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전체 글

일본식 카레 역사 146-7 일본의 3대 양식으로 손꼽히는 음식 중 하나는 카레이다. 카레는 1920년대 초에 대중화되기 시작해 1930년대 절정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  1936년 오사카의 한 백화점에서는 카레 판매량이 하루에 13000그릇에 달했다.     인도의 커리가 일본식 카레로 인기를 끌게 된 계기는 군대와 관련이 있다. 1870년대 일본 군대에 퍼진 극심한 근육 소모가 되는 병인 각기병이 유행했는데 극심한 근육 소모로 팔다리가 약해지면서 제대로 걸을수가 없을 뿐 아니라 신부전과 말초신경 장애까지 일으켰던 무서운 병이었다. 그러나 이 병은 서양사람들에게는 없는데 유독 일본인들에게만 자주 발생했다. 특히 육군보다는 해군에서 다수의 각기병이 발생했다.  그래서 군 당국은 본격적으로 각기병의 원인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확인.. 더보기
일본식 서양음식 : 고로케, 단팥빵, 캐러멜 ,건빵 146-6 [이전글 일본 돈가스 역사]  우리가 말하는 경양식은 가벼운 양식으로 돈가스와 밥, 수프까지 함께 즐기는 외식 메뉴인데 양식이 아닌 일본식이다. 경양식은 정통 양식처럼 풀코스로 나오는 것이 아닌 일본인의 기호에 맞게 몇 가지 음식이 변형된 서양요리이다. 그래서 1900년 전후로 도쿄 경양식 식당이 1500곳 이상 빠르게 증가했다.   고로케 탄생돈가스 말고 돼지고기를 활용한 양식 중 하나가 고로케이다. 작고 바삭바삭한 소리가 나는 것이라는 뜻의 프랑스 크로켓트에서 유래된 음식이다. 자투리 돼지고기를 활용해 만든 음식이라 가정식으로 자리잡았다.    전쟁으로 인해 돼지고기 소기가 값이 폭등하면서 돼지고기가 주목받은 것처럼 일본군의 식량문제로 인해 새롭게 떠오른 것이 있다. 18세기까지 일본군의 전투식량은 .. 더보기
추사 김정희 별장: 백석동천 폐허가 된 별서의 정취... 백석동천은 추사 김정희의 별서로 언제 지어졌는지 알지못하지만 1930년대까지 별장으로 운영되던 곳이다. 그 후 한국 전쟁 이후 잊혀지기 시작했고 이후에 다시 청와대 경호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이곳은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혀졌다. 그러다가 2006년 일반에게 개방되었다.  백석동천은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고 탄핵 심판 기간동안  청와대 안에만 머물러 있던 중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청와대 경호 구역을 산책하다가 이곳을 발견했다. 이때 문화재청장을 불러 이곳을 조사하게 했고 알고보니 추사 김정희의 별서로 밝혀진 것이다. 더보기
흥선대원군 별서 석파정 흥선대원군(1820-1898) 의 호는 석파로 돌석, 언덕 파 돌 언덕이라 는 뜻의 석파정은 인왕산 북동쪽 바위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별장 (=별서)으로 수려한 자연 경관 속에서 그림을 가까이 했던 곳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이 흥선대원군 난초 그림의 스승으로 흥선대원군이 되기 전에 그림을 좋아하던 이하응이 추사에게 난초를 배웠다.  소수운련암 물로 둥지를 틀고 구름으로 발을 삼은 암자라는 뜻으로 석파정을 짓기전 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는 바위로 바위에 새긴 글귀는 옛날부터 이곳이 아름다웠다는 것을 말해주는 시적표현이다.  원래 석파정의 주인은 철종때 세도가 안동김씨 김흥근이었다. 그런데 흥선대원군이 이 집 빼어난 풍광에 마음에 쏙 든 것이다. 수차례 김흥근의 별서를 매매 제안을 했으나 이를.. 더보기
창덕궁 후원 이야기 (부용지, 연경당, 신선원전 일대) 부용지 일대처음 이곳은 그냥 언덕이었다. 그러나 15세기에 세조가 4개의 샘물을 찾아 연못을 만들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숙종이 을 만들었다. 창덕궁 후원에는 자연과 조화를 이룬 정자가 무려 17개가 있고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  정조가 부용정을 지은 이후 규장각을 설립 몇 대에 걸쳐 완성된 부용지이다.   부용정 부용정은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부용은 연꽃을 의미하는데 연꽃처럼 연못에서 피어오른 듯한 정자라는 의미가 있다. 부용정은 연못에서 솟은 교각에 앞으로 정자가 튀어나온 모양인데 이 난간에 걸터앉으면 마치 배를 탄 듯한 느낌이다.   영화당 영화당은 왕과 신하의 연회장이며 과거 시험 응시자들이 마지막으로 왕 앞에서 시험을 치르던 장소이다.  부용정에서 내려가면 4개의 정자가 .. 더보기
천년이 넘는 일본 육식 금지령 이유.. 146-2 일본의 서양 요리 대중화에 실패했던 이유는 천황에 의해 육식이 약 1200년 동안 금지되었다. 일본은 6세기 초반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일본 국교가 불교로 지정이 된다.   673년 일본이라는 나라 이름과 천황이라는 명칭을 만들고 일본 역사상 최초로 강력한 전제 권력을 행사했던 텐무 천황이 등장하게 된다. 텐무 천황은 국교인 불교 교리를 내세우게 된다. 불교의 핵심 가치인 살생 금지 사상을 실천을 위해 백성들에게 육식 금지령을 발표한다.   불교로 인한 육식 금지령은 이후 시기와 금지 동물의 종류를 달리하면서 여러번 개정되게 되는데 스토쿠 천황때는 모든 생물을 살생금지 시키는 법령을 발표한다. 게다가 소에 대해서는 시기를 가리지 않고 엄격하게 식용을 금지시켰다.    당시 일본은 농경 국가였고 소는 곡물의.. 더보기
세종의 어린시절 및 즉위식. 세종의 어린시절   세종의 아버지는 태종 이방원으로 세종은 태종의 셋째아이들 충녕대군이다. 첫째는 양녕대군으로 양녕대군 또한 똑똑했으나 하필 동생이 충녕대군(세종)이 다방면으로 천재성을 보인 충녕을 보고 넘을 수 없다는 걸 느꼈던 걸까?  첫째 양녕대군은 충녕에 대해 ' 충녕은 보통사람이 아니다' 라고 여동생에게 가서 충녕의 비범함과 양녕의 심정을 담은 기록도 있다. 양녕대군이 방탕해진 이유가 충녕대군(=세종)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어느날 태종이 하는 말을 들은 후 우연히 아버지 태종의 속마음을 알게 된 양녕이 일부러 방탕하게 굴었다는 야사도 있다. 양녕대군은 그후 기행을 일삼다가 결국 선을 넘어 양녕대군이 사랑한 기생 어리를 간통하고 납치한 얘기를 세종이 고자질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건국 초기 나라를 .. 더보기
묘효, 시호란? 세종대왕의 이름은 '이호' 로 그 당시 왕의 이름에 쓰인 한자는 백성들이 사용할수 없기 때문에 왕의 이름엔 어려운 한자를 사용했다고 한다.  묘호란?  죽은 이의 영혼이 위패(신주) 안에 깃든다고 생각하고 그 위패를 모셔둔 단지(=상자)를 신주단지라고 하고 신주를 놓던 그 자리가 신위, 그 신위에 붙이는 이름이 묘호로 그것이 바로 '세종' 이었다.  시호란?  시호는 그 분의 공덕을 기리기 위한 이름으로 세종의 시호는 영문, 예무 ,인성, 명효 대왕  영문:문에 뛰어나시고  예무: 무예도 뛰어나시고  인성: 성품이 인자하시고  명효: 명석한 두뇌와 효도, 효성스럽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