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에서 무슨 일이?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조선시대 정자 세검정이 있다. 이곳은 1623년 광해 15년 한무리는 세검정에 모여 허리에 찬 칼을 흐르는 물에 씻어내며 함께 죽기를 칼로 맹세한 후 1623년 3월 12일 반정세력 능양군, 이귀등이 이끈 병사들이 창덕궁을 기습한다. 목표는 인정전에 있는 광해군이었다. 신하가 임금을 몰아낸 두 번째 사건 인조반정이었다.
세검정 앞으로는 홍제천이 흐르는데 홍제천에서는 조선왕조 실록이 완성된 후 실록의 초고들을 물에 씻어 글씨를 지우는 일을 했던 곳, 세초를 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인조 반정때 궁궐로 쳐들어가기 가장 좋은 지름길이 북쪽의 창의문을 통과해서 가는 것인데 창의문 바로 아래 시내가 흐르고 정자가 있는 그곳이 세검정이다.
능양군은 누구?
중종반정과는 달리 반정 모의부터 직접 참여, 주도한 능양군 (인조) 이다. 어릴때 말수가 적고 할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인물이다.
인조반정의 명분
36가지에 달하는 광해군의 죄목으로 반정교서를 반포한다. 그 중에 명나라에 대한 반역, 폐모살제 등 대부분 성리학적 명분과 관련된 죄목들이었다.
인조반정 이후
인목대비를 내세워 반정교서 반포 및 광해군을 폐위시킨다. 인조반정으로 북인세력이 몰락해 버린다. 결국 광해군과 그 가족들은 강화도로 유배를 가게 되고 광해군 아들은 땅굴을 파서 도망을 시도하다가 발각이되서 자결을 하게 되고 폐세자를 따라 광해군 며느리 또한 자결한다. 그 충격으로 아내까지 숨을 거둔다. 홀로 남겨진 광해군은 강화도에서 제주도로 유배생활을 하게 되고 왕으로 재임한 기간 15년이었는데 유배생활은 18년 더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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