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썸네일형 리스트형 세종의 어린시절 및 즉위식. 세종의 어린시절 세종의 아버지는 태종 이방원으로 세종은 태종의 셋째아이들 충녕대군이다. 첫째는 양녕대군으로 양녕대군 또한 똑똑했으나 하필 동생이 충녕대군(세종)이 다방면으로 천재성을 보인 충녕을 보고 넘을 수 없다는 걸 느꼈던 걸까? 첫째 양녕대군은 충녕에 대해 ' 충녕은 보통사람이 아니다' 라고 여동생에게 가서 충녕의 비범함과 양녕의 심정을 담은 기록도 있다. 양녕대군이 방탕해진 이유가 충녕대군(=세종)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어느날 태종이 하는 말을 들은 후 우연히 아버지 태종의 속마음을 알게 된 양녕이 일부러 방탕하게 굴었다는 야사도 있다. 양녕대군은 그후 기행을 일삼다가 결국 선을 넘어 양녕대군이 사랑한 기생 어리를 간통하고 납치한 얘기를 세종이 고자질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건국 초기 나라를 .. 더보기 묘효, 시호란? 세종대왕의 이름은 '이호' 로 그 당시 왕의 이름에 쓰인 한자는 백성들이 사용할수 없기 때문에 왕의 이름엔 어려운 한자를 사용했다고 한다. 묘호란? 죽은 이의 영혼이 위패(신주) 안에 깃든다고 생각하고 그 위패를 모셔둔 단지(=상자)를 신주단지라고 하고 신주를 놓던 그 자리가 신위, 그 신위에 붙이는 이름이 묘호로 그것이 바로 '세종' 이었다. 시호란? 시호는 그 분의 공덕을 기리기 위한 이름으로 세종의 시호는 영문, 예무 ,인성, 명효 대왕 영문:문에 뛰어나시고 예무: 무예도 뛰어나시고 인성: 성품이 인자하시고 명효: 명석한 두뇌와 효도, 효성스럽다. 더보기 경회루 이야기 경회루는 태종 이방원이 서울로 돌아올때 경복궁으로 가지 않고 창덕궁을 새로 지었는데 자신이 경복궁을 버린 것이 아닌 궁궐은 양궐 체제로 있어야 된다고 말하며 법궁으로서의 경복궁을 부각하려 경회루를 새로 짓게 한 것이다. 경회루는 천민출신 박자청에 의해 만들어진 건물이다. 성균관 문묘, 청계천의 광통교, 창덕궁의 금천교, 등을 만든 사람이다. 당시 경회루 공사에만 5천 명이 동원되었는데 1411년 8월 착공 1412년 4월 8개월 만에 완공이 되었다. 연회와 강연의 장으로 사용되었던 경회루는 옛날에는 담이 있어 왕과 일부 신하만 갈 수 있던 장소였고 안을 볼수가 없었다. 한 일화로 직급 낮은 관리가 담을 넘어 구경하다가 세종을 만났는데 세종은 노래 한 곡 해보라고 했다. 그만큼 은밀하고 풍류가 있는.. 더보기 코카 콜라 원료는? 콜라 로고, 콜라병 디자인 누가? 미국 애틀렌타의 한 약제사 존 펨버튼은 남북전쟁 당시 남부 구인으로 참전했다가 부상을 당하고 모르핀에 중독되어 있었다. 이를 대체할 수 있던 약을 찾던 중 코카 잎에서 추출한 코카인을 알게 된다. 이 코카인과 콜라 나무에서 추출한 콜라 열매의 추출물로 콜라의 원조인 매약을 만들게 된다. 코카 잎은 남아메리카 원산의 식물로 수천년 전부터 의약품과 기호식품으로 이용해 왔으며 기력 보충을 위해 잎을 씹기도 했다. 아프리카 원산지인 콜라나무의 열매는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는데 다양한 탄산 청량음료의 항료로 사용되었다. 이렇게 코카 잎 + 콜라나무 열매+ 프랑스 와인을 섞어 프렌치 와인 코카를 만들어 낸다. 당시 펨버튼은 코카인 성분의 중독성이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프렌치 와인코카가 맛도 있고 .. 더보기 남아공은 어떻게 무법지대 범죄율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나? 153-4 [이전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폐지 후 약 30년이 흘러도 여전히 흑인들의 빈곤문제는 심각했다. 남아공의 2023년 4분기 기준 실업자 수는 약 789만 5천 명이었다. 심각한 것은 대부분의 실업자가 흑인이라는 것이다.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종 비율은 흑인이 82%, 백인 8%인데 남아공 전체 소득은 대부분이 백인의 몫으로 남아공은 전 세계에서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 1위이다. 빈부의 격차 아파르트헤이트 폐지와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된 이후 남아공 정부는 흑인들이 주축을 이뤘다. 만델라 이후 흑인대통령이 계속 당선이 되었고 흑인 정부는 흑인 경제를 살리는 정책으로 적극적인 흑인 우대정책을 실시했다. 공무원 흑인에게 가산점 제도를 실시했다. 그러나 이전에 충분.. 더보기 넬슨 만델라 업적 : 남아프리카 공화국 국기 의미 [이전글]넬슨 만델라 인권 변호사에서 무장투쟁남아공 흑인 해방운동의 상징 인물인 넬슨 만델라는 1918년 7월 18일 남아공의 한 마을의 족장의 아들로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다. 만델라는 대학에 진학해 법학을 전공했다. 법을 전공해 흑인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만델라는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최초로 흑인 법률 사무소를 오픈했다. 그러나 당시 흑인 변호사에게도 차별은 여전했고 심지어 재판중에 쫓겨난 경우도 있었다. 이에 넬슨 만델라는 아파르트헤이트 철폐를 위해 무장투쟁을 시작한다. 1962년 44살이 된 만델라는 민족의 창이라는 뜻의 움콘토 웨 시즈웨 무장조직을 설립한다. 그 후 외국을 돌며 총기, 박격포, 지뢰 등 다양한 무기 다루는 법을 배웠고 자신이 이끄는 무장 조직과 함께 .. 더보기 남아프리카 공화국 탄생 과정 153-2 [이전글] 보어 전쟁 : 남아프리카 공화국 수도가 세 개인 이유 153-1 남아프리카 공화국 설립 배경 영국은 1934년부터 남아프리카 연방의 자치를 허용한다. 이로인해 영국의 영향력은 작아지고 보어인들의 영향력이 커지게 된다. 그 결과 1948년 남아프리카 연방 총선에서 보어인들로 이루어진 국민당이 강력한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내세운다. 아파르트헤이트 (아프리카 남아공 인종차별 정책)남아공은 독립을 했음에도 식민지를 지배했던 주체들이 지도자로 그대로 남아 있었던 상태였다. 이들은 가나, 나이지리아, 케냐에 들어왔던 백인들과 성격이 달랐다. 가나 나이지리아 케냐 등jangane.tistory.com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경제는 호황을 이루었다. 이곳의 풍부한 광물 자원을 눈.. 더보기 보어 전쟁 : 남아프리카 공화국 수도가 세 개인 이유 153-1 보어전쟁에 참전했던 유명인 보어인들 정착 배경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에 케이프타운이 위치해 있다. 케이프타운이 널리 알려진 건 대항해 시대이다. 1488년 유럽 최초로 케이프타운을 발견해 동방으로 가는 항로를 독점한 나라가 포르투갈이다. 이때 무역을 통해 많은 이득을 얻자 포르투갈 왕실은 케이프타운 남쪽에 희망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652년 케이프 타운의 운명을 바꾼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진출한다. 동인도 회사는 인도로 가는 여정이 길어 케이프 타운에 정착촌을 건설해 유식처를 제공하려 한 것이 동인도 회사였다. 이곳에는 코이코이족과 산족 (=부시맨)이 살고 있었다. 초반에는 원주민의 도움을 받아 농장 운영과 목축업등 물물교환을 하며 우호관계를 형성했다. 이 네덜란드 정착민들을 자신들을 농부라는 .. 더보기 이전 1 ··· 46 47 48 49 50 51 52 ··· 97 다음