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Korean History

안견 몽유도원도 안견은 조선시대 그림을 담당하던 도화원 관청의 화원으로 일을 했다. 그림을 너무 잘 그려서 조선 건국 이래 화원 최초 정 4품까지 전례없는 파격 승진을 했던 인물이다. 산수화로는 당대 화가중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의 화풍이 일본에까지 유행할 정도로 영향력 있던 인물이 안견이다. 더보기
논개의 흔적을 찾아서 논개에 대한 1차 사료가 거의 없다. 논개가 처음 문서로 기록된 것은 유몽인의 이 최초 기록이다. 19세기 들어서면서 논개가 기생이 아니라는 얘기가 있는데 전라북도 장수 사람이고 논개의 성은 주씨로 진주성을 지키러 왔던 의병장 최경회 장군의 후처였다는 설이 있다.논개는 1차 전주성 전투 직전에 왔다. 진주성 2차 전투에서 최경회 장군이 사망하자 논개는 바위 끝에 선다. 왜군 장수 하나가 접근을 하게 되고 이에 주논개는 그 왜장을 껴안고 강물로 뛰어들었다는 얘기가 있다. 논개가 기생이였는지 기생인 척을 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당시 진주 시민들이 논개 이야기를 믿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지금은 댐이 건설되어 유속이 많이 느려졌으나 옛날에는 당시 6월에 장마철이라 유심이 깊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진주.. 더보기
3.1 운동 의의: 유관순 열사 (아우내 장터 만세 운동) 천안에 가면 독립기념관이 있는데 1982년 일본이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초.중.고 역사 교과서에서 한국 침략을 진출로 독립운동 탄압을 치안유지 도모로 토지 약탈을 토지소유권 확인으로 표기하는 드의 왜곡된 역사를 기술했던 것이다. 이에 대대적으로 반일운동이 일어났고 우리나라 국민이 성금을 모금해 독립기념관을 건립하게 되었다.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기 전 대한제국에는 지금의 헌법과 같은 대한국국제라는 것이 있었다. 여기에 대한제국의 권력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쓰여있다. 3.1 운동 의의 제2조 대한제국의 정치는 500년 전래하시고 만세에 걸쳐 불면하오실 전제정치이니라 .. 이것의 의미는 조선의 모든 것은 황제에게만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백성들한테는 주권이 없다는 거다. 황제의 권한은 .. 더보기
아우내 , 두물머리 뜻 : 사라진 우리말 지명 왜? 조선시대 우리는 지도 제작을 활발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명이 많이 요구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국토조사를 하고 조선 지도를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자신들이 읽기 쉽게 지도의 지명을 표시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1910년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고유의 지명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이른바 창지개명이 추진된다. 식민지 통치를 위해서는 행정 구역의 재개편이 필요 하였기 때문에 계획적인 지명 바꾸기를 서둘러 실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순수한 우리말이 많이 사라졌다. 일제 강점기 동안 행정 구역 재편이라는 명분으로 조선의 군 97개, 면 1천 834개, 리, 동 3만 4천 233개의 우리말 이름이 사라지거나 바뀐 것이 확인된다. 그 예로 유관순 열사의 아우내 만세 운동으로 유명한 지명 병천이 있다. 병천 순대로 유명한 .. 더보기
백두산 화산 폭발 2025년 가능성 있다 ! 한반도의 활화산 백두산은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나무들이 말라가고 천지 주변 수온이 80도까지 상승했다. 백두산은 약 1000년전 서기 946년에 역대급 규모로 폭발했었다. 그런데 이런 백두산이 2025년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백두산은 100년 주기로 분화한다는 가설이 있다. 가장 최근 1925년에 분화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100년 주기로 가정하면 2025년이 분화 주기인 것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백두산 주변에서 이상징후가 많이 포착되었다. 백두산 지역에 지진 발생 빈도가 증가하면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 북한에 지진국이 있는데 북 내각 소속 기구로 1971년 5월 김일성의 내각 명령 제 15호에 따라 설립되었다. 150여명의 과학자와 수백명의 연구진이 활발히 연구하.. 더보기
제주 해녀 이야기 : 해녀가 여자만 있는 이유. 바다의 어멍 (어머니) 해녀 해녀 문화는 우리나라와 일본, 이 두 나라에서만 있는 문화로 장비 없이 인간의 힘으로만 작업하는 문화를 말한다. 해녀들의 작업 방식을 나잠어업이라고 하는데 해녀들이 특별한 기계장치 없이 수심 10m 이상 바다밭에 잠수하여 해산물을 채취하는 어업을 말한다. 현재 오직 허가받은 해녀들만 나잠어업을 할수 있다. 바다밭은 법으로 보호받고 있기 때문에 해녀증이 있는 해녀도 본인이 속한 어촌계의 어장에서만 물질을 할수 있다. 해녀 규율, 계급 바다에서 매일 목숨을 걸고 일하는 해녀들이기에 해녀도 체계가 있어서 규율에 따라 바닷가 해변으로 앉는 장소가 정해져 있다. 강력한 규율로 연대하여 서로를 보호하고 했던 것이다. 리더 대상군의 지휘아래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해녀 공동체이다. 물질기량,.. 더보기
서귀포 지명 유래 : 서복 사기 사건.. 서귀포 지명 유래 서귀포라는 지명의 유래 정방폭포와 관련이 있다.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세운 진시황은 불로불사를 염원했다. 그때 서복이라는 자가 자신이 불로초를 찾아오겠다고 말한다. 서복은 3000명의 어린 남녀 동남동녀를 얻어 배를 타고 바다로 향한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제주도의 정방폭포였다. 불로초를 찾으러 가다가 정방폭포에 들렀던 서복 일행은 '서복이 왔다 간다' 라는 글귀 서불과지 를 정방폭포 근처에 새기고 간다. 그래서 서복이 서쪽으로 돌아간 자리라는 뜻에서 서귀포라는 지명이 유래된 설이 있다. 그렇다면 서불과지라는 글씨가 정말 정방폭포에 새겨져 있는가? ▼ (벌거벗은 세계사)서복 사기 사건 : 서불과차 내용 확인해보기 진시황 불로초를 찾아 제주도로.. 불로불사 꿈꾸다. 기원전 221년 마침.. 더보기
추사 김정희 세한도 읽기 : 추사체란 ?/ 제주 추사관 건축 의미. 추사 김정희는 누구? 추사 김정희는 돌, 청동기 비단 따위에 남겨진 기록들을 연구하는 금석학의 대가였다. 다른 사람이 비석인 줄 알았던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평양에 있는 고구려 비석도 많이 정체를 밝혀내기도 했다. 또한 그는 문인이자 서예를 하는 예술가이기도 했다. 왕의 심기를 불쾌하게 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능지처참을 당한 윤상도의 옥사사건의 초안 상소를 김정희가 작성했다고 관련자들이 말을 해서 김정희가 제주도 대정현에 유배와서 위리안치 (가시덤불로 둘러싸인 집에서 나갈수 없는 최고등급유배) 된다. 그러나 제주도에 유배하던 기간에 많은 글을 쓰고 추사체를 제주에서 완성했다고 한다. 추사체는 어떤 서체인가? 추사 선생의 글씨가 추사체이다. 특정한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추사 선생의 글씨가 만년까지 여.. 더보기
도끼만행사건 요약 정리 1976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벌어진 도끼 만행 사건은 8월 18일 오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노무자들의 작업을 경비하던 유엔군 경비병들을 북한 군인 약 30여명이 계획적으로 기습해 와서 도끼와 곡괭이를 마구 휘둘러 미군 장교 두 명을 살해하고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 측 경비병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유엔 관측 차량 3 대가 부서졌다. 이 사건으로 유엔군 소속 미군 장교 2명이 사망했다. 유엔군 3초소 앞에는 큰 미류나무가 있어서 유엔군 5초소가 커퍼를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자 시야 확보가 필요했고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결정한다. 당시에 공동경비구역 내 군사분계선 표시가 없었기 때문에 남북 왕래가 자유로웠던 JSA지역이었고 사소한 다툼이 많은 지역이기도 했다. 이날 북한군이 가지치기를 하지말라며 시비.. 더보기
독도 일본이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이유 , 근거 북한의 역사왜곡은 가히 어매이징할 정도이다. 그런 북한도 한 가지는 인정한 역사적 사실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것이다.  2023년 검정을 통과한 일본의 역사 교과서 11종에 독도는 자신의 땅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주장 1일본은 17세기 중반 독도 영유권을 확립했다는 것일본이 거듭 독도가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옛날 독도가 주인없는 땅일때  일본의 어부들이 70년 동안 어업활동을 했고 일본인 시마네현 고시를 먼저했다는 것이다.   1868년 메이지 유신때부터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라고 인정을 했다. 17세기 말 울릉도 독도에서 어업을 하던 부산 출신 어민 안용복은 돗토리번에 가서 일본 영주에게 독도는 조선 땅임을 주장하고 당시 에도 막부 역시 독도가 조선 땅이라고 인정한 사건이 있다.   안용복..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