좋은 고열량의 석탄임을 한눈에 알아본다. 

 

최초석탄발견지탑 

 

탄광 개발 역사 

곧이어 일본 지질학자 시라키 다쿠지가 오게 되고 조사 결과 이 지대가 석탄지대임을 알아내고 삼척 태백에 엄청난 양의 석탄이 매장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1937년 일제강점기의 태백은 그렇게 크고 작은 탄광을 개발하기 시작하고 굴과 도시를 연결하는 철도와 도로가 생겨난다. 그렇게 삼척 태백의 탄광 시대가 시작되었다. 

 

철암역사 선탄장 

 

철암역사 주변에 선탄장이 있는데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선탄시설로 한창 때 하루 12,000톤의 무연탄이 생산되었다.  현재도 공장은 운영중이 지만 생산량은 1200 톤으로 1/10로 떨어졌다. 

 

선탄장에는 모두 여자들이다.

 

 선탄장은 탄광 막장에서 돌이 나오면 선탄장에서 무연탄, 갈탄, 그리고 탄이 아닌 잡석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는 곳이다. 가운데 벨트로 가는것이 우리가 사용하는 석탄이다. 

 

 

 

태백이 탄광 개발로 활기를 띄던 시절 탄광 옆으로 광부들의 사택이 벌집처럼 생겨났고 그  천변으로 검은물이 흘렀다. 1980년대 광부가 13만 인구정도 되었고 사람들은 까만 물 옆에서 자주 삼겹살도 구워먹었는데 광부들이 많아 삼겹살의 기름이 목에 붙은 석탄 가루를 씻겨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철암 역사문화거리 

 

조금이라도 탄가루가 덜 들어오도록 집들을 다닥다닥 붙여놓았다. 1993년 태백의 탄광은 문을 닫게 되지만 이전까지 태백은 우리나라 에너지 자원의 70%를 생산하던 곳이었다.  태백 사람들은 철암역 주변, 상장동에는 그때 살던 흔적들을 아직도 남겨놓았다. 

 

태백시 정선읍 상장마을
상장마을에 함태탄광이 있었다.

 

1980년대 광부의 월급은 실수령액만 30만원 정도였고 탄광 막장에서 캔 석탄은 태백 중심지 황지에서 풀려나갔다. 황지 주변에는 술집이 많았는데 경제가 활성화 되던 시절 시내로 나와 돈을 쓰던 곳이다. 태백 황지 중심가에는 가전 3사가 다 있었고 없는게 없었다. 

 

자미갱 함백탄광 사고 

그러던 어느날 함백 탄광에서 사상 최대 광산 참사가 벌어진다.  6.25 전쟁 중 개발돼 패광전까지 1700 만톤의 석탄을 생산하던 자미갱에서 벌어진 일이다. 1979년 4월 14일 오전 7시 50분  이른 아침 갱도 입구에서  광차에 실려 있던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한다.  자미갱을 통해서 임무 교대를 하러 들어가던 26명의 광부가 목숨을 잃었고 40여명이 중경상을 입은 자미갱 함백탄광 사고였다. 

 

함백탄광 사고 기사

 

갱도로 들어가다가 입구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는 바람에 26명이라는 사람의 시신도 거의 못찾을 정도로 산화가 되었고 시신이 날라가 마을까지도 떨어졌다고 한다. 참혹한 상황이었다. 

 

자미갱 폭발사고 

 

함백광업소 순직 광부비 

 

사북 탄광문화 관광촌

 

막장에서 올라온 광부들은 가장먼저 깨끗하게 장화를 씻는다. 그리고 샤워실에서 막장의 때를 다시 벗겨낸다. 

 

탈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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