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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이야기 (별이 빛나는 밤에/감자 먹는 사람들) 반 고흐는 귀를 자른 화가, 비운의 화가로 알려져 있다. 뉴욕의 현대미술관에 가면 고흐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을 볼수 있다. 너무 유명한 작품으로 이 그릠을 보고 영감을 받아 Don McLean 은 빈센트라는 곡을 만들었다. 고흐는 어떻게 화가가 되었나? 고흐는 살아 생전 편지를 많이 주고 받았다. 현재 보존된 고흐의 편지는 900여통이 있고 이중에서 650여통은 동생과 주고 받은 것이다. 고흐의 편지에는 그의 상황과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고흐는 대인관계에 서툴렀으나 이를 평생 받아준이가 동생 테오였다. 편지 속에는 고흐와 가족간의 불화로 이는 고흐가 힘들어 했던 부분이다. 화가로 활동한 기간은 10년정도이나 실제로 화가였던 기간은 5년정도, 나머지 5년은 화가가 되기 위해 학습했던 기간이다. 그.. 더보기
고흐가 귀를 자른 이유? ( 해바라기, 꽃 피는 아몬드 나무 이야기) 이전글 반 고흐 이야기 (별이 빛나는 밤에/감자 먹는 사람들) 해바라기 그린 이유 프랑스 아를에 간 고흐는 화가 협동조합같은 공동체를 만들려고 했다 .이 공동체를 위해 여러 준비를 했던 고흐였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던 중 폴 고갱이 이곳에 오겠다고 수락을 하고 그를 위해 고흐는 방을 꾸미기 위한 해바라기를 그렸다. 그것이 지금의 고흐의 대표작 해바라기이다. 6일 동안 4점의 해바라기를 연작으로 완성했다. 사실 고흐는 전체방을 해바라기로 덮으로 했다. 파리에서 처음 만난 고갱과 고흐였다. 이때 고흐의 해바라지를 보고 고갱이 마음의 문을 열었다. 해바라기를 계기로 두 사람의 신뢰가 시작되었다. 고흐가 귀를 자른 이유 고흐와 고갱의 동거 기간은 2개월 정도였다. 있는 동안 다툼이 많았고 나중에 싸우다 .. 더보기
홍타이지 명.청 전쟁 승리를 위해 이것까지 했다. ->이전글 홍타이지 뜻 누르하치는 1626년에 사망하면서 3명의 아들과 한명의 조카에게 대권을 넘겼다. 대신 4명의 후계자가 공동통치를 하도록 했고 그래도 지도자가 필요하기에 나이와 서열이 가장 낮은 ‘홍타이지’를 '한'로 추대했다. 홍타이지는 누르하치의 8번째 아들이다. 홍타이지는 만주어로 훌륭한 아들이라는 뜻으로 흔한 이름으로 몽골 귀족이나 만주 귀족 중에 홍타이지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다. 홍타이지 정묘호란을 일으킨 이유 홍타이지는 병자호란을 일으킨 인물이고 인조에게 삼전도의 굴욕을 안긴 인물이다. 권력을 잡은 홍타이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조선을 공격한 일이다. 바로 정묘호란으로 영원성을 홍이포 대포가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였기도 하지만 당시 17 세기는 전 세계적으로 소빙하기였기 때문에 평균기온.. 더보기
누르하치 이야기 (후금 ->청나라 세우다 ) [역사저널 396] 누르하치는 만주어로 멧돼지 가죽이라는 뜻이다. 금나라는 여진족이 지금의 지린성 헤이룽장성에 세웠던 나라로 건국 후 120년 만에 원나라에 의해 멸망하였다. 북방의 강자였던 금나라가 원에 의해 멸망 당한 뒤 부족단위로 흩어져 살았고 보호받을 나라가 없었던 여진족은 약탈을 일삼거나 조선과 명에 의존했다. 이런 나라 없는 설움이 누르하치를 보다 강건하게 했을 것이다. 1583년 한 여진족 추장이 명나라에 반란을 일으킨다. 이때 누르하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추장을 설득하기 위해 성에 들어갔는데 그때 마침 성을 기습공격했던 명나라에게 반란군으로 오인을 받아서 살해되었다. 누르하치 최고 지도자 되다. 사실 누르하치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돈독하지 않았다. 10살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계모에게 .. 더보기
조귀인 인조가 가장 아낀 후궁 인조는 44살에 얻은 효명옹주를 애지중지했다. 인조는 효명 옹주를 아낀데는 이유가 있었다. 효명옹주 탄생 1년 전 1636년 병자호란이 있었고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고 심지어 아들 셋을 청나라에 볼모로 보내야 했던 인조였다. 27년을 함께 살았던 인열왕후도 전쟁 1년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런 어려움을 겪고 태어난 효명옹주였다. 이런 효명옹주를 낳은 사람이 조귀인이었다. 조귀인은 효명옹주를 낳기 전까지는 종4품의 숙원이었으나 딸을 낳고 정식 후궁이 된 조귀인이다. 조선 16대 왕 인조의 후궁 조귀인은 인조가 생애에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후궁이다. 조귀인은 누구? 조귀인은 효명옹주를 낳을 당시 일개 후궁이었다. 조귀인의 입궁시기는 1630년으로 인조 즉위 8년째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조는 조귀인을 .. 더보기
피카소가 그린 한국전쟁 (6.25 전쟁) 에 대한 그림들 피카소는 작품에 전쟁과 평화에 대한 메세지를 많이 담았고 우리나라를 주제로 그린 작품도 있다. 프랑스 발로리스에 남긴 6.25 전쟁을 주제로 한 작품 라는 작품이 있다. 작품 발로리스는 도자기로 유명한 마을인데 1948년부터 피카소가 노년을 보낸곳으로 그림으로 지친 심신을 도자기를 구우면서 지냈던 곳이다. 발로리스는 칸에서 차로 20분거리에 있는 곳으로 그곳에 피카소 박물관있다. 이곳은 한때 옛 수도원이었던 곳으로 반원형 터널에 벽화로 를 그렸는데 한쪽에는 전쟁, 다른 한쪽에는 평화를 기원하는 그림을 그렸다. 1952년 한창 6.25 전쟁이 진행되던 시기에 그린 그림이다. 작품 분석 전쟁 장면에 괴물처럼 보이는 괴수가 피묻은 칼을 들고 있고 다른 한손에는 세균전에 대한 공포심을 표현했고 왼쪽 방패를 든 .. 더보기
프랑스 에투알 개선문 (Triumphal arch) 프랑스 파리의 명소하면 빠지지 않는 장소가 개선문이다. 그러나 이 개선문은 3개가 있다. 첫 번째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1805년 만든 카루젤 개선문으로 루브루 궁전 앞에 위치해 있다. 카루젤 개선문 위에는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성당을 장식하던 청동 사두마차 말조각상이 올려져 있었는데 나폴레옹이 몰락 후 이 보물은 다시 베네치아로 돌아갔다. 이후 평화의 신이 사두마차를 탄 청동 조각상과 승리의 여신 금제 조각상을 만들어 올렸다. 두 번째 개선문이 바로 에투알 개선문으로 이것 또한 나폴레옹이 세운 개선문이다. 첫번째 카루젤 개선문이 19m인데 비해 프랑스 개선문의 대표 50m 높이의 에투알 개선문이 있다. 에투알은 프랑스어로 '별'이라는 뜻이다. 개선문이 위치한 광장 모양이 별 모양이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이 .. 더보기
게르니카 폭격 85- 3 ▶이전글 스페인 내전 이야기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개입 이유는?) 83-2 [이전글] 스페인 내전 이전 상황 보기 1936년 7월 17일 스페인에서는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다. 스페인 군부의 핵심적인 인물 반란 우파의 지도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등장한다. 24 살의 젊은 myvoice.wissue.net 스페인 내전 중 반란 진영 히틀러, 무솔리니의 개입과 공화 진영 소련 스탈린의 원조로 두 진영은 전력을 키워 나가던 1936년 10월 반란 진영의 프랑코 장군은 군대와 전투기를 이끌고 수도 마드리드에 무차별 공중 폭격을 가한다. 수도 마드리드 점령 실패 평화로웠던 도시는 일반인 거주 지역은 물론 각종 시설이 파괴되고 어린이 노약자 상관없이 무차별로 폭격했고 한순간에 도시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