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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아트리체 단테의 연인 이야기 [이전글] 단테 이야기 단테는 14세기 초기 르네상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가인데 9살 꼬마 단테는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처음 베아트리체를 만나게 되게 첫눈에 반해버린다. 그리고 9년이 지난 후 18세에 산타 트리니타 다리에서 다시 조우하기 되는데 단테에게 살짝 목례를 하고 가는 베아트리체에게 단테는 심장이 터질 만큼 베아트리체를 사랑하게 됐고 그날부터 그녀를 생각하며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베아트리체에겐 이미 약혼할 사람이 있었고 단테도 이미 약혼한 상태였다. 그렇게 얼마지나서 베아트리체는 24세의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다. 이에 충격에 빠진 단테는 실의에 빠져 베아트리체가 떠났을 다음 세상 사후세계에 미친 듯이 파묻힌다. 그렇게 책만 읽던 단테는 지옥, 연옥,천국에 관련된 서사시를 직접 집필한다.. 더보기
육조거리 조선시대 육조거리는 총 6개의 중앙관청이 있고 조선시대 광화문 광장에 모여있었다. 지금의 광화문광장 위치에 있는 조선시대 육조거리였다. 지금의 광화문 거리와 비슷하다. 병조는 군사업무를 총괄하는 관청 형조- 법무를 총괄하는 관청 공조- 산림, 하천 건축을 총괄하는 관청 이조- 관리의 임명과 승진, 좌천 등을 총괄하는 관청 예조-국가의 주요 행사를 관장하는 관청 호조-인구, 세금, 곡식을 관장하는 관청 여섯 관청의 우두머리가 판서였다. 더보기
수렴청정 언제부터, 누구 시작했나? (43-3) 이전글 : 대윤 vs 소윤 43-2 1545년 7월6일 12살 경원대군은 조선 제 13대왕 명종이 된다. 그리고 왕이 된 명종과 함께 문정왕후는 어린 명종을 대신해서 수렴청정을 하기 시작한다. 이 수렴청정의 유래는 발을 내리는 행위로 문정왕후가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다. 문정왕후 이전에 처음으로 수렴청정했던 성종의 할머니 정희왕후는 직접 편전에 나오지 않고 자신의 거처에서 정무를 봤었다. 그러나 문정왕후는 이전과 차원이 다른 수렴청정을 펼친다. 조선최초로 왕이 업무를 보는 편전에 나와서 국정운영을 한 것이다. 심지어 경연에도 참석했다. 그렇게 대신들과 함께 자리에서 문정왕후는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내세우며 국정운영을 주도했다. 문정왕후는 자신이 왕인것 처럼 정치 전면에 나섰다. 중종 때 수많은 사건을 겪.. 더보기
을사사화 - 정미사화 (양재역 벽서사건 ) 43-4 이전글 : 수렴청정 언제부터, 누구 시작했나? (43-3) 을사사화 문정왕후는 대윤파를 제거하기 위한 계획에 돌입한다. 대윤파의 수장이었던 윤임을 제거한 것이다. 문정왕후는 윤원형에게 윤임을 몰아낼 계획을 세우라고 했고 이때 정순붕이라는 인물이 대윤파의 수장인 윤임이 역모를 꾸몄다는 상소가 올라오게 된다. 정순붕은 윤원형과 뜻을 함께 했던 소윤파의 핵심 인물로 이 상소 덕분에 문정왕후는 윤임을 유배보내고 사약까지 내리며 윤임을 제거할수 있었던 것이다. 윤임과 함께 엮였던 대윤파 역시 대부분 사사된다. 양재역 벽서사건 = 정미사화 을사사화 2년 후인 1547년 말죽거리 양재역에 괴문서가 붙게 되었다. 그 내용은 여주가 위에서 정권을 잡고 간신 이기등이 아래에서 권세를 농간하고 있으니 나라가 장차 망할 것을.. 더보기
대윤 vs 소윤 43-2 이전글 -> 문정왕후는 어떻게 중종의 3번째 왕비가 되었나? 김안로 추출 문정왕후에게 자식이 없다가 3명의 공주 출산 후 마침내 경원대군이 탄생한다. 그러나 인종의 세력은 경원대군을 경계하기 시작하고 이 세력의 가장 우두머리가 김안로였다. 이에 그들은 문정왕후의 남동생들인 윤원형과 윤원로가 유언비어를 퍼뜨린 하고 중종에게 고하고 중종은 윤 씨 형제를 파직하고 유배를 보냈다. 실상은 가짜뉴스로 윤 씨 형제를 내쫓으려 했던 김안로의 계략이었다. 그러나 윤원로가 중종을 몰래 찾아가 김안로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이에 화가 난 중종은 다음날 김안로를 유배를 보내고 사약을 내렸다. 사실 중종은 김안로가 세력을 키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그런 김안로가 문정왕후의 측근들과 갈등을 일으키자 선을 넘었다고 생각해 이 같.. 더보기
드라마 < 7일의 왕비 > 단경왕후는 누구? 인왕산 치마바위 전설 주인공 드라마 7일의 왕비는  조선 11대 왕 중종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이다. 연산군 이복동생 진성대군 중종은 총 3명의 비를 맞이하게 되고 박민영 배우가 했던 역할이 단경왕후(1487~1557)로 중종의 첫 번째 부인이다. 단경왕후 집안 단경왕후 신 씨는 익창부원군 신수근과 청원부원군 한 씨의 딸로 조선시대 역대 왕비 중 재위기간이 가장 짧은 왕비이다. 그녀의 집안 거창 신 씨는 성종과 연산군 때 권력을 잡고 있던 최고의 명문가로 그녀의 고모는 연산군의 왕비 폐비 신 씨, 아버지 신수 군은 좌의정으로 연산군의 처남, 작은어머니가 예종의 비 안순왕후의 여동생일 정도로 조선 역대 왕비를 통틀어 보기 드문 명문가 출신이었다.  그리고 단경왕후는 13세의 나이에 연산군의 이복동생인 진성대군과 혼례를 올리게 된다.. 더보기
남원 광한루 역사 황희 정승이 지은 누각이었다. ! (1-1) 광한루의 역사 광한루는 보물 281호이다.  남원에 광한루는 호남 제일루라 불리는데 황희가 오랜 유배생활을 할때 지은 것이다. 광한루는 원래 황희 정승의 광통루로 불리던 작은 누각에서 시작된다. 이와 관련된 기록이 광한루 안에 있다.      광한루기 내용 많은 편액 중에 광한루기에는 황희 정승의 셋째 아들 황수신이 쓴 것으로써 제일 자세하게 그때 상황을 표현해 놓았는데 기록에 보면 남원부에 남쪽으로 2리 떨어진 곳에 1리는 지금 계산해보면 400미터 정도로 약 8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지세가 높고 평평해 바람이 잘 통하는 넓은 곳에 황희 정승이 누각을 짓고 그 이름을 광통이라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앞에는 지리산에서 흘러나온 물(요천) 이 아름답게 흐르는 곳에 누각을 세우고 산수를 즐겼다.  광통.. 더보기
광한루 유교와 도교의 이상세계 (1-2) 이전글 ->남원 광한루 역사 황희 정승이 지은 누각이었다. ! (1-1)광한루 뜻1444년  세종 26년에 하동부원군 정인지가 이곳을 한번 지나가면서 이곳의 광한루에 올라가 풍광을 보고 이곳은 지금 지상의 세계가 아니라 달속에 있는 아름다운 궁전 즉 광한청허부와 같다고 하여 그때부터 이곳을 광한루라고 부르게 되었다. 광한루의 의미는 달속에 있는 아름다운 궁전과 같다는 의미이다. 광한은 아름다운 곳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시원한 곳을 뜻하기도 한다.     광한루 호수 속 세개의 섬광한루는 신선이 사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천상의 세계를 갈망해 온 선비들이 지상에 재현해 놓은 이상적인 공간으로 유교와 도교의 사상이 집대성 된 것이다. 황희 정승이 건립한 광통루로 25년 후 하동부원군 정인지로부터 얻게된 이름 광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