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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History

포항 연오랑와 세오녀 설화 의미 포항은 한반도 남쪽에서 가장 먼저 해와 달을 만날수 있는 곳이다. 그 중에 영일: 해를 맞는 땅이라는 도시가 있다. 이곳에 해와 달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연오랑 세오녀 설화 아주 먼 옛날 신라 땅에 한 어부가 바닷가에서 해조를 캐고 있었는데 그런데 처음 보는 바위에 해조가 가득있었다. 그래서 그 바위 위에 올라가 해조를 캤다. 정신없이 해조를 캐고 있는데 갑자기 이 바위가 둥둥 떠내려가더니 동쪽 바다끝 일본땅에 도착했다. 깜깜하게 살고 있던 일본땅에 해가 쏟았고 사람들은 그 어부를 왕으로 삼았다. 그리고 며칠 뒤, 아내 또한 남편이 탔던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가서 남편을 만났다. 그랬더니 캄캄한 밤에 갑자기 밝은 달이 솟았고 두 사람은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반면 해와 달이 사라진 신라는 혼란이 .. 더보기
용비어천가 6용은 누구? 준경묘 백우금관의 전설 용비어천가 6용 용비어천가 1장 1절에는 해동 육룡이 나라샤 일마다 천복이시니 동쪽 바다에 여섯 용이 나타나니 하는 일마다 하늘이 돕는다는 내용으로 조선왕조의 탄생을 찬미하는 가사가 적혀있다. 6 마리 용은 목조: 이안사, 익조: 이행리, 도조: 이춘, 환조:이자춘, 태조:이성계, 태종:이방원인데 이 6마리 용 , 전주이씨 가문의 가장 큰 아버지 이양무의 무덤이 삼척 준경묘이다. 준경묘는 오후 3시만 되도 무덤에 그늘이 질정도로 깊은 산중에 위치해 있다. 조선 왕조의 태동을 예언한 백우금관의 전설이 있는 장소로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이양무의 묘가 있는 곳으로 조선 최고의 명당이라 여겨지는 곳이었다. 백우금관의 전설 전주에서 무관으로 일하던 이안사는 전주로 부임한 산성별감과 기생하나를 사이에 두고 다.. 더보기
내장산 용굴 속 조선왕조실록 이야기 내장산에서 가장 깊고 가파른 금선계곡 속에는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되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은 국보제 151호로 조선태조로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기록한 책으로 조선왕조는 이 기록을 4부를 만들어 한양에 있는 춘추관과 전주, 충주, 성주에 있는 사고에 보관했었다. 사고가 시내 한가운데 있다보니 위험하다고 판단되어 첩첩산중으로 옮기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흐지부지되었다. 그러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며 전주사고에 있던 기록을 제외하고 모두 불타 사라졌다. 이때 전주사고에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내장산 동굴속으로 옮겨서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쟁 중 전주 가까이 왜군이 공격해 오자 안의, 손홍록이 30여 명을 이끌고 조선왕조실록과 어영을 64궤짝에 싣고 이곳으로.. 더보기
정읍 목민사 목민사는 동학농민운동 전투의 첫 승리를 이룬 황토현 전투 승리를 기념하고 동학혁명의 주역들의 위퍠를 모셔놓은 곳이다. 제민당 안에는 정자관을 쓰고 도포에 수를 길게 늘어뜨린 선비의 차림을 하고 있는데 농민군을 지휘한 장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더보기
선운사 미륵불 복장에 무엇이? 정읍 피향정 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에 있는 조선 중기의 누정 피향정은 여름이면 정자 주변에 있던 연못 2곳에서 연꽃이 만발해서 피향정이라고 한다. 전라도 감찰사를 두번이나 했던 이서구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서구는 조선 시대 실학 시대에 시에 능했던 4대 시가 중 한명으로 왕실 출신이지만 실학자들과 깊이 사귀면서 온갖 학문 수리, 천문,토목 등 모든 학문에 능했고 관심이 많았다. 이서구는 그의 말년에 호기심으로 사고를 친다. 고창 선운사에 가면 경관이 수려한 암자 도솔암이 있다. 이 도솔암에 거대한 미륵 부처님이 있고 미륵불 복장 감실에는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비결서가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 사실을 호기심 많은 관찰사 이서구가 듣게 되고 그는 전라 관찰사로 부임하자마자 달려와서 미륵불로 사다리를 타고.. 더보기
정읍사 : 한글로 기록된 가장 오래된 가요 정읍사 내장산의 능선은 아름다운 여인의 옆모습을 닮았다. 속눈썹이 길고, 코가 오똑하며 목이 길며, 가슴도 풍만한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다. 정읍사는 백제 시대부터 조선까지 천년 동안 사랑받았던 대중가요이다. 남녀간의 사랑을 다룬 노래로 통일신라 경덕왕 이후 구백제 지방의 노래였다. 현존하는 유일한 백제 가요이며, 한글로 기록되어 전하는 가요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달하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끔 비취오시라 어귀야 어강됴리 아으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정읍사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가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다롱디리 내용 장사를 떠난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남편이 떠난 곳에서 기다리는 아내에 대한 얘기로 언듯보면 남편의 무사함을 기리는 노래 같지만 사실은 남편이 술집에서 다른 .. 더보기
부산시민공원 역사 부산시민공원 터는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 때 경마장으로 시작되었다. 1937년 ~45년 중일 전쟁, 태평양전쟁 때는 군사훈련소로 사용되었고 1945년 해방 후에는 미군정이 사용했다. 그러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미군은 철수하지만 1950년 한국 전쟁 발발로 다시 주둔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몇 십년 간 미군기지로 쓰인 땅이었다. 50~60년 동안 미군이 사용하다가 2010년에 공식적으로 반환이 되었다. 그때부터 이곳을 공원을 만들어서 부산시민공원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곳은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공간이다. 미군이 막사로 쓰던 곳을 개조해 카페, 도서관 등으로 이용하고 있다. 부사관들의 숙소로 쓰이던 곳은 문화 공간으로 사용 중이다. 도자기 공방을 비롯해 예술.. 더보기
임나일본부설이 허구인 이유 / 부산 동래읍성 가야의 흔적 동래읍성 가야의 흔적 부산 동래읍성은 왜구의 침입을 대비해 고대부터 있던 읍성이다. 동래읍성의 규모는 서울의 사대문 안처럼 부산 동래구의 넓은 지역을 포함한다. 조선 후기에 증축해 넓어진 성곽의 모습만 남아있다. 북문 주변으로 성곽 복원이 잘되어 있어 그 풍경도 아름답다. 제주도에 가면 망자의 넋을 구분하고 동물침입들을 막기 위해 무덤을 돌담으로 쌓는 풍습인 산담이라고 있다. 그곳과 비슷한 모양의 사각형 지형이 동래읍성 북문에 있다. 1969년에 복천동에서 금관가야 시대의 무덤들이 발견되었다. 가야 고분의 발굴 조사는 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는데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많이 와서 판잣집을 많이 짓고 살았다. 새로운 집을 지으려고 땅을 팠는데 도자기들이 많이 나와서 그 지역을 보존하여 뒷 세데에 더.. 더보기
부산 영도 다리 = 영도대교 : 흰여울 마을 부산 영도영도는 부산의 남쪽에 자리잡은 섬으로 현재 부산항, 영도, 남항대교 등 4개의 다리가 부산내륙과 연결되어 있다.  영도는 16세기 동아시아 최대 전쟁 임진왜란의 첫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이다. 1592년 4.13일 부산에 상륙한 700여척의 왜선에  만 팔천 여명의 왜군을 싣고 가장 먼저 침략한 곳이 부산 영도였고 한반도, 대륙 침략의 전초기지였다. 그때 부산의 무사 정발 장군이 영도에서 군사 훈련의 일환으로 사냥 중이였는데 이를 보고 부산 진성으로 들어가 대비를 했다. 임진왜란 첫 전투 부산진 전투에서 600여 명의 병사와 정발 장군은 장렬히 전사하고 부산 진성을 지켰다.  부산 영도다리=영도대교영도다리는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부산 중구와 영도) 우리나라 최초의 연륙교 다리이자 한국 최초의 유.. 더보기
신사임당 이야기 (본명, 오죽헌, 남편 이원수를 택한 이유, 대표작 등) 75 신사임당의 이미지는 현모양처로 가장 많이 떠오른다. 그녀는 조선의 대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휼륭한 아내로 알려진 대표적인 조선의 여성상이다. 그러나 신사임당이 살던 조선 초기 , 그녀는 현모양처로 유명했던 것이 아니였다. 사실 그녀는 유명한 화가였다. 율곡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시대 산수화와 포도를 잘 그렸던 화가로 신사임당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것만 무료 40여점에 이르고 5만원권 지폐 속에서도 그녀의 작품들이 2개나 들어가 있다. 사실 오천원 지폐에는 이미 신사임당의 그림이 들어 있다. 그래서 오만원권 뒷면에는 동시대에 활동했던 화가 어몽룡과 이정의 그림을 넣었다. 오죽헌 그런데 왜 우리는 많은 그림을 남긴 신사임당을 화가가 아닌 현모양처로만 기억하는 것일까? 신사임당은 1504년 조선의 대표 명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