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 길이 실크로드보다 먼저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역사의 흥미로운 부분이다. 흔히 실크로드를 떠올리면 사막을 가로지르는 험난한 무역로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더 편리한 초원 길이 먼저 동서양을 이어주었다. 그런데 왜 더 쉽고 빠른 초원을 두고 사막을 개척했을까? 그 답은 당시의 국제 정세와 중국이 처했던 정치적 상황에서 비롯된다.
초원 길과 흉노 제국
실크로드보다 먼저 존재했던 초원 로드는 유라시아 초원을 가로질러 동서양을 연결하는 자연스러운 경로였다. 이 길은 평탄하고 이동이 용이하며, 초원에는 유목민들의 마을과 가축이 많아 식량과 물을 구하기도 쉬웠다. 그런데 문제는 흉노 제국이었다. 기원전 3세기부터 흉노는 초원 지역을 중심으로 강력한 유목 제국을 형성했고, 이들은 중국 한나라와 끊임없이 충돌했다. 흉노는 단순한 유목민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무역로를 통제하고, 중국을 공격하거나 조공을 요구했다.중국의 한나라는 흉노의 위협을 피해 안전한 경로를 찾아야 했다. 초원 길을 그대로 이용할 경우 흉노와 부딪히는 것은 불가피했기에, 사막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로 한 것이다.
사막으로 간 이유
흉노는 초원 지역의 지배자였으나, 사막과 같은 극한 지역에서는 영향력이 약했다. 사막을 이용하면 흉노의 통제를 피할 수 있었다. 이에 한나라는 장건(張騫)을 파견해 서역과 교류를 시도하면서 사막 경로를 탐색했다. 사막 경로는 자연적인 방어막 역할을 해 외적의 추격을 막아주었다. 사막 경로는 힘들었지만, 교역로를 독점할 수 있었다. 초원 길은 여러 유목 민족이 공유했지만, 사막 길은 나라가 직접 개척해 통제할 수 있었다.
실크로드 탄생
한나라와 흉노의 충돌은 실크로드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기원전 139년, 한나라의 무제(武帝)는 장건을 서역으로 보내면서 사막 경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장건은 대월지(大月氏)와 동맹을 맺고 흉노를 견제하려 했지만, 이 과정에서 실크로드라는 새로운 무역로가 형성되었다. 이후, 기원전 60년경 한나라가 서역도호부를 설치하며 실크로드의 주요 지점을 군사적으로 보호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비단, 향신료, 유리, 종이 등이 동서양을 오가는 교역의 황금길이 열렸다.
결국 사막을 통한 실크로드 개척은 단순히 무역로의 문제가 아니라 당시 중국과 유목 제국 간의 권력 다툼과 정치적 상황이 빚어낸 결과였다. 오늘날에는 실크로드가 초원 길보다 더 상징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배경에는 생존과 전략이라는 인간사의 복잡함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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