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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거스 탄생의 비밀 145 -1 옛날에  라스베가스는 허허벌판에 불과했다. 라스베가스의 발전은 불과 백년도 되지 않았다. 지구상에서 가장 척박한 땅, 가장 뜨거운  데스밸리가 있는 곳이고 이곳은 기온이 58 도까지 올라가 기네스북에 오른 적도 있고 라스베이거스를 둘러싼 모하비 사막까지 있다. 이렇게 라스베가스 인근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무지였다.   라스베거스 어원 마하비 사막의 오아시스가 라스베거스였는데 이 오아시스를 중심으로 터전을 잡고 있었던 원주민들이 있었다. 이들은 움막을 짓고 사냥과 농사를 하며 살고 있었다.    때문에 이때만 해도 라스베이거스는 허허벌판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최초로 정착을 시도한 미국인이 찾아오게 된다. 개척자들로 금광을 찾으러 온 모르몬교도들이었다.  * 모르몬교: 예수 그리스도 .. 더보기
한국 최초 서울전차 역사, 무엇을 바꾸어 놓았나? 한국 최초 전차 우리나라 전차는 70년간 운행이 되었는데 사실 서울에 남아있는 전차의 흔적은 전차 363호 서울역사박물관 앞에 서 있는 381호 단 두 대뿐이다. 그런데 얼마전 이것의 흔적이 얼마전 발견되었다. 1899년 5월 4일 3시 우리나라 최초의 전차가 개통되었다. 이것은 일본 교토에 이어 아시아 두 번째로 개통된 것으로 사람들은 이 전차를 보기 위해 구름떼처럼 모여들었다. 동대문 안쪽에 차고지와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가 위치해 있었다. 전차가 도입되기 전 고종은 매번 막대한 비용을 들여 명성황후의 묘, 홍릉을 행차하곤 했는데 당시 한성전기회사를 위탁 운영하던 미국인 콜브란 (H. Collbran) 이 이를 보고 전차를 도입하면 행차비용을 줄일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수익도 올릴 수 있다고 .. 더보기
거북선 구조 및 판옥선, 거북선 비교 거북선의 구조    거북선 용 머리가 있는 이유 가설 1: 화포를 넣어 발사했을 것이다.라는 가설이 있다. 가설 2: 나무로 된 배로 해전을 치루던 시기에 중요했던 무기는 상대방 배의 선수에 충돌하는 청동으로 된 무기였다. (충파 전법) 거북선 앞 용머리가 금속으로 만들어 충파 전술에 활용됐을 것이다.    거북선의 용머리에서 현자총통(대포)를 발사해야 하는데 ㄱ자 구조라면 대포 발사가 불가능하여 실제 용머리 형태는 일(ㅡ)자로 박힌 모양 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거북선 덮개는 철로 만들었다?  덮개의 재질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철이 아니다: 당시 기술로는 역부족 #철이다:철이 아니면 설명 불가능한 내구성 이 부분은 알수가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일본군에게 공포심을 심어준 것을 확실하다.  왜적.. 더보기
조선총독부 폭파 이유: 김영삼 대통령 역사 바로 세우기 프로젝트 김영삼 대통령(임기: 1993~1998.2월)은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으로 민주화 이후 첫 문민정부를 이끈 인물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부패 척결과 경제 개혁을 추진했고, 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사태등 중요한 시기를 거쳤다. 역사바로세우기 프로젝트는 김영삼 대통령이 추진한 중요한 개혁 정책 중 하나로 주요 목표는 한국의 현대사에서 왜곡되거나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역사적 진실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중에 조선총독부 폭파사건은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조선총독부 건물은 1910년 ~1945년까지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 제국의 한국 통치 본부였던 건물로 서울 경복궁 앞에 위치해 있었으며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한국이 독립한 후에도 이 건물은 미군정 사령부- 중앙청- 국.. 더보기
청와대 수궁터 역사 ( 구본관 터 ) 현재의 개방된 청와대 부지는 과거 수궁터가 있던 곳으로 한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로 조선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역사적 변천을 겪어 왔다. 청와대 수궁터는 조선 시대의 왕실 별궁에서 시작하여, 일제강점기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적 변천을 거친 장소이다. 이곳은 한국의 역사적 사건들과 문화적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중요한 장소로, 청와대의 복합적인 역사와 문화적 의미는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조선 시대의 수궁터수궁터는 조선시대 왕실의 별궁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조선 왕조(1392-1910) 초기에 왕실의 사냥터로 사용되기 시작하다가 이후 왕의 휴식처인 별궁을 지었다. 수궁(守宮)은 말 그대로 '물고기들이 사는 궁궐'이라는 뜻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 더보기
샤를 드골 업적 , 존경받는 이유 : 프랑스 해방을 위한 레지스탕스 활동 144-4 [이전글] 저항의 상징 : 프랑스 레지스탕스 탄생 배경 144-3  제 2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이 프랑스 전역을 점령하게 되자 레지스탕스 활동이 들불처럼 일어나기 시작한다. 이때 해외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활발히 전개한 인물 샤를 드골이 있다.    샤를 드골은 2차 세계대전 이전에 프랑스에서 국방부 차관까지 지낸 인물로 페팅이 나치 독일에 휴전 협정을 제안하자 영국으로 건너가 다음 날 영국 라디오 방송을 통해 프랑스인들에게 끝까지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 이를 계기로 사형 선고를 받고 프랑스로 돌아오지 못한 샤를 드골은 영국에 머물수 밖에 없었다.   샤를 드골의 업적 자유 프랑스 창설 샤를 드골이 영국에 해외 레지스탕스 본부 자유 프랑스를 만들고 자유 프랑스의 상징인 기발을 만들었다.  됭케르크 철수 .. 더보기
포클랜드 전쟁 포클랜드는 영국에서 13,000 km 떨어진 곳, 남극 근처에 위치한 나라로 19세기부터 영국이 포클랜드 제도를 지배하고 있었다.   1970년 말과 1980년대 영국은 경제 위기를 맞이하고 있었고 이에 국방비를 삭감하게 된다. 국방비의 예산 삭감으로 포클랜드 제도를 순찰하는 영국 순찰선이 철수하기 된다.  이에 아르헨티나 정부는 영국이 포클랜드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는 것이라 해석을 하고 이 사건을 아르헨티나의 어지러운 국내 상황을 타개할 방법으로 삼은 것이다.  포클랜드 제도 포클랜드 제도는 영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남극과 가까와 펭귄이 많이 사는 곳으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곳이다.   아르헨티나 상황당시 아르헨티나는 레오폴드 갈티에리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상태로 1981년 12.. 더보기
독일 프랑스에 콩피에뉴 협정, 베르사유 조약 복수하다. 144-2 [이전글] 마지노선 , 낫질작전 : 제 2차 세계대전 프랑스가 독일에게 점령당한 이유 144-1  제 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는 나치 독일에게 단 6일만에 점령당한 후 굴욕적인 협정 조약을 맺게 된다. 당시 프랑스 총리는 국가적 피해를 줄이려면 휴전 협정이 실리적이라고 판단했고 불과 6주 만에 나치 독일에 사실상 항복선언과 같은 휴전협정을 제한한다. 당시 총리는 필리프 페탱으로 1차 세계대전때 프랑스를 위기에서 구한 군 총사령관이었는데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웅으로 프랑스인들의 절대적 신뢰를 얻고 있었다.    히틀러의 휴전 협정 조건 또한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이미 겪어 봤던 대다수의 프랑스인들도 이를 지지했고 받아들였다. 총리 페탱의 제안에 히틀러는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1..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