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썸네일형 리스트형 추사 김정희 별장: 백석동천 폐허가 된 별서의 정취... 백석동천은 추사 김정희의 별서로 언제 지어졌는지 알지못하지만 1930년대까지 별장으로 운영되던 곳이다. 그 후 한국 전쟁 이후 잊혀지기 시작했고 이후에 다시 청와대 경호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이곳은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혀졌다. 그러다가 2006년 일반에게 개방되었다. 백석동천은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탄핵 심판 기간동안 청와대 안에만 머물러 있던 중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청와대 경호 구역을 산책하다가 이곳을 발견했다. 이때 문화재청장을 불러 이곳을 조사하게 했고 알고보니 추사 김정희의 별서로 밝혀진 것이다. 더보기 흥선대원군 별서 석파정 흥선대원군(1820-1898) 의 호는 석파로 돌석, 언덕 파 돌 언덕이라 는 뜻의 석파정은 인왕산 북동쪽 바위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별장 (=별서)으로 수려한 자연 경관 속에서 그림을 가까이 했던 곳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흥선대원군 난초 그림의 스승으로 흥선대원군이 되기 전에 그림을 좋아하던 이하응이 추사에게 난초를 배웠다. 소수운련암 물로 둥지를 틀고 구름으로 발을 삼은 암자라는 뜻으로 석파정을 짓기전 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는 바위로 바위에 새긴 글귀는 옛날부터 이곳이 아름다웠다는 것을 말해주는 시적표현이다. 원래 석파정의 주인은 철종때 세도가 안동김씨 김흥근이었다. 그런데 흥선대원군이 이 집 빼어난 풍광에 마음에 쏙 든 것이다. 수차례 김흥근의 별서를 매매 제안을 했으나 이를.. 더보기 창덕궁 후원 이야기 (부용지, 연경당, 신선원전 일대) 부용지 일대처음 이곳은 그냥 언덕이었다. 그러나 15세기에 세조가 4개의 샘물을 찾아 연못을 만들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숙종이 을 만들었다. 창덕궁 후원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룬 정자가 무려 17개가 있고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정조가 부용정을 지은 이후 규장각을 설립 몇 대에 걸쳐 완성된 부용지이다. 부용정 부용정은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부용은 연꽃을 의미하는데 연꽃처럼 연못에서 피어오른 듯한 정자라는 의미가 있다. 부용정은 연못에서 솟은 교각에 앞으로 정자가 튀어나온 모양인데 이 난간에 걸터앉으면 마치 배를 탄 듯한 느낌이다. 영화당 영화당은 왕과 신하의 연회장이며 과거 시험 응시자들이 마지막으로 왕 앞에서 시험을 치르던 장소이다. 부용정에서 내려가면 4개의 정자가 .. 더보기 천년이 넘는 일본 육식 금지령 이유.. 146-2 일본의 서양 요리 대중화에 실패했던 이유는 천황에 의해 육식이 약 1200년 동안 금지되었다. 일본은 6세기 초반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일본 국교가 불교로 지정이 된다. 673년 일본이라는 나라 이름과 천황이라는 명칭을 만들고 일본 역사상 최초로 강력한 전제 권력을 행사했던 텐무 천황이 등장하게 된다. 텐무 천황은 국교인 불교 교리를 내세우게 된다. 불교의 핵심 가치인 살생 금지 사상을 실천을 위해 백성들에게 육식 금지령을 발표한다. 불교로 인한 육식 금지령은 이후 시기와 금지 동물의 종류를 달리하면서 여러번 개정되게 되는데 스토쿠 천황때는 모든 생물을 살생금지 시키는 법령을 발표한다. 게다가 소에 대해서는 시기를 가리지 않고 엄격하게 식용을 금지시켰다. 당시 일본은 농경 국가였고 소는 곡물의.. 더보기 창경궁 이야기 창덕궁과 창경궁은 동궐이라고 불렀다. 왕이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있을 곳이 필요했고 상왕과 왕대비가 머물 궁궐이 필요해서 지은 곳이 창경궁이다. 그래서 아담한 규모와 자연지형에 맞춘 편안한 구조의 궁이다. 이곳에서는 또한 왕비 후궁들이 많이 살았다. 여기서 태어난 왕자 중에 왕이 된 사람이 많다. 창경궁 정문 홍화문은 조화를 넓힌다는 뜻으로 영조가 이 문 앞에서 백성들과 대화를 나눴다. 또한 창경궁의 문정전은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장소이다. ▼창경궁 속 사도세자의 죽음 (영화 사도의 임오화변 이야기) 창경궁 속 사도세자의 죽음 (영화 사도의 임오화변 이야기)[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 35,36회] 오늘의 탐사지: 창경궁 (춘당지-경춘천-문정전) 주제: 창경궁 속 사도세자 이야기 출연자:.. 더보기 세종의 어린시절 및 즉위식. 세종의 어린시절 세종의 아버지는 태종 이방원으로 세종은 태종의 셋째아이들 충녕대군이다. 첫째는 양녕대군으로 양녕대군 또한 똑똑했으나 하필 동생이 충녕대군(세종)이 다방면으로 천재성을 보인 충녕을 보고 넘을 수 없다는 걸 느꼈던 걸까? 첫째 양녕대군은 충녕에 대해 ' 충녕은 보통사람이 아니다' 라고 여동생에게 가서 충녕의 비범함과 양녕의 심정을 담은 기록도 있다. 양녕대군이 방탕해진 이유가 충녕대군(=세종)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어느날 태종이 하는 말을 들은 후 우연히 아버지 태종의 속마음을 알게 된 양녕이 일부러 방탕하게 굴었다는 야사도 있다. 양녕대군은 그후 기행을 일삼다가 결국 선을 넘어 양녕대군이 사랑한 기생 어리를 간통하고 납치한 얘기를 세종이 고자질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건국 초기 나라를 .. 더보기 묘효, 시호란? 세종대왕의 이름은 '이호' 로 그 당시 왕의 이름에 쓰인 한자는 백성들이 사용할수 없기 때문에 왕의 이름엔 어려운 한자를 사용했다고 한다. 묘호란? 죽은 이의 영혼이 위패(신주) 안에 깃든다고 생각하고 그 위패를 모셔둔 단지(=상자)를 신주단지라고 하고 신주를 놓던 그 자리가 신위, 그 신위에 붙이는 이름이 묘호로 그것이 바로 '세종' 이었다. 시호란? 시호는 그 분의 공덕을 기리기 위한 이름으로 세종의 시호는 영문, 예무 ,인성, 명효 대왕 영문:문에 뛰어나시고 예무: 무예도 뛰어나시고 인성: 성품이 인자하시고 명효: 명석한 두뇌와 효도, 효성스럽다. 더보기 코카 콜라 원료는? 콜라 로고, 콜라병 디자인 누가? 미국 애틀렌타의 한 약제사 존 펨버튼은 남북전쟁 당시 남부 구인으로 참전했다가 부상을 당하고 모르핀에 중독되어 있었다. 이를 대체할 수 있던 약을 찾던 중 코카 잎에서 추출한 코카인을 알게 된다. 이 코카인과 콜라 나무에서 추출한 콜라 열매의 추출물로 콜라의 원조인 매약을 만들게 된다. 코카 잎은 남아메리카 원산의 식물로 수천년 전부터 의약품과 기호식품으로 이용해 왔으며 기력 보충을 위해 잎을 씹기도 했다. 아프리카 원산지인 콜라나무의 열매는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는데 다양한 탄산 청량음료의 항료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코카 잎 + 콜라나무 열매+ 프랑스 와인을 섞어 프렌치 와인 코카를 만들어 낸다. 당시 펨버튼은 코카인 성분의 중독성이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프렌치 와인코카가 맛도 있고 .. 더보기 남아공은 어떻게 무법지대 범죄율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나? 153-4 [이전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후 약 30년이 흘러도 여전히 흑인들의 빈곤문제는 심각했다. 남아공의 2023년 4분기 기준 실업자 수는 약 789만 5천 명이었다. 심각한 것은 대부분의 실업자가 흑인이라는 것이다.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종 비율은 흑인이 82%, 백인 8%인데 남아공 전체 소득은 대부분이 백인의 몫으로 남아공은 전 세계에서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 1위이다. 빈부의 격차 아파르트헤이트 폐지와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이후 남아공 정부는 흑인들이 주축을 이뤘다. 만델라 이후 흑인대통령이 계속 당선이 되었고 흑인 정부는 흑인 경제를 살리는 정책으로 적극적인 흑인 우대정책을 실시했다. 공무원 흑인에게 가산점 제도를 실시했다. 그러나 이전에 충분.. 더보기 넬슨 만델라 업적 :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 의미 [이전글]넬슨 만델라 인권 변호사에서 무장투쟁남아공 흑인 해방운동의 상징 인물인 넬슨 만델라는 1918년 7월 18일 남아공의 한 마을의 족장의 아들로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다. 만델라는 대학에 진학해 법학을 전공했다. 법을 전공해 흑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만델라는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최초로 흑인 법률 사무소를 오픈했다. 그러나 당시 흑인 변호사에게도 차별은 여전했고 심지어 재판중에 쫓겨난 경우도 있었다. 이에 넬슨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 철폐를 위해 무장투쟁을 시작한다. 1962년 44살이 된 만델라는 민족의 창이라는 뜻의 움콘토 웨 시즈웨 무장조직을 설립한다. 그 후 외국을 돌며 총기, 박격포, 지뢰 등 다양한 무기 다루는 법을 배웠고 자신이 이끄는 무장 조직과 함께 .. 더보기 이전 1 ··· 21 22 23 24 25 26 27 ··· 6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